인생의 황금률(1/27)

2005. 1. 27. 오전 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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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히브리서 10,19-25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는 마음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사제가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서 나쁜 마음씨가 없어지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겨 깨끗해졌으니 이제는 확고한 믿음과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또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분은 진실한 분이시니 우리가 고백하는 그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서로 격려해서 사랑과 좋은 일을 하도록 마음을 씁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

복음 마르코 4,21-25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또 말씀하셨다.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너희가 남에게 달아 두면 달아 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해외 토픽을 보면 외국에는 누드촌이라는 곳도 있나 봅니다. 물론 이 누드촌이 흔하지는 않고 대부분 한시적으로 열린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는 누드촌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흥밋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누드촌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신부님께서 그 누드촌 회원들로부터 미사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크게 고민을 했지요.

‘모두 벌거벗고 있을 터인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벗어야 하는가? 아니면 입고 있어야 하는가?’

결국 그 신부님은 자신도 누드로 참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두가 벗었는데 신부인 자신만 옷을 입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또 생각해보니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부님만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누드촌의 신자들이 고민하고 있었지요.

“여기가 누드촌이라고는 하지만 누드회원이 아닌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옷을 벗고 있을 수 있는가? 특히 누드촌 회원이 아닌 신부님께 우리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또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우리가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번만큼은 옷을 입고 미사에 참석하도록 합시다.”

결국 그들은 옷을 입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미사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누구도 당황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요. 모두다 옷을 입고 있는데 신부님만 옷을 벗고서 입장했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가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을 꾸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신부님이나 누드촌 교우들이나 먼저 자신의 창피함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라본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물론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렇게 했다고 말했겠지요. 하지만 잘 보면 먼저 자신에 대한 배려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어색한 만남을 가져왔던 것은 자신을 먼저 생각한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인간들의 판단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방법이 최악의 방법이 될 때는 또 얼마나 많았나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지 말라고 합니다. 잘 드러나는 곳에 놓아야 방 안을 환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시지요. 아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곧바로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합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이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됫박이나 침상 밑에 두고, 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되네요.

그런데 주님의 판단 기준을 잘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을 오늘 복음에서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남에게 달아 주면 달아 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

맞습니다. 남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판단한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만남이 최악의 만남이 되지 않도록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예수님처럼…….


나의 이익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해봅시다.



인생의 황금률(존 맥스웰, <결정적 순간의 원칙>)

그리스도교: 남들이 내게 해주기 바라는 행동을 그들에게 베풀라.

이슬람교: 자신만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다.

유대교: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진정한 '법'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것이다.

불교: 내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지 말라.

힌두교: 이것이 의무의 전부이니 내가 다른 사람에게 허락하지 않은 일을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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