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05일 일요일
[연중 제31주일] 모세의 자리에 앉아 (마태23,1-12)
제1독서<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말라1,14ㄴ-2,2ㄴ.8-10)
14 정녕 나는 위대한 임금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민족들은 나의 이름을 경외한다.
2,1 자 이제, 사제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계명이다.
2 너희가 말을 듣지 않고, 명심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겠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8 그러나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의 법으로 많은 이를 넘어지게 하였다. 너희는 레위의 계약을 깨뜨렸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9 그러므로 나도 너희가 온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리라. 너희는 나의 길을 지키지 않고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10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 아니시냐?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며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더럽히는가?
화답송 시편131,1.2.3 ◎ 주님, 제 영혼을 당신의 평화로 지켜 주소서.
○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나이다. 제 눈은 높지도 않사옵니다. 감히 거창한 것을 따르지도, 분에 넘치는 것을 찾지도 않나이다. ◎
○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다독이고 달랬나이다. 제 영혼은 마치 젖 뗀 아기, 어미 품에 안긴 아기 같사옵니다. ◎
○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
제2독서<우리는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1테살2,7ㄴ-9.13)
7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복음<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연중 제 31주일 제1독서(말라1,14ㄴ-2,2ㄴ.8-10)
'말라키'라는 이름은 '나의 사자(使者)'라는 뜻으로 3장 1절에서 끌어들인 일종의 가명이다.
구약의 어느 곳에서도 이 예언자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말라키서의 역사적 배경을 기원전 480-46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체로 하까이/즈카르야 시대와 에즈라/느헤미야 시대 사이다.
기원전 539년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하까이와 즈카르야의 독려에 힘입어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고(기원전520-515년) 성전 전례를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러나 두 예언자가 예루살렘 성전의 복구와 연결하였던 이스라엘의 완전 회복에 대한 높은 기대와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백성을 올바로 인도하고 가르쳐야 할 사제들이 스스로 제사와 전례 규정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고, 백성들은 십일조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이방 민족과 통혼하면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기 주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말라기의 두 번째 신탁(1,6-2,9)은 사제들의 타락을 고발한다.
말라키는 아모스를 비롯하여 사제들에게 비판적이었던 예언자들의 전통위에 서 있다.
말라키가 비판하는 사제들의 가장 큰 잘못은, 하느님께 값싼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 더러운 빵과 훔친 짐승, 절름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성의 없이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을 업신여겼다.
아무도 이런 짐승을 총독에게 바치는 일은 없다(1,8).
만군의 주님께 어울리는 제물은 향기로운 제물, 깨끗한 곡식 예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내 이름은 민족들 가운데에서 드높다.
내 이름이 민족들 가운데에서 드높기에, 곳곳에서 내 이름에 향과 정결한 제물이 바쳐진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1,11)
어떤 교부들은 이 11절의 말씀이 하느님께서 인류 전체와 맺게 될, 새 계약의 경신례를 예고하는 것으로 본다.
말라키는 사제직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대의 상황을 주도하던 차독 가문 사제들의 타락과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차독 가문의 사제들은 즈루바뻴의 치세 아래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성전의 모든 권한과 임무를 장악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말라키 예언자는 이들에 맞서 레위 가문 사제들의 사제직을 옹호한다.
다윗 임금 시절에 레위의 후손인 무시 가문의 에브아타르는 차독과 더불어 만남의 천막에서 함께 봉직하였다.
그러나 솔로몬 임금의 형이자 경쟁자인 아도니아를 지지했다는 죄목으로, 에브아타르는 고향 아나톳으로 쫓겨나고, 차독 가문 사제들이 예루살렘 성전 전례를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부터 레위의 후손인 무시 가문의 사제들은 예루살렘 성전 대신, 지방에서 떠돌며 백성을 가르치는 소임만을 맡았다.
민수기 16-17장을 보면, 레위족속들이 턱 밑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다가 벌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은혜를 받고 있고, 주님의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도와 주어야 할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데서 질투와 반역을 한다는 사실이다.
가톨릭 교회안에도 생각해야 될 여러 문제들이 많다.
다만, 나는 사제로서 하느님 대전에 어떤 제물을 바치며, 영신적으로 참으로 잘 준비하여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최상의 제사를 봉헌하고 있는가? 를 내 자신에게 묻고 싶다.
연중 제31주일 복음 (마태 23,1-12)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5)
마태오 복음 23장 5~7절까지는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외적인 경건 과시(5절),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과 끝없는 명예욕(6절),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얻고자 하는 마음(7절)에 대한 대표적 예이다.
'성구갑'으로 번역된 '퓔라크테리아'(phylakteria; phylacteries)의 원형 '퓔라크테리온'(phylakterion)은 모세 율법 중에서 탈출기 13장 1~10절, 11~16절,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1절 등의 네 부분을 작고 긴 양피지 조각에 기록하여 그것을 작은 상자 속에 봉해 넣은 것을 가리킨다.
유다인들은 '이것을 네 손에 감은 표징과 네 이마에 붙인 표지로 여겨라'는 말씀(탈출13,16; 신명6,8)에 근거하여 위의 네 부분의 율법의 구절을 기록한 경문을 넣은 성구갑을 이마와 왼팔에 가죽끈으로 고정하여 틈나는 대로 보면서 경건에 힘썼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5절에서 '넓게 만들고'에 해당하는'플라튀누신'(platynusin; they make wide; they make broad)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도록 그 성구갑의 크기를 크게 한다는 뜻이다.
시행 초기인 바빌론 유배 포로기 직후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성구갑을 달고 다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다인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달고 다녔다.
과시욕이 지나치다 못해 어떻게 하면 더 크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할까 고민했던 것이다.
한편, '옷자락 술'로 번역된 '크라스페다'(kraspeda; the tassels of their garments)의 원형 '크라스페돈'(kraspedon)은 '망토 또는 외투의 가장자리에 털실을 꼬아 매달리게 장식한 작은 부속물'을 의미한다.
유다인들은 민수기 15장 37~40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흰색과 청색 실로 짠, 이와 같은 부속물을 겉옷의 가장자리에 매달았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게 하는 기능을 하며, 마음과 눈이 쏠리는 데로 욕심을 따라 방종하게 살아 배신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해 주었다(민수15,39).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러한 율법의 정신을 따르려는 마음보다는, 단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거룩하게 보이려는 열망으로 '옷자락 술'을 더 크게 만들어 그것을 즐겨 입고 다녔던 것이다.
|
|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2-3).”
이 말씀은, “말한 대로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본받지 마라.”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모세의 자리’는 사람들에게 성경과 율법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앉는 자리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이 실행하고 지켜야 할 ‘말씀’을 전하긴 하는데,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말씀’을 모독하는 죄를 짓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말과 행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공공연하게 도둑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도둑질을 하지 마라.” 라는 계명을 가르친다면,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들으려고 할까?
그래서 예수님 말씀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말을 듣지 마라.” 라는 뜻도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것은 맞지만, 자신들의 잘못된 행실로 말씀을 모독하고 있기 때문에 아예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마태 23,4).”
이 말씀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계명들과 율법들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그리고 그렇게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면서도, 자기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이 그런 사람입니다.
만일에 누군가가 그들에게,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가버린 이유를 물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성전 예배 때문에’, 또는 ‘정결 예식 규정 때문에’ 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대답은 핑계일 뿐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루카 10,27), 실제로 사랑 실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하느님을, 또는 성전 예배를, 또는 정결 예식을 내세우면서, 자기들의 말과 행실이 다른 것을 합리화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가 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마태 23,5).”
이 말씀은, 경건한 척, 또 신심 깊은 척 하는 위선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남들보다 더 큰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위선자들이 있습니다.
평소에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남들보다 더 크고 멋있는 묵주를 가지고 다니는 위선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위선자들의 모습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마태 6,5).”
위선자들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척 하는 ‘연기’입니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마태 23,6-7).”
이 말씀은 위선자들의 교만과 허영심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대우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고 대우해 주지 않으면, 무시 당한다고 생각하고서 기분 나빠하고 모욕감을 느낀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한 사람의 본 모습입니다.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사람들의 칭찬, 존경, 대우를 의식하지도 않고,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마태 23,8-10).”
이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의 말’을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2코린 11,3-4).”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갈라 1,7).”
신학이나 성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의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자기의 말을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처럼 전하는 잘못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겸손’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마태 18,3).
그러나 ‘교만’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아무리 높이 쌓아도 결국에는 허물어져서 먼지가 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2023년 11월 05일 일요일
[연중 제31주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제1독서 말라키 예언서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연결하는 책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키는 하느님의 길, 모세의 율법, 시나이 계약에 충실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잘못을 꾸짖으며 구세주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 곧 옛 계약과 참된 구원의 길 안에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바오로의 첫째 편지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선포한 복음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공동체 신자들 덕분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새 계약의 신비를 다룹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스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군중에게 던지십니다.
‘스승’이라 불리기 좋아하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빗대어,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로써 구약 성경의 핵심인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는 참스승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시라는 구원의 진리가 밝혀집니다.
그러면 오늘의 신앙인에게 ‘모세의 율법’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복음’을 믿으며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을 우리 삶의 ‘참스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고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 여정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더욱더 가까워지리라고 기대합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1주일]
주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하러 오셨다.
주님은 왜 착하고 롭게 살아온 율법학자, 바리사이를 제자로 삼지 않으시고, 베드로 등, 배반할 죄인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그들이 배반할 것을 미리 아셨다)
복음(마태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 모세는 하느님의 뜻으로 민족(民族)을 이집트의 노예(奴隸)생활에서 탈출(脫出)시킨 구원(救援)자다. 그리스도의 예표(豫表)다. 곧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어둠의 세상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민족을 영원한 빛의 나라로 탈출시킬 구원의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전하는 모세의 말을 지키라는 말씀인데, 그들의 행실은 모세의 말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실행(實行)은 ‘모세의 말’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 믿음으로 마음 안에 간직,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고 믿은 말씀을 말하며, 선포하며 이웃과 나누는 것이 실행이다.
그러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말을 법으로 받아 깨달음이 아닌, 행위로 지켜 자기 의(義)로 챙겼기에 ‘그 행위를 따라 하지 말라’ 하셨던 것이다.(로마10,1-3참조)
깨달음이 없는 자신의 뜻으로 한 실천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無視),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의롭게 살았던 그들이 하느님의 뜻이며 ‘구원의 진리(眞理)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요한8,37-38)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마음)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호라우)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 예수님이 본 것(호라우-깨달음으로), 곧 창조이전 하느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시고 완성하셨던 하느님의 나라(히브4,3), 그 하늘의 의로움, 구원의 말씀을 전(傳)하시고, 선포(宣布)하셨고, 율법 자들은 들은 것,(뱀의 유혹인 선악의 말-요한8,44) 곧 말씀을 선악(善惡)의 계명(誡命), 법(法)으로 받아 자신들의 뜻, 의(義)를 위해 실천한 것이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 모세의 말을 600가지 넘는 율법으로 만들어 무겁고 힘든 짐 같은 신앙을 살게 했던 것이다. 율법학자(律法學者), 바리사이들이 그 율법(律法)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시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착하게, 의롭게 살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하늘로의 탈출(脫出)’을 위한 깨달음, 믿음을 위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마르7,7)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5ㄱ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 보이는 신앙생활, 곧 자신의 뜻, 의(義), 영광을 위한 종교(宗敎)행위에 열심을 부렸다는 말씀이다.
5ㄴ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 자신들이 의롭게 살았던 만큼, 권위(權威)의식(意識)도 대단히 컸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율법(律法)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받는 의(義)를 진리(眞理)로 믿는 것이다.
(로마3,21-24)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 하늘의 한 분만이 구원의 진리(眞理), 지혜(智慧)이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 하늘의 한 분,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영원히 책임(責任)져주실 아버지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 하늘의 한 분,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시다. 곧 하늘아래 모든 것은 믿음, 구원과는 상관없는 부질없는, 헛것이라는 말씀이다.
(코헬1,14) 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코헬4,1) 1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 보라,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 억압자들의 손에서 폭력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시편39,6-8) 6 보소서, 당신께서는 제가 살 날들을 몇 뼘 길이로 정하시어 제 수명 당신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으로 서 있을 뿐. 7 인간은 한낱 그림자로 지나가는데 부질없이 소란만 피우며 쌓아 둡니다. 누가 그것들을 거두어 갈지 알지도 못한 채. 8 그러나 이제 주님,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저의 희망은 오직 당신께 있습니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하늘의 한 분으로 거저 의롭게, 가장 높아진 사람은, 이웃 또한 그 한 분으로 높아지도록 그 한 분을 알려주는 그 섬김을 해야 한다. 곧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주는 것이다.
<사제(司祭)께서>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셔서 우리의 자존(自存)감을 회복시켜 주시는데 그 확실한 표로 성체(聖體)를 영(迎)하는 사람들이, 성경(聖經)만 읽으며 되뇌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 하셨는데 과연 그럴까? 성체(聖體)를 모신다고 용서(容恕), 자유(自由), 구원(救援)에 대한 믿음이 생길까? 주님은 당신의 몸을 피(血)의 새 계약(契約)으로 주셨고,(루가22,20) 또한 성경(聖經)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올바로 깨달아 믿는 것이 생명, 용서, 자유, 안식, 평화, 구원, 구마(驅魔)인데(마태8,16 로마10,17 야고1,18참조),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믿을 수 있도록 ‘말씀 안에 늘 머무르는 공부(工夫)를 하라’해야 하지 않을까?(요한8,31-32참조)
*성경(聖經)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성 예로니모)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하늘의 높으신 한 분과 하나 되기 위한 낮아짐이다. 스스로 높이려는 이는 땅속으로 떨어지기까지 낮아진다.(로마10,1-3참조)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이 허무(虛無)요 헛됨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낮아짐으로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로 들어가 그분과 한 몸이 되면 그 높으신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높아지게 된다.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2코린10,17) 17 그러므로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에페2,6)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골로1,14) 14 이 아드님(예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테살5,9-10)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