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열 처녀에 비유 (마태.25,1-13)

2023. 11. 12. 오전 6: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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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2일 일요일

[연중 제32주일] 열 처녀에 비유 (마태.25,1-13)

 


1독서<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지혜6,12-16)

12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14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15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16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화답송 시편63,2.3-4.5-6.7-8(2)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고, 성소에서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당신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이렇듯 제 한평생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부르며 두 손 높이 올리오리다. 제 영혼이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러, 제 입술이 환호하며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당신을 생각하고, 온밤 지새우며 당신을 묵상하나이다. 정녕 당신은 저를 도우셨으니, 당신 날개 그늘에서 환호하나이다.

 

2독서<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데려가실 것입니다.>(1테살4,13-18)

13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16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17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복음<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마태.25,1-13)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연중 제 32주일 제1독서(지혜6,12-16)

 

지혜서에 묘사된 인격적 지혜는 사람 안에 들어와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의 은총개념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신 요한 복음의 육화된 말씀과도 상통한다.

 

<인격적 지혜>를 성령이나 성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성급한 시도이지만, 어쨌든 신약성경의 삼위일체 신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말>을 할때 먼저 <생각>을 한다. <생각>한 것이 말(언어)로 표출된다. 그러니까 <생각>은 <내적 언어>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혜>라 부르고, 그것이 밖으로 표출된 것을 <말씀>이라고 부른다.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우리가 성급하게 <인격적 지혜>를 <성령 하느님>이나, <육화된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으로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렴풋이 성삼의 신비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6,14)

 

이 말씀은 새벽기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할 때에도 인용했던 말씀이다. 새벽에 일찍일어나 말씀을 읽고 감사기도를 하면서(지혜16,27-28참조),  영과 진리안에서 영이신 하느님을 예배하면(요한 4,24참조)),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선물을 문간에 갖다 놓아 주신다는 것이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6,15ㄴ)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6,16) 

 

오늘 독서의 <지혜>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는 <기도의 응답>이요, 우리가 그토록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알고 싶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삶에 동행하시는 <현존체험>이다.

 

그러나 이 <지혜>의 축복을 받으려면, 오늘 말씀에 따라 조건이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감사 기도를 해야 하고,  영적으로 순결하고 흠도 티도 없는 삶으로 깨어 있어야 하고, 하느님이 기뻐하시게 하고 감동시키는 맞갖은 생각과 삶을 살아야 한다.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

(마태 25,1-4. 13)

1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 신앙은~ 등-교회를 통해 신랑-그리스도 예수님과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신랑이 미리 보낸 결혼예물(방패물), 곧 기름(성령)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요한14,16참조)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병)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 등-교회는 다니면서 기름-성령을 모르는, 믿자 못하는, 하나 되지 못한 신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8,9.11) 9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믿으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성령을 통해,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지혜, 뜻으로 들어야 한다. 곧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은 사랑하는 아들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분의 용서로 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을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라’, 하셨던 것이다(루가11,9-13참조)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말씀)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1요한2,27)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인간의 지혜에 의한 미사강론이나 사제의 글보다 하느님의 뜻(지혜)인 성령의 참 가르침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기름(성령)을 보존하고 있었던 슬기로운 처녀들 또한 그들이 잠든(죽은) 상태에서도 늘 깨어계시는 성령의 인도로 신랑 예수께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믿고,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 그것이 깨어있는 삶이라 하시는 것이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종교 행위에 열심 했던 마르타가 아닌 말씀을 열심히 듣는 마리아(루가10,38-42), 그가 예수님의 죽으심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깨달았고, 그것이 기름이라고 하셨음을 기억하자.

 

(요한12,3.5.7)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가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인간의 지혜다. 그러나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주님의 뜻, 그분의 말씀을 모르면 , 잘못 들으면, 사람의 지혜로 들으면~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고, 그러면 그에게 구원은 없다.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16,12-13)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감당하지 못할, 하느님의 뜻, 지혜를, 인간의 지혜로 주는 것을 받지 말고, 버리고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자, 갈망하자~ 오늘 화답송처럼~


(시편63,2) 2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 말라 합니다. 하자. 그래야 진리의 성령, 하느님의 지혜께서 찾아오시기 때문이다.

 

독서(지혜6,13-14)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14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마음)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 그 지혜로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게 되면, 오늘 복음(말씀)의 화답으로

 

화답송~(시편23,1) 1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라는 고백이 나온다.


 오소서 성령이여! 

이미 우리 안에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천주의 성령이시여 우리 모두를 의탁하나이다.~아멘..

 


   




연중 제32주간 복음 (마태25,1-1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하고 대답하였다." (3~4.9)

 

마태오 복음 25장은 24장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기 사흘 전에 주신 올리브산에서의 말씀이 계속되는 부분으로서, 특히 도둑의 비유, 두 종의 비유인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마태24,42~51)와 더불어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하는 세 가지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세 가지 비유란 '열 처녀의 비유', '탈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를 나누는 임금의 비유'를 말한다. 

여기서 '천국은 마치 ~~에 비길 수 있다'는 것은 천국이 열 처녀에 비유되는 것이 아니라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상황에 비유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다의 혼인 풍습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러 간단한 종교적 의식을 치른 후,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 혼인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신랑의 집이 먼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혼인 예식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본 장에 있어서의 혼인 잔치는 어느 곳에서 벌어졌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혼인 잔치는 신부의 집에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나중에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했을 때 그 요청을 거부한 사람이 신랑이었던 사실(11~12절)에 비추어 보면, 혼인 잔치는 신랑 집에서 베풀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만일 혼인 잔치가 신부 집에서 신부 집에서 베풀어졌다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요청을 거부하는 주체가 신랑이 아닌 신부의 아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 잔치가 어디서 열렸는지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당시 유다 관습에 의하면, 혼례식은 보통 해가 진 이후에 시작되었다. 이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의 집 문 밖에 나가서 등을 들고 있다가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당도하면 영접하였다.

 

그런데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신부집에 가는 시간은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등이 꺼지지 않도록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했다. 

특히 본문에서 신랑이 예측치 못한 시간에 온 것이 강조되는 것은 종말, 또는 모든 성도들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예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여기서 신부의 들러리인 열 처녀가 들고 나간 '등'으로 번역된 '람파다스' (lampadas)는 수지질의 소나무로 만든 횃불이나 등불, 또는 심지를 꽂아서 쓰는 속이 등근 접시나 기름병을 의미하는 명사 '람파스'(lampas)의 목적격 복수로서 '여러 개의 등'이다. 

원문에는 이 단어 뒤에 새 성경이 번역하지 않은 단어 '헤아우톤'(heauton)이 있다. 이 '헤아우톤'(heauton)은 여성 3인칭 복수 소유격 재귀 대명사로서 '그녀들 자신들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열 처녀는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의 등을 들고 나갔다. 

여기서 '나간 장소'가 신부의 집인지, 처녀 자신들의 집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이것은 이 비유의 전개에서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본 비유에서 '신랑'으로 번역된 '뉨피우'(nymphiu)의 원형 '뉨피오스'(nymphios)라는 단어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11절). 따라서 비유에서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신부가 아닌, 들러리 처녀 열 명이다.

 

당시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의 친구들이 맡았으며, 들러리들이 드는 등불은  모두 열 개라고 한다. 유다인들은 열을 이상적인 숫자, 완전 숫자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당에서의 공식 집회도 열 명이 참석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비유에서도 그러한 풍습에 따라 들러리 처녀들이 열 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재림은 열 처녀로 상징되는 '모든 성도'가 대비하고 준비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 앞에서 단 한명도 열 처녀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슬기로운 처녀가 아니면 어리석은 처녀에 해당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어리석은'으로 번역된 '모라이'(morai; foolish)의 원형 '모로스'(moros)는 신중하지 못하고 예측 능력이나 지혜가 결여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슬기로운'으로 번역된 '프로니모이'(phronimoi; wise)는 신중하고 사려깊으며 분별력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그리고 여기서 쓰인 동사 '에산'(esan; were)은 반복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서, 이것은 신부의 들러리 처녀들의 개인적인 성향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 다섯 처녀들은 항상 신중하지 못하고 선견지명이 없는 자들로 살아왔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평소처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향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이며, 반대로 다른 다섯 처녀들도 평소의 삶의 자세가 사려깊고 분별력이 있으며 신중했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이다.

여기서의 교훈은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주님의 재림의 때에 어떠한 자들로 드러날 것인가가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이제 마태오 복음 25장 3절에는 열 처녀들이 왜 어리석고 슬기로운지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밝힌다. 

즉 등을 밝히기 위해서는 등은 물론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반면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준비했을 뿐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메트 헤아우톤'(meth heauton; with them)은 '그녀들 자신들과 함께' 또는 '그녀들 자신들 곁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들러리 처녀들이 등을 밝힐 여분의 기름을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충고해 주는 표현이다. 그리고 '엘라이온'(elaion; oil)은 '올리브 나무'(olive tree)를 의미하는 '엘라이아'(elaia)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올리브 기름'을 뜻한다. 

이 기름은 팔레스티나에서 나는 대표적인 산물로서 등불을 밝히고(2열왕4,10) 병을 치료하는데(루카10,34), 그리고 귀한 손님의 머리에 부어 예의를 표시하는데(루카7,46) 사용되었다. 

이 기름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믿음'을 상징한다고 보고, 어떤 학자는 믿음에 대응하는 '선행'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학자는 기름이 성별 의식에 사용된 물질이라는 것과(즈카4,12) 성령이 기름으로 상징된다(루카4,18)는 사실에 근거해서 기름은 내면적 신앙의 모습인 '성령의 능력과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마태오 복음 25장 4절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왜 슬기로운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그릇'으로 번역된 '앙게이오이스'(anggeiois; jars)의 원형 '앙게이온'(anggeion)는 플라스크와 같은 휴대용 병을 말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게올 것을 대비하여 등 말고도 여분으로 플라스크 같은 병을 하나 더 준비하여 거기에 기름을 담아가는 준비성을 갖추었다. 

그래서 설사 기름이 다하여 등불이 타다 꺼지더라도 여분의 기름으로 계속해서 등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5절에 '신랑이 늦어지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의 재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체되는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베드로 2서 3장 9절이 이것에 대해 분명히 밝혀준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도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연되는 주님의 재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어 방종에 흐르는 기회로 이용될 수 있음을 베드로 2서 3장 3절과 4절이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조롱꾼들이 나와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그분의 재림에 관한 약속은 어떻게 되었소? 사실 조상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창조 이래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7절에서 '우리 등이 꺼져 가니'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오시는 역사의 깊은 밤중에 성령의 불길이 소멸해가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9절의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라는 표현은 슬기로운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 주면 둘 다 등불을 켤 수 없을 것이기에 결코 나누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영적인 차원에서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주님 오시는 순간에 자기의 것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는 말로서 구원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구원에 있어서 그 누구도 각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모자란 기름을 사러가는 역할도 그 누구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20231112일 일요일

[연중 제32주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이번 주일 성경 말씀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종말입니다.

1독서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를 의인화합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구약 전통에서 하느님 말씀인 토라’(오경, 율법)는 후대에 지혜로 변경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던 유다인들의 전통이 하느님-토라-지혜순서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의인화된 지혜를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합니다(요한 1,1-18 참조).

참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 뵙게 될 희망이 그리스도인의 종말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2독서 테살로니카 1서에서 바오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세상을 떠난 교우들 때문에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합니다.

이 위로 안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종말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종말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니 늘 깨어 준비하라는 신앙의 권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다리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재회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나의 신랑은 ‘나’인가? ‘그리스도’인가?


(마태25,1-13) 열 처녀의 비유

1 “그때에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교회)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교회)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성령)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교회)과 함께 기름(성령)도 그릇(마음)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 육신을 입은 인간은 기름이 있건 없건 졸기 마련, 육(肉)의 한계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ㄱ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 인간이 준비한 빛, 곧 행위의 의(義)는 땅에서만 빛난다.

 

8ㄴ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 하늘의 기름, 성령을 인간들 사이에서 어찌 살 수 있겠는가.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주인님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기름, 성령을 준비하지 않으면 깨어있을 수 없다. 인간 스스로는 깨어있을 수 없음이다. 곧 그리스도의 영, 성령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하늘 문은 닫히고, 인간의 열심히 두드려 봐야 다시 열리지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인생을 통하여 반드시 누군가와 혼인을 하여 이 세상을 떠난다반드시 모든 인간은 짝을 만나게 되어있다. (獨身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정하신 원칙이었다.

존재는-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토브로), 곧 악하니(창세2,18)’ 절대 혼자 있어서는 안 된다독처(獨處)해서는 안 된다그것이 악이라 하신다반드시 짝이 있어야한다는 말씀이다그래서 이 땅에 모든 맘물은 다 짝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구원완성의 모형으로 주어진 것이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해가 있으면 달이 있고실체와 그림자신랑과 신부이렇게 짝이 전부있다.

하느님께서 그 짝이 아닌 혼자 있는 것이 악()하다라고 원칙을 정하신 것은 홀로 독처하고 계신 당신의 짝신부로 반드시 교회를 세우시고야 말겠다는 언약계약의 선언인 것이다독처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나는 반드시 (하느님은 악할 수 없으심으로내 신부를 내 옆에 세우고야 말거야라는 약속의 선포인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을 당신과 연합시켜 영원으로 사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그것이 하느님의 위대한 작정(作定)이시다그런데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신랑곧 그리스도로 오신 하느님 말고 하나가 더 있다그것이 바로 라는 신랑이다그 는 이 호코스모스세상이라고 보아도 상관없다그 나라는 신랑은 율법(제사윤리)이라는 것을 통하여 구축된다하나 하나 쌓여 구축된다그래서 그 라는 신랑은 이 호코스모스세상 전체를 가킨다.

그것을 세상을 사랑 한다고도 말하는 것이다그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를 낳게 되어있다나를 증명하며 나의 가치를 위해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이 세상에 묶이면 이 세상에서 완전한 현실진짜 현실로 받아지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

그것만큼 확실한 현실이 어디 있겠는가그러니 세상과 짝하여 묶여 버리면 반드시 나를 낳게 된다그렇게 우리는 라는 신랑과 그리스도 예수’ 중 하나를 택하여 우리에게 허락된 숨이 끊어질 때 둘 중 하나와 완전한 혼인을 하게 된다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죄()와 의()라고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죄와 나와 혼인을 한 이는 나를 낳고그리스도와 혼인을 한 이는 진리만 낳는다. (그리스도를 낳는다그리고는 각자 자기가 낳은 아들과 함께 그 아들이 가야할 곳으로 간다땅의 아들로 나를 낳으면 땅속구렁으로하늘의 아들 그리스도를 낳으면 하느님 나라로~

 

(로마6,23) 23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랑은 ‘나’인가? ‘그리스도’인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나를 증명하고 나를 낳는가? 아니면 나를 빼앗기고, 나를 차압당하고 내 안에 진리, 그리스도를 낳고 있는가(그것이 자기 버림, 부인이다) 그것으로 나의 신랑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느님! 나 잘하고 있죠?“ 라는 길로 나를 낳고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 나는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입니다. 내 안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진리, 성령밖에 없네요.“ 이리로 가고 있는가.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세상의 좋은 것(인간의 의(義), 명예) 부인하는, 버리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 가난한 마음이 복(福)이다.

 

(루가16,25-26)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 죽은 이의 영혼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나 하느님께 맏겨졌음이다.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교회가 하느님의 뜻길에서 벗어나 인간의 뜻길로 가지 않도록 이끌어 주시어 눈먼 인도자를 따라 가다가 함께 구렁에 빠지지 않도록 분별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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