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20일 일요일
[연중 제20주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마태15,21-28)
제1독서<나는 이방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리라.>(이사56,1.6-7)
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6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계약을 준수하는 모든 이들.
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나의 제단 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화답송 시편67(66),2-3.5.6과 8(◎4) ◎ 하느님,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
○ 당신이 민족들을 올바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
○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
제2독서<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로마11,13-15.29-32)
13 나는 다른 민족 출신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민족들의 사도이기도 한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4 그것은 내가 내 살붙이들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 가운데에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15 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복음<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마태15,21-28)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 (이사56,1.6-7)
이사야 예언서는 바빌론 유배 훨씬 이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과 신탁을 반영하는 제 1 이사야서(1~39장), 유배 시대의 예언을 담은 제 2 이사야서(40~55장), 유배후 시대의 예언을 포함하는 제 3 이사야서(56~66장)로 나눈다.
오늘 독서는 제 3 이사야서로 불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다. 여기서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상황을 겨냥한다.
이 대목도 저자 한 사람이 쓴 것보다는 다양한 역사적 삶의 배경에서 나온 여러 신탁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몇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는데, 이사야 전체의 중심 주제인 <구원의 보편주의>를 재천명한다고 볼 수 있다.
1)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당신께 충실한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2)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하느님의 도성인 시온 또는 예루살렘은 참다운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다.
3) 하느님의 심판은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경계를 넘어서 모든 민족에게 미칠 것이다.
4) 주님의 구원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확장된다.
특히 이사야서 58장 6~7절과 이사야서 61장 1~2절은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 공생활의 청사진을 그려내는데 결정적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주님의 구원이 하느님의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다 미친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민 이스라엘이 거부하면 이방인에게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방인들도 하느님을 알아 모시며 안식일 규정을 지키리라는 오늘 제1독서의 말씀, 사도 바오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절하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제2독서 로마서 말씀, 악령들린 딸의 치유를 예수님께로부터 끌어내는 이방인 가나안 여인의 겸손한 믿음을 다루는 마태오 복음은 오늘 주일 말씀의 공통된 주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묵상할 것인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신 은총과 선물, 특혜와 소명을 소중하고 감사로운 마음과 성실함으로 잘 관리하지 못하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되며, 은혜를 은혜로 알며 그것을 잘 관리하고 성실하게 보존할, 다른 겸손한 사람에게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되고 그리스도께서 피로써 구속한 모든 사람들을 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의식이나 열등감과 패배의식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폄하하거나 평가절하해서 구원과 축복에서 자신은 제외된 존재라고 여기며 절망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선포하는 하느님의 구원의 보편주의와 보편성은 '저 사람은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으로 예정되었다'는 그릇된 예정론과 자신만이 구원의 특혜를 받고 있다는 오만한 선민의식을 둘 다 배제하고 있다.
연중 제20주일 복음(마태15,21~28)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23~24)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26~28)
마귀가 들린 딸을 둔 부인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제자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호소한다.
여기서 '돌려 보내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폴뤼손'(apolyson; send ~away)은 고쳐주지 않고 쫓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빨리 고쳐서 보내 버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제야' 혹은 '그러나'라는 접속사 '데'(de)로 시작되는 24절에서, 제자들이 고쳐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시는 예수님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소리지르다'에 해당하는 '크라제이'(krazei; she keeps crying out)는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서 그 여자가 계속해서 소리질렀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요청을 한 것은 가나안 여자가 불쌍해서가 아니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듣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며, 당시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반발로 인해 많이 위축되어서 잠시라도 휴식을 하고 싶은데 방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24절에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쿠'(oiku; of the house)의 원형 '오이코스'(oikos)는 일차적으로 '건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배타적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집밖에 있는 자와 집안에 있는 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구별하기 위해 '오이코스'(oikos)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잃은'으로 번역된 '아폴롤로타'(apololota; lost)는 '~로 부터'라는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아포'(apo)와 '파괴하다'는 뜻을 지닌 '올뤼미'(olly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파괴하다', '죽이다', '멸망하다'는 뜻이 있는 '아폴뤼미'(apollymi)의 완료 분사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의 결과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로부터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잃은 양이었고, 지금도 영적으로 죽어서 잃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은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우선적으로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때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요청에 대한 거부의 뜻이 있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한 것이다.
한편, 26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각각 '자녀들'과 '강아지들'에 비유되고 있다.
'자녀들'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children's)은 '해산하다'(루카2,6)라는 뜻이 있는 '틱토'(tikto)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을 가리키는 매우 친밀감이 느껴지는 용어이다.
반면에 '강아지들'에 해당하는 '퀴나리오이스'(kynariois; to dogs)의 원형 '퀴나리온'(kynarion)은 일반적인 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퀴온'(kyon)의 작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개 가운데 작은 개나 강아지를 뜻하며, 여기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런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나라에 거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안에서 기르는 개라고 할지라도, 자녀들과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자녀'와 '강아지'를 대비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대한 우선권이 유대인에게 있다는 뜻이지, 이방인이 복음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27절에 가나안 여자는 '그렇습니다'로 번역된 긍정과 동의를 나타내는 '나이'(nai; yes; truth)라는 말로써,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은 이어지는 또 다른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나안 여자는 겸손하게 집안에서 기르는 개가 누리는 혜택을 자신도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러나'로 번역된 '카이 가르'(kai gar; but even)는 앞선 문맥을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관용적인 표현인데, 뒤이어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말로서, 이방인들 역시 유대인에 이어 하느님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다.
당시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해 심한 배타적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도10,28), 하느님의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지각을 지니고 있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오 퀴나이, 메갈레 수 헤 피스티스'(O gynai, megale su he pistis; O woman, you have great faith!)가 바로 원문의 내용이다.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대해 너무나 감격한 예수님의 감정이 '오'(O)라는 감탄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크구나'로 번역된 '메갈레'(megale)의 원형 '메가스'(megas)는 영어에서 '큰' 혹은 '백만 배'를 나타내는 접두사 '메가'(mega)의 어원으로서 양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위대한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끝으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네가 바라는 만큼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고, 이것은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비례하는 큰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
특히 여기서 '될 것이다'에 해당하는 '게네테토'(genetheto; be it; is granted)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라 가나안 여자의 딸은 바로 그 시간에 단번에 고침을 받는다.
2023년 08월 20일 일요일
[연중 제20주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은 우리에게 놀라운 믿음의 본보기를 보여 줍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강한 믿음으로 자신의 딸을 살려 주십사고 끊임없이 청하여 마침내 구원을 얻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흔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정찰하러 갔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공포와 절망에 휩싸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민수 13,27-32 참조).
그들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일과, 현실적인 어려움에 낙담하여 용기를 잃고 주저앉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업신여긴 자들은 모두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민수 14,23).
우리는 불신이 만연한 세상에 살면서 사람에 대한 불신, 하느님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져 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이 변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자신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 인생의 의미를 마지막까지 이룰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미약한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용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은총에 기대어 살려고 하여야 합니다.
복음서의 가나안 여인처럼 우리는 모두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성장시키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며 살도록 초대받은 이들입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타게 청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일]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
복음(마태15,21-28)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 마귀(魔鬼)가 들렸다는 것은 정신분열(精神分裂), 질환(疾患)을 뜻하지 않는다. 마귀 들림은 뱀의 선악(善惡)의 유혹(誘惑)을 먹고(창세3,5) 그 선악의 논리(論理)로 세운 율법(律法)과 세상 인간들의 계명, 말로 세상의 것, 사람의 일만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마르8,33) 33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로마3,19) 19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 그 인간들의 선악(善惡)의 논리에 하늘의 선(善)이 악(惡)을 품고 죽어 생명(生命)을 주는 그 진리(眞理)의 말씀이 대답하실 수 없음이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 길 잃은 양들- 유대인들이 아닌 하느님께서 친히 세상에서 뽑아 선택(選擇)한 이들이다.
(요한17,6)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주님만이 아신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 자기(自己)버림, 부인(否認)의 자세다. 곧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그 진리(眞理)를 청(請)함이다.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주님은 이 고백(告白)을 기다리신 것이다. 하느님께 선택(選擇)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코헬3,18-19)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19 사실 인간의 아들들의 운명이나 짐승의 운명이나 매한가지다. 짐승이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죽으며 모두 같은 목숨을 지녔다. 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이 허무이기 때문이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그래서 주인(주님)의 상(床 식탁, 제단)에서 떨어지는 빵(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을, 존재(存在)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 참으로 큰 것’이며 구마(驅魔)의 힘, 곧 마귀(魔鬼)의 거짓 말(靈)이 쫓겨남이다.
오늘 본문이 어떤 말씀에서 연결(連結)됐는지 봐야한다.~
(마태15,3.6.8-9)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또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6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9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그래서~
(요한8,43-44) 43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으로가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들었음이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뱀)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창세3,5-6)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 모든 사람(아담)은 뱀의 선악(善惡)의 유혹(誘惑)을 먹고 하느님처럼의 삶, 곧 자기의 뜻, 의(義), 영광을 희망하며 사는, 그것이 본성이 된 ‘마귀 들린 자’로 태어난다. 그래서 코헬렛이 모든 인간은 짐승일 뿐이라 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그것을 깨달아라. 주신 성경(聖經)이다. 그래서 신앙(信仰)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본문 28절에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왜? 많은 이들이 자기의 뜻, 욕망,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며 믿는 것이라 하기 때문이다. 곧 세상(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기에 영원한 땅속(地獄)에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4,4) 4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1요한2,17)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1요한4,1-2)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肉)을 입고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죗값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모든 이들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 평화, 안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믿고 의탁하는 삶 또한, 그 구원자를 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 영광 드리는 신앙을 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뜻,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영(靈)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罪)로 죽으셨음은 믿으나, 세상의 평화, 안식, 육신(肉身)의 건강(健康)을 주시는 그리스도라 믿으면 하느님께 속한 영(靈)이 아니다. 세상의 말을 따르며 믿는 것이다.
(콜로2,8)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영원한 어둠, 땅속을 향하게 하는 인간들의 선악에 의한 신앙이 아닌, 영원한 빛, 하늘에 들어갈 하느님의 말씀, 진리를 깨닫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