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마태21,28-32)

2023. 10. 1. 오전 6: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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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1[연중 제26주일]


[연중 제26주일]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마태2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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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악인이라도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면,> (에제 18,25-28)

25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화답송 시편 25(24),4-5.6-7.8-9(◎ 6ㄴ 참조) ◎ 주님, 당신의 자비 기억하소서.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 날마다 당신께 바라나이다. ◎

○ 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 제 젊은 날의 죄악과 잘못은 잊어 주소서. 주님, 당신의 자애에 따라, 당신의 어지심으로 저를 기억하소서.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제2독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 (필리2,1-11)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복음<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마태21,28-32)

28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에제18,25~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28)

 

에제키엘서의 메세지는 비교적 단순하다.

예루살렘 도성과 유다 백성은 자신들이 저지른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죄악 탓에 벌을 면할 길이 없다.

 

당대의 민족만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하느님을 거슬러 불순종하고 반역하였다(20장).

 

회개는 오늘 독서의 말씀처럼 경건하게 살아가는 개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18장).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18,26~28)

 

여기서 회개는 개인적인 차원의 회개이다. 그러나 이렇게 회개하는 사람들, 즉 그런 의인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수가 너무 적어, 민족 전체는 구원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메세지는 기원전 597년에 바빌론으로 유배간 이들과 남부 유다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모두 해당한다.

 

에제키엘은 유배 이전의 예언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이 같은 재앙의 신탁과 더불어 예루살렘 도성이 파괴되고 백성이 징벌을 받은 다음에, 하느님께서 유배자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오시고, 당신 계획에 따라 성전을 재건할 것이라는 구원과 희망의 신탁을 전한다(40~48장).

 

그러나 유배자들의 귀환은 온전히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은 것이지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시려고 백성을 되돌아 오게 하실 것이다(36,16~32).

 

유배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는 계기가 되고, 백성들이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은

예례미아 예언자와는 달리, 에제키엘 예언자는 백성이 이 유배 기간을 참회의 기회로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언자 주변의 적은 무리만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뿐, 대부분의 유배자들은 무관심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에제키엘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먼저 백성의 돌심장을 살심장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깨닫고 회개할 거라 말한다.

 

말하자면, 선(先) 성령충만- 후(後) 비우기, 先 하느님의 은총- 後 참회와 회개를 이야기 한다.

 

하느님의 빛이 오면 어두움은 자동적으로 물러가는 것이다. 인간 편의 자력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성령 하느님을 부르고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연중 제26주일 제2독서 (필리2,1-11)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8)

 

'낮추시어'로 번역된 '에타페이노센'(etapeinosen)의 원형 '타페이노오'(tapeinoo)는 '낮추다', '내리누르다', '겸손하다'라는 뜻이다원문으로 볼 때본문의 주동사는 '에타페이노센'(etapeinosen; 낮추시어)이다.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몸이 아닌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과그가 평생 하느님의 뜻 아래서만 사셨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분사형으로 사용된 '나타나셨다와 '순종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기비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라는 구절은 그리스도의 겸손의 극치를 나타내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의미한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쫓아 당신 몸을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내어줌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자 하셨던 것이다(히브10,7).

 

또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마르10,45).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느님께 대한 궁극적인 순종의 행위였던 것이다.

 

한편, '죽음에 이르기'로 번역된 '타나투'(thanatu)의 원형 '타나토스'(thanatos)는 '죽음', '생명의 멸절'을 말한다.

 

이 죽음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것을 말한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순종의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자기 부인과 자기 헌신자기 희생으로 특징지워진다고 말할 수 있다(루카9,23).

 

페르시아에서 유래하여 로마에서 널리 시행된 '십자가형'은 당시 가장 잔인하고 모욕적인 사형 방법이었고유대 사회에서 나무에 달려 죽는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다(신명21,22~23; 1코린1,23; 갈라3,13; 히브12,2).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버림받아 죽기까지(마태27,46), 즉 저주받아 죽기까지(갈라3,13) 자신을 낮추신 것은 버려진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하고인간이 받을 저주를 대신 받음으로써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연중 제26주일 복음(마태21,28~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31~32)

 

마태오 복음 21장 28~32절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신 '두 아들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앞선 마태오 복음 21장 23~27절에서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의미를 가진다.

즉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지시에 순종할 것처럼 말하고는 실제로 순종하지 않는 불의한 아들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유하심으로써그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계시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21장 30절에 '가겠습니다아버지!'로 번역된 '에고퀴리에' (Ego, kyrie; I go, sir; I will, sir)에서 '에고'(ego)는 1인칭 대명사로서 아버지의 명령에 바로 자신이 순종하겠다는 자발적인 의지가 나타난다.

그러나 원문에는 '카이'(kai; 여기서는 but의 의미)라는 접속사를 사용해서자신이 가겠다고 했지만 행동으로는 가지 않은 상태를 대조하여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대조를 통해 불순종의 아들로 상징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함을 강조했으나그들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순종이 없는 자들이었으며심지어 하느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불순종의 극치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마태오 복음 21장 29절에서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대답했지만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간 것으로 비유에 나온다.

여기서 '나중에'로 번역된 '휘스테론'(hysteron; afterwards; later)은 시간의 결과를 나타내는 부사로서아버지의 명령에 대한 일차적 불순종 뒤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로 번역된 '메타멜레테이스'(metameletheis; he repented; he changed his mind)는 '메타멜로마이' (metamelomai)의 부정 과거 분사로서 감정적인 후회나 뉘우침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의지의 변화까지를 의미하는 '메타노에오'(metanoeo)와는 구분되게 사용되는데단지 마음을 바꾸어 먹는 후회 정도를 나타낸다(마태27,3).

 

하지만여기서는 합당한 행동이 뒤따랐으므로 진정한 회개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욕심에 따라 살던 '세리들과 창녀들'('호이 텔로나이 카이 하이 포르나이'; hoi telonai kai hai pornai; the tax collectors and the prostitutes; the publicans and the harlots) 같은 사람도 뉘우침으로 순종의 길을 갔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되는 '메타노에오'(metanoeo)보다 한 단계 정도 낮은 단어를 사용하여이러한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뉘우침이 없는 굳은 마음을 더 효과적으로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여기서 '먼저 ~들어간다'로 번역된 '프로아구신'(proagusin; go before; are entering ahead of)는 '프로아고'('proago')의 현재형으로서진리를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였다.

'프로아고'(proago)는 비교를 나타내는 동사로서 '~보다 먼저 들어간다'는 뜻이기에 순서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시간적 순서의 차이가 아니다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못들어갈 자이다.

마치 루카 복음 18장 9~14절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서처럼,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루카18,14)로 번역된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은 '이 세리가 저 바리사이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하는 비교급 표현인데문맥상 세리가 바리사이보다 더 의롭다는 표현이 아니라세리만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강조적인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실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세리와 창녀들뿐임을 강조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비교급이 사용된 것이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여기서 '의로운 길'로 번역된 '호도 디카이오쉬네스'(hodo dikaiosynes; the way of righteousness)에서 ''()로 번역된 '호도'(hodo)는 '호도스'(hodos)의 속격으로서비유적으로는 방법(수단)과 방편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의로움'에 이르는 방법즉 '()로움'의 방향성을 세례자 요한이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는 '의로움'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쉬네스'(dikaiosynes)는 '의무를 이행한 상태또는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이라는 뜻이다.

세례자 요한이 죄 때문에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존재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하느님 대전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로움의 길을 선포했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세리와 창녀들은 믿고 받았지만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의 정체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요한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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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01일 일요일

[연중 제26주일오늘의 묵상 (사제 정진만 안젤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한에 의문을 품으면서

세례자 요한을 거부하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21,23-27 참조상대로

비유를 들어 그들과 벌이는 논쟁을 이끌어 가십니다.

비유 속 맏아들은 특권적 지위에서 그에 따르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 지도력과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다른 아들은 이런 지위와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시면서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가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었다면,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한 종교 지도자들은 맏아들의 모습과 반대되며 비난을 받기에 마땅합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신 포도 속담을(에제 18,2 참조반박하시며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공평한 주님의 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에 따르면 의인이라도 불의를 저지르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구원을 얻는 데 과거의 행적보다 현재의 행적이 더 중요하다는 신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맏아들은 회개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는 우리가 모든 죄악을 벗어버리고 회개하여 의인이 되도록 촉구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26주일]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마태21,28-32)

28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 갑자기 세리와 창녀?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먼저 요한의 의로운 길의 가르침~

 

(요한1,29.32-33)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 하느님의 영, 성령과 함께 일하시는 예수님께서 죄를 없애시는 의로운 길, 진리라는 것이다. 그 의로운 길의 정리~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로마3,21-22)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로마5,8-9.18-19) 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8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예수님)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예수님)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위에 모든 말씀이 공평하신 하느님의 진리, 정의인 것, 그런데 오늘 예수님 앞에 불순한 마음으로 앉아있는 사제들과 원로들은(앞26-27절 참조)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곧 율법(윤리-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자신들의 의로움의 길을 고집한다. 그런 그들에게 구원은 없다.

 

(로마10,2-3)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 인간의 도리, 그 자기 의로움을 구원의 의로운(진리) 길로 고집한다면~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죽음, 그 하늘의 의로움을 헛되게 하는 큰 불의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 에제18,26-28) 26 의인(하늘의 의로움을 받은)이 자기 정의(진리)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자기 의로움을 진리로)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 율법(윤리)은 법으로 죄의 심판을 주기 때문에 ~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생각을 바꾸어) 공정과 정의(십자가의 진리)를 실천하면(믿고 의탁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용서 받을 것이다.)

= 인간의 의로움은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것이 아니기에 구원의 힘, 권위가 없는 것,(아고2,10참조)

 

본문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 ‘가겠습니다’하고 가지 않은, 곧 아버지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믿겠습니다. 했지만 그 아버지의 의로움의 길이 아닌, 자신들을 고집하는 사제와 원로,

그러나 ‘싫습니다’했던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아 믿지 못한 죄인, 그 세리와 창녀,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 믿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요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인간의 윤리, 그 세상의 가르침들이 교회(성당) 안으로 들어와 많은 신자들이 그 세상의 말, 가르침을 구원의 진리로 속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을 위한 신앙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위한 신앙은 영원한 생명, 하늘의 생명을 주지만, 사람의 뜻을 위한 신앙은 세상 사람들의 칭찬은 받겠지만 영원한 죽음, 지옥의 삶을 줄 뿐이다.

 

(2베드2,20-21) 20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믿어) 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그 사람들이 그것(율법-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다시 말려들어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들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 21 의로움(십자가)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십자가 진리)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하였던 편이 나을 것입니다.

* 그러니 십자가가 주는 의로움, 그 하늘의 진리의 의로움을 놓치지 말고, 마음 안에 간직하는, 꼭 지키는 그 신앙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늘의 의로움 이신, 예수님(말씀)으로 그 예수님과 성령 안에서 뜻을 같이하고 ,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갇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제2독서 필리2,~참조)

 

(마태6,33) 33 그러니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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