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17일 일요일
[연중 제24주일] 만 탈렌트의 비유 (마태18,21-35)
제1독서<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집회27,30-28,7)
30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
28,1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2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3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4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5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赦)해 줄 수 있겠느냐?
6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7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화답송 시편103(102),1-2.3-4.9-10.11-12(◎8)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제2독서<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14,7-9)
형제 여러분,
7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2023년 09월 17일 일요일
[연중 제24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웃을 용서하는 일이 주님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전제로 선언됩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다음과 같이 청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이처럼 우리는 이웃을 용서하여야 할 당위성을 주님께 우리 죄를 용서받으려는 데에서 찾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자칫하면 하느님의 용서가, 우리의 선행으로 얻게 되는 보상이나 대가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오늘 복음의 비유는 오히려 우리가 용서받은 사실이 먼저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만 탈렌트를 임금에게 빚진 사람이 있습니다.
한 탈렌트도 노동자 하루 품삯(데나리온)의 육천 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인데,
무려 그 만 배에 해당하는 빚을 졌다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임금이 그 큰돈을 왜 빌려주었는지, 종은 그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
비유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전하여 주지 않습니다.
다만 놀라운 사실 하나를 간결하게 말할 뿐입니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전에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또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일일이 캐묻지 않으시고 그냥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용서는 어떠한 전제도 두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분의 자비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용서를 받은 뒤에 보이는 태도입니다.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의 빚을 탕감하여 줄지, 아니면 그 빚을 갚으라고 성을 내며 그를 감옥에 가둘지 말입니다.
이웃을 용서하여야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용서받은 체험과 그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입은 사람의 행동에 따라,
베푸신 자비를 다시 거두어들이실 수도 있는 분이심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4주일]
신앙 - 용서, 구원은 죄로부터 출발
복음 (마태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일흔 일곱 번 까지 용서(容恕)는 희년의 정신으로 하는 용서임을 배웠었다.
(레위25,8-9)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 숫양이 죽어 남긴 뿔 나팔 소리다. 곧 나팔 소리는 죄인들에게 용서(容恕), 자유(自由), 해방(解放)을 주시기 위해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복음 선포의 예표(豫表)다.
(레위25,10)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 그리스도를 통(通)해 거저 얻는 회복(回復)이다.
(1요한4,9-10)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인간(人間)은 용서 받아야 할 존재(存在)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 하늘 임금은 죄인(罪人), 원수(怨讐)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들 죄의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내주신 그 무조건적 용서, 자비, 사랑이심을 봤다. 그러니 그분 앞에서 심판(審判)을 받을 때, 그 하늘 임금님의 용서, 자비, 사랑만을 의지해야 한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 만 달란트-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조공(租貢)으로 바쳤던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이란다. 사람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金額)인 것이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 빚은 죄 값이다. 곧 우리의 죄 값은 우리 스스로가 갑을 길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 팔아- 자신이 갖은 모든 것이 아무 가치(價値)없음을 인정하는 버림, 자기부인(自己否認)을 하라는 것이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자기부인(自己否認)이 안 되니 자신이 갚겠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부인(自己否認)이 되었다면 “잘못 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다 갚겠단다. 어떻게 그 많은 빚(죄)을 ‘해결(解決)하겠다’는 것인지....
자신의 처지, 주제(主題)파악을 못하고 오만(傲慢)을 부리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사랑, 자비이신 분의 눈에 애초로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 무조건적(無條件的) 하느님의 은총(恩寵), 은혜, 용서, 회복이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 멱살을 잡고(프니고- 숨을 막다) 곧 죽이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용서, 죄의 더러움, 흉측함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없는 사랑, 자비로 자신의 추악(醜惡)한 죄가 없어졌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큰 잘못, 죄악보다 다른 이의 잘못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 고통만 보고 다른 이의 아픔, 고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다른 이의 잘못에는 사정이 없다. 그래서 숨을 막는 것이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죄)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죄)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로 용서 받았듯이 다른 이 또한 그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 받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 예수를,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대속(代贖)의 십자가를 지게 하셨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렸을 때 마음으로부터 용서(容恕)가 나오는 것이지 우리의 작심(作心), 결심(決心)으로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34절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는데 자신의 능력으로 갚을 수 없는 그 많은 빚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 답(答), 길은 회개(悔改)다. 자신의 생각에서 돌아서서 주인, 임금과 다시 셈을 하면 된다.
“주님! 저에게는 능력(힘)이 없습니다. 빚(죄)을 갚을 길(방법)이 없습니다.” 하는 그 자기 버림, 부인(否認)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대속 하시고 갚아주신, 주인께서 예비하신 그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다. “하느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시로 잘못을 하고, 실패하고 넘어진다.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십자가로 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주님의 십자가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하며 대속의 십자가를 예비하신 하느님께 감사가 나오게 되고, 그 감사가 나를 바꾸는(변화) 힘이 된다. 그래서 우리의 죄, 실패가 있는곳에 하느님의 은총(恩寵)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로마5,20-21)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모든 것- 희로애락(喜怒哀樂), 선과 악을 통해 선(용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이시다. 용서(容恕), 구원(救援)의 신앙(信仰)은 죄로부터 출발(出發)하는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 속죄 제물로 죽은 숫양의 소리, 곧 하느님의 사랑, 용서, 회복인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러 가셨을 것이다.
☨보호자 성령님! 당신의 가르침과 이끄심으로 우리 자신의 본질(흙-없음, 죄인)을 깨닫는 자기부인의 삶을 살게 하시어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 자비만을 의탁하는 자녀로 돌아가게(회복)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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