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묻고 그리스도교로 답하다 ![]()
행복한 현실
- 박용조 신부/ 부산교구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으로 분류한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종교는
절대자 신과 인간의 관계로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다루지만,
불교는 서양인들이 말하는 신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이며
또한 내세가 목적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붓다는 경전 곳곳에서
'나는 단지 고통과 고통의 소멸만을 가르칠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오로지 고통에서의 해탈만이 그의 관심사였음을 엿볼수 있다.
붓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추상적이고 철학적 논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이른바 무기(無記)의 태도를 취했다.
무기란 간단히 말하면
붓다가 형 이상학적인 물음에 대해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전유경]의
십난十難 과 독화살의 비유를 보면.
만동자라는 이가 붓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문에 해답을 주면 제자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떠나겠다고 했다.
곧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은 육체와 같은가? 각각 다른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등의 질문을 제시했으나
붓다는 독화살의 비유로 답을 대신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다고 한다면
일단은 화살을 뽑아 몸에 독이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누가, 왜, 어떻게, 어디서 쏘았는지
그리고
무슨 독을 썼으며
그 활과 화살의 모양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면 뽑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는 죽고 말 것이다.
이처럼 붓다는 세계는 영원한가? 그렇지 않은가?
영혼의 육체와 동일한가? 별개인가? 등
그런 현실성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 난뒤
범행을 배우겠다는 것은
마치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독화살의 상태와 독의 종류
그리고
그를 쏜 사람이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것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그는 고통이라는 화살을 맞은 인간의 상처를
어떻게든 치료해서 완쾌될 것만 생각하지
그 범위를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불교를 접하는 우리도 한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붓다의 어떠한 가르침도 바로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야지
그 범위 밖의 다른 영역에서 알아들으려 하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프간 박물관(Afgan Museum)소장된 『붓다의 두상(Head of Buddha
이어서 붓다는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법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나는 이러한 이치를 한결같이 말하나니
고苦와 고습苦習 과 고멸도적을 나는 한결같이 말한다...
이것은
이치에도 맞고 법과도 맞으며
범행의 근본이며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한결같이 말한다.."
라고 했다.
이처럼 붓다가 한결같이 관심의 대상으로 두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 추상적이거나 관념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이자 현실적인 문제인 '고통'이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자각과
그 고통의 원인으로서의 집착이 무엇이며
그러한 고의 소멸과 소멸의 방법이라 할 수있다.
이른바 사성제 ,
곧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하여
불교의 모든 교리 가운데서 핵심인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중에서 이 부분이 생각난다.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놀고 있는
예쁜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지만
몇십억짜리 집을 보았다고 하면
그때서야 좋은 집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랐을 때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거나
엘리야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 이라고 한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다.
우리의 대답은 어떠할까?
참으로 우리 삶의 현실 가운데,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분으로 믿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우리와 동떨어진 하늘나라 저 멀리
그저 추상적으로나 관념적으로만 계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 걸까?
신앙은 비록 내세를 지향하지만,
현실, 곧'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현실에서
시작하지만 그 완성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사순절이 시작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고 하셨다.
그래,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특히 십자가
곧 고통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자.
출처: 야곱의 우물 2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