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부와 함께 있던 들러리들이 신부를 뒤에 두고 밖으로 나가 신랑을 횃불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횃불은 막대기를 심지로 삼아 기름에 적신 헝겊으로 둘러싸였습니다. 횃불이 꺼져 갈 때는 기름에 적신 새 헝겊으로 감아 주어야 했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신랑이 여느 혼인식과 달리 도착하는 것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등잔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은 그 말씀을 실천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불을 켠다는 것은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평소에 하느님의 말씀을 잘 실천한 이들은, 가장 작은 이웃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때에도 그분을 알아보고 잘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잘 실천해 보지 못했던 사람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래서 제대로 모시지도 못합니다.
운동선수는 평소에 열심히 연습해야 시합 때에도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정적일 때에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죽이라는 대나무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에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재를 허송세월하며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모죽처럼 인내하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준비의 시간이 모두 지난 뒤에는 엄청난 성장이 바로 내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켰던 모세는 40년 동안 숨어 살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30년 동안 소년과 목수의 삶을 사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분들도 이렇게 30년 이상의 시간을 준비했는데, 우리는 얼마나 급하게 내가 원하는 결과만을 요구하고 있었을까요? 특히 마지막 그 순간, 우리들이 모두 원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해서 깨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준비에 대해 늘 소홀한 우리는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우리들에게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신랑을 맞이하러 나온 열 처녀의 비유지요. 기름을 미리 준비해 놓은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기름을 미처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은 급하게 기름을 사러 갔다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지요.
여기서 복음은 잘 준비한 처녀를 슬기로운 처녀라고, 또 준비하지 못한 처녀는 어리석은 처녀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로 슬기로움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의 기준으로 많은 것을 가졌느냐에 따라 구분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신랑 맞을 준비를 잘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슬기로움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슬기로움의 기준은 바로 준비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마지막 순간을 위한 준비를 잘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슬기로움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마지막 그 날을 위한 준비를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그 마지막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일한 마음을 품어서도 안 되고, 또한 아직도 멀었다면서 나중에 하자고 뒤로 미루는 생활을 해서도 안 됩니다. 바로 지금 마지막 날을 위해 깨어 준비하는 사랑의 삶, 이 삶만이 슬기로운 사람으로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음을 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 25,1-13
풍습은 다르지만
반영억라파엘신부
멕시칸의 결혼식과 인도 사람의 결혼식, 그리고 미국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로 문화가 다르지만 복을 빌어주고 헤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자녀의 풍요를 누리기를 바라는 기원은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신랑신부를 끈으로 묶는 행위라든지 반지를 교환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쌀을 뿌리는 행위를 통해서 복을 기원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약의 선언 후 성모님께 꽃을 봉헌하는 모습을 통해 신앙인의 모습을 새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유다인의 결혼 풍습은 약혼을 먼저 합니다. 그리고 약혼으로 법적인 혼인이 성립되지만 약 1년간은 신부가 친정에 머물러 있고 부부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으로 갑니다. 신부 집에서는 신부 친구들이 등불을 밝혀 들고 신랑을 마중합니다. 그리고 신랑 일행이 도착하면 함께 들어가 밤새도록 잔치를 벌입니다. 왠 등불이냐고요? 사막지역은 낮에는 너무 더우니까 밤을 이용하는 거죠. 그렇다면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처녀들은 신부의 친구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였고 다섯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신랑이 일찍 왔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늦어져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실 등잔에 기름이 없으면 있으나마나 입니다. 따라서 등잔불을 밝히려면 언제나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하루일정을 마감하며 자동차의 주유상태를 확인합니다. 혹 급한 일이 있어도 일정거리를 갈 수 있도록 하기해서 입니다. 간혹 미처 확인을 하지 못하는 날이면 하필 그날에 일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하루쯤이야! 하고 방심하는 그날이 심판의 날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5,13)
기름을 채운다는 것은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실천에 옮긴다는 말씀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천상잔치에 참여하기위해서는 늘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혼인 풍습은 다르지만 그 안에 예식이 의미하는 알맹이가 있듯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 하기위해서는 행동하는 믿음의 알맹이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예기치 않은 시간에 갑자기 오시더라도 더 큰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할 일 없이 보낸 오늘 나의 하루가 어제 죽은 그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한 바로 그 내일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순간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천국에 가면 놀랄 3가지가 있는데 1). 와야 될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오지 않은 것이고 2). 못 올 것 같다고 생각한 사람이 와 있는 것이며 3). 내가 거기 와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남아있는 사람에게 미안한 것도 있는데 1). 이렇게 좋은 곳에 혼자 와 있어서 가족에게 미안하고, 2). 나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서 미안하고 3).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혈, 성인들의 통공과 가족, 이웃들의 희생과 기도로 온 것이기에 미안하답니다. 천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자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