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보면 바리사이와 군중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릅니다. 군중의 눈에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만이 보입니다. 그래서 군중은 예수님을 예언자나 메시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수석 사제와 바리사이 눈에는 율법만 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갈릴래아 출신의 천한 신분으로만 이해합니다. 지성인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이들이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 모건(Marlo Morgan)이 쓴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 가운데 “참사람 부족”이 있는데, 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모든 생명체를 형제자매라고 여기며 사는 부족입니다. 그들은 문명인을 가리켜 “무탄트”라고 부르는데, ‘돌연변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현대의 문명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어머니인 대지를 파헤치고 나무를 베고 강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이들의 눈에는 오히려 현대인이 돌연변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문명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참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며, 그 근본부터 인간성이 왜곡되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적 가치가 영적 가치를 지배하고 있고, 개발과 경제 논리가 온 산하(山河)를 파헤치며 생명의 가치를 짓밟고 있습니다. 만일 ‘참사람 부족’ 사람들이 우리 나라 현실을 안다면 우리를 ‘무탄트의 나라’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하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 이해를 넘어 더 깊은 곳을 바라보는 영적 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구구한 생각
반영억신부
어떤 교수는 ‘구약성경은 한국의 선황당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을 연구한다면서도 ‘신약은 구약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을 통해 밝게 그 의미가 드러난다.’는 가장 기본적인 성경해석의 원칙을 외면한 채 자기가 아는 것이 다 인양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신앙의 책인 성경을 알량한 지식으로 다 알 수 있고 또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하긴 마귀도 성경을 인용하며 예수님을 유혹하였으니 성경에 대해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을 아무리 많이 연구한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온 몸으로 살지 않는 한 결국 하느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간 경비병이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7,46) 하고 말할 정도로 예수님의 말씀은 특별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가 다윗의 고향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을 통해서만 진정한 만남을 이룰 수 있고 또 알게 됩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고, 사심 없는 눈으로 보아야 볼 것을 볼 수 있거늘 자기 안에 갇혀 있으니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복음 요한7장 52절의 말씀에서 바리사이들은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하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샅샅이 뒤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려 애쓰는 대신 그를 가리켜 보이고자 기록된 언어의 숲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에 견주면, 성경에 무식한 경비병의 눈이 오히려 밝았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체로 학자들이 무식한 것은 그들의 지식이 눈에 대들보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이현주) 그러니 섣불리 지식을 자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학사’는 ‘이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다.’라고 깨달은 사람이고, ‘석사’는 ‘알고 보니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랍니다. ‘박사’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더니 남들도 아무 것도 모르더라.’를 깨달은 사람이고, ‘교수’는 ‘어차피 다들 모르니까 이거라도 우기자’ 라고 행동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랍니다.
하느님 앞에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자기 것을 아무리 우겨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헛된 바람을 지니지 말고 기도와 성사에 적극참여 함으로써 그분을 더 깊이 만나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뭘 좀 안다고 스승행세를 하지 말고 행동으로 표양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신앙고백입니다. 따라서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