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사랑을>마르코 12,28-34

2011. 4. 1. 오전 7:41:48

글자
 
2011년 4월 1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re is no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Mk.3.30-31)
 
 
제1독서 14,2-10
복음 마르코 12,28-34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삶 속에서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늘 찾고 있는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없는 하느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요?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하느님께서는 신선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체험되시는 분입니다.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 영혼과 육신이 지쳐 있는 벗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때 사랑이 생겨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사랑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오로지 관계 속에서만 그 실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늘 이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관념적 사랑일 따름입니다. 한편으로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에로스적인 사랑에만 머물게 됩니다. 나와 이웃과 하느님에 이르는 삼각형의 구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곳은 바로 내가 만나는 이웃과 맺는 관계 안에 있습니다
.


열매 맺는 사랑을  (반영억신부)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때가 되면 싹이 돋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긴 겨울의 추위와 이른 봄 때 아닌 눈발을 날려도 결국은 생명의 싹을 틔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이곳 감곡은 복숭아 산지로 나무전지를 마치고 풍성한 수확을 희망하며 거름을 주고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희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람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여하에 따라 다양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어떤 열매를 맺을지를 오늘 복음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12,30)는 것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12,31)는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명에 대하여 동의를 표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하고 이르셨습니다.(마르12,34)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고 하였지 아직 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충실하여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열매 맺는 삶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으로써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여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그리하여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열매 맺는 삶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성사에로 인도되어 구원을 선물로 얻는다면 그보다 더 큰 열매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많이 사랑하십시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4,12) 그러므로 열매 맺는 사랑에 목말라 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어떤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기위해 강단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십니까?" 신자들이 일제히 "아니요"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십니까?" 그러자 신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아시는 분들에게 제가 뭘 말씀드리겠습니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아십니까?" 그러자 "예", "아니요" 대답이 절반씩 나왔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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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언 마태오신부
여러분들은 주님의 말씀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있나요? 글쎄요. 사랑을 잘 실천하지 않는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사랑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미움은 어떤 것 같아요? 사랑하지도 않지만, 미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얼마 전, 저는 사랑의 마음을 의도적으로라도 갖지 않으면 미움의 감정은 끊임없이 생겨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께 강의 때문에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3시간 정도는 운전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지요. 그런데 3시간을 운전하면서 미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갑자기 제 앞으로 끼어드는 차, 제가 빨리 가지 않는다고 라이트를 깜빡 거리면서 운전을 독촉하는 차, 달리는 차창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등등 3시간 동안 참 많은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마음속으로 단죄했습니다.

평소에는 사람들을 판단하지도, 미워하지도, 또한 단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 마음속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보다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말을 하고 가장 많이 듣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실천하기 힘든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아주 재미있게 풀이했습니다.

*제품명 - 사랑

*용량 - 상처받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부담주지 않을 만큼 사랑하며, 헤어져도 미워지지 않을 만큼 사랑해야 한다.

*효능 - 세상이 무조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입에서 콧노래가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기대감이 생긴다. 열등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자유롭다. 자신이 살아있음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

*보관방법 -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야 한다. 변질되지 않도록 상호간에 늘 끊임없는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유효기간 -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용 시 주의사항 - 다음 사항들을 늘 염두에 두고 지켜 나가야 한다.

상대를 먼저 늘 배려할 것, 끝까지 믿을 것, 우선 참을 것,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눌 것, 화내지 말 것, 성급해 하지 말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여야 한다.

*부작용 -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경고 - 집착과 사랑, 이 둘은 서로 비슷하니, 반드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권장소비자 가격 - 돈으로 헤아릴 수 없다. 오직 희생으로만 구입이 가능하다.

*제조원 - 하늘나라 주식회사

*제조 및 공급자 - 하느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의 계명이 모든 계명들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이 사랑은 제조원이 하늘나라 주식회사고, 제조 공급자가 하느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과 정반대의 길로 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제는 철저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사랑의 계명에 충실한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의 나라는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불행은 예고 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모면할 길은 없다. 그러나 불행을 밟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언제나 우리에게 존재한다.(발자크)



 

 

2005년 5월 31일, 기네스북협회는 1925년 6월 1일 결혼한 영국인 퍼스 애로스미스와 프로렌스 부부가 ‘결혼 기간’ 부문에서 80년이란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다음 날인 6월 1일, 80회 결혼기념일을 맞은 이 부부는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로 사랑하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남들처럼 우리 부부도 가끔 다툽니다. 하지만 그날을 넘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화가 난 채로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키스를 한 뒤 꼭 껴안은 채 잠들 수 있답니다.” 또한 “배우자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미안하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라는 말도 잊지 않고 말했다고 하네요.

80년이라는 결혼생활. 이 부부의 말을 보면서, 그 기간을 그냥 보낸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이 부부가 위대해 보이더군요. 더군다나 싸움이나 분쟁 뒤에 화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이 부부는 그 화해의 시간을 아무리 못해도 하루를 넘기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살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마음 때문에 ‘미안하다’라는 말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었겠지요.

바로 이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여 보았으면 합니다. 얼마나 서로를 위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지요? 혹시 나만 인정받는 사랑을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다툼이나 분쟁이 있을 때 얼른 화해를 하지 못하고 계속 몇 날 며칠을 서로 끙끙대면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또한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싸우고 나서 곧바로 화해를 했을 경우와 몇 날 며칠 동안 서로 화해하지 못한 경우를 떠올려 보십시오. 싸우고 나서 곧바로는 자존심 때문에 정말로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가 힘들지요. 하지만 먼저 화해를 청하고 나면 그 다음은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화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떤가요? 계속해서 찝찝하지요. 또한 미안하다고 말은 해야 하는데 하면서 입에서만 계속 맴도는 그 말을 하지 못해서 불안한 마음까지도 간직하게 되면서, 몇 날 며칠 동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이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부부간의 사랑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지요. 이 세상 안에서의 모든 만남에서 이 원칙을 지켜나간다면 우리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 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나만 인정받으려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려는 사랑. 그리고 내가 먼저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겸손한 모습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는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계명을 제대로 이해한 율법학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우리들의 사랑 실천은 어떤까요? 주님께 이런 칭찬을 받을 정도로 사랑을 잘 이해하고 잘 실천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사랑>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입장이 난처해진 신랑을 위해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장면?  죄를 짓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시는 장면?  수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죽은 이를 살려내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장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장면? 제자들을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신 장면?

아니면, 정반대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혹독하게 비판하시는 말씀?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채찍으로 쫓아내시는 장면?  그 모든 장면과 말씀들이 전부 다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바로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 11,35).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우셨습니다(루카 19,41).  예수님의 눈물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안타까움, 슬픔, 안쓰러움, 가엾음, 측은함 등을 모두 포함하는 슬픈 사랑... 예수님의 눈물은 마치 가득 고인 사랑의 샘물이 넘쳐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에 어린 아이가  생일 선물이나 어린이날 선물을 받을 때에만 부모의 사랑을 느낀다면 아직 철이 덜 든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철이 덜 든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철없던 자녀들이  자기 때문에 부모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바로 그때가 철이 들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무슨 은총과 복을 받고 좋아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아직 철이 덜든, 초보적인 단계의 신앙입니다. 그러다가 회개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리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그래서 스스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그때부터가 신앙의 철이 들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성체조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가를 부르다가, 미사 참례를 하다가, 어떤 기도를 하다가, 자기 설움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면서 눈물을 흘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랑'을 주제로 강론글을 쓰거나 묵상글을 쓸 때마다, 또는 강론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아무리 그럴듯하게 설명을 해도 늘 말장난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거나 강론을 들을 때에도 말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고,  하느님에 대해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에 대해서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고 체험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부모들, 특히 엄마들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특별히 무슨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녀를 바라볼 때 느끼는 애틋한 감정, 뭔가 안쓰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복잡 미묘한 그 감정이  진짜 사랑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직접 낳고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흔히 하는 말,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어봐라, 그러면 지금의 내 심정을 알 것이다, 라는 말...  그런데 정말로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부모의 사랑을 잘 모르는 것이 자녀들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직접 예수님이 되어볼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지금의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다고 생각해야 회개가 시작되고, 사랑이 시작됩니다.  누구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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