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일(마태4,1-11)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온갖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시간 유혹에 관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시길 기도합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이 지상의 순례생활에는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유혹을 당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혹을 받지 않을 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완전하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더 큰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악의세력은 거룩함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에서 지면 보통 사람이고, 이기면 그야말로 큰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많은 대학교가 설립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악마 대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가장 인기 좋은 학과는 ‘음란 비디오과’이고 개교 이래 인기가 변하지 않는 학과는 ‘술주정과’, 장래가 촉망되는 학과는 ‘마약과’입니다. 이 대학교의 교양필수과목은 ‘유혹’입니다. 유혹의 첫 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첫째.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뭘’ 둘째. ‘대수롭지 않은데 뭘’. 셋째. ‘딱 이번 한번 만이야!’ 랍니다. 유혹은 이렇게 평범하게 다가옵니다.
성경을 통해 유혹을 극복한 인물을 보면 구약의 요셉은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보디발의 부인은 요셉의 옷을 붙잡고 침실로 같이 가자고 꾀었습니다. 요셉은 옷을 그의 손에 잡힌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창세 39,11-12)
다윗은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오히려 죽임으로써 원수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알리는 아비새를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치워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어른에게 손을 대고 죄를 받지 않겠느냐?”(1사무 26,8-9) 하며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3번의 유혹을 받으셨는데 “성경에 기록 되어있다.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4,7)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4,4).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4,10) 하시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뱀과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창세3,1-7) 그리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창세19,26) 에사오는 떡과 불콩죽을 받아먹은 후 야곱에게 장자의 상속권을 팔아먹었습니다. 아론은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제단을 만들고 축제를 올렸습니다.
다윗은 어느날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고 결국 그 여인을 불러다가 정을 통하고 돌려보냈습니다.(2사무 11,2-4) 다윗은 유혹을 이긴 사람이기도 하지만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좋은 결심을 해도 한 순간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한번 이겼다고 해서 방심할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5,8)
가리옷 유다는 적신 빵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하고 이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때는 밤이었습니다.(요한 13,25) 그리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그렇다면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만해서 그렇습니다. 이사야서 47장10절에서는 “네가 실컷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나를 감시할 눈이 없다.’하고 자신만만이구나. 너는 지혜로운 체, 세상일을 다 아는 체하며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다.’고하다가 제 꾀에 넘어가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뱃속까지 환히 들여 다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데 하느님을 의식하지 못한 탓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자기 욕심에 끌려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 옵니다.”(야고 1,14-15)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이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기를 청한 다음 겟세마니 동산에 오르시어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부탁하고 조금 더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마르14,36) “기도를 마치시고 세 제자에게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하시며 한탄 하셨습니다.(마태26,40-41)
이성과 육이 따로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한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로마7,15.21)
주님의 기도에서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새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에페4,21-24)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에게서 힘을 받아 굳세게 되고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 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우리의 전투의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6,10-17) 하고 말합니다. 결국 말씀과 함께 할 때 유혹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하면 유혹은 은총입니다. 자신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혹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소유와 지배, 명예, 현세적인 권세, 정치적인 유혹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능력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으십니다.(히브2,18)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며 필요하기도 합니다. 유혹은 자신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기회이며 주님께 간절히 매달릴 때입니다.
어떤 신부님은 술독에 빠졌습니다. 매일같이 술을 퍼마시며 살았습니다. 알콜중독이 되었습니다. 신부가 알콜중독이 되었다니 말이나 됩니까? 인간은 그렇게 연약합니다. 어느날 성경을 읽다가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2,16-17)라는 말씀을 “너는 술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다른 음식은 다 먹어도 된다. 그러나 술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그리하여 어둠에서 빠져나와 술을 끊었다고 합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유혹이 없기를 기대하지 말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쌓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사시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반신부님과 함께하는 복음묵상에서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바로 ‘당신’이시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지나쳤던 가난한 이들이 예수님 당신 모습이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을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분이 되셨습니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헐벗고 굶주린 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 속의 수많은 성인들이 바로 이 말씀 때문에,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온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모시고 사는 ‘주님’이 우리 삶 안에 계셔야 합니다. 방에 십자고상만 있다고 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에서 주로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요? 그리고 왜 그들을 만나는지요? 그 만남에서 우리 자신이 섬기는 가난한 이웃은 얼마나 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