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열심(요한 5,31-47)

2011. 4. 7. 오전 7: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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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 7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요한 5,31-47)

 

You search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you have eternal life through them;
even they testify on my behalf.

But you do not want to come to me to have life.

 

 

말씀의 초대

사람들은 모세가 없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며 타락한 생활을 한다. 모세는 주님께 주님의 백성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간청한다. 주님께서는 그 간청을 들어주신다(1독서). 요한의 타오르는 불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빛이었다. 구약의 모든 예언과 말씀도 예수님을 향해 있다. 그런데도 유다인들 마음에는 하느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공산화되어 사회 전체가 공산 체제로 바뀌었을 때의 일입니다. 공산 정부는 교회의 모든 종교 행사를 금지하였고,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수용소에 몰아넣고 같은 제복을 입히고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심지어 수용소 안에서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성경은 물론 성경 구절이 적힌 쪽지조차도 지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날이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자 그들은 저마다 외우고 있는 성경 구절을 나누면서 그날의 양식으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씀을 나누면서 말씀의 힘으로 힘겨운 강제 노역을 견디어 냈고 온갖 학대에서도 경비병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그 사랑에 감동하여 경비병들이 회심하기에 이릅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우리 삶에 힘과 생명을 주는지를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마치 물이나 공기처럼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모르던 말씀이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는 한 모금 생수처럼 우리 삶에 힘과 위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
말씀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경탄하며 힘을 얻어 주님을 찬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성경은 죽은 글자일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 특히 지도자들을 꾸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날마다 단 한 구절이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깊이 새기고 살면 말씀이 생명이 되어 우리를 영적으로 살아 있게 합니다.

 

☆☆☆

 

 

유다인들은 신심 깊은 민족입니다. 계율에 충실했고 철저하게 주님을 신봉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못하였습니다. 그분의 숱한 기적을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그토록 예언했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제도에 안주했기때문입니다. 그들은 비판을 가하시는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바랐던 메시아와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판단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독단은 무섭습니다. ‘자신의 틀안으로 하느님까지 끌어들이려 합니다
.
그러므로 진실은 알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진실은 더욱 어렵습니다. 오늘은 사실로 믿었던 것이 내일은 아닌 것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거짓으로 알았던 것이 내일은 진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문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행동 몇 가지만으로 사람을 단정한다면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유다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배척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오해의 삶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신앙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하고 애쓰는 만큼 알아주지 않더라도섭섭해하면 안 됩니다. 불공평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한 차원높은 삶을 깨닫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증언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이러한 증언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요한 세례자가 이미 증언하였고,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미 증언해 주셨지만, 유다인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하지만,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주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지 못하는 것 역시 믿음이 없는 결과라고 한탄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강론과 강의 그리고 성경 공부와 피정 등을 통하여 주님에 관하여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있어도, 주님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님은 우리의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한 주님에 관한 정보일 수 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만나 보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눈 먼 열심

 반영억신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풍성한 수확도 기대할 수 있으니 신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열심 하지만 눈먼 열심으로 쉽게 지치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 안에 화를 쌓게 됩니다. 따라서 참된 열심을 지녀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5,39-40) 유다인들은 열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하느님에 관해서, 메시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루두루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심지어 하느님의 의를 세우고 하느님의 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예수님을 처형 하였습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연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헛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도 참 바쁘게 움직이며 많은 일을 합니다. 또 해야 합니다. “네가 힘껏 해야 할 바로서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나 하여라. 네가 가야하는 저승에는 이도 계산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코헬 9,10) 그러나 그 일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하느님 마음에 꼭 드는 일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우리는 실상 많은 일을 하면서도 주님의 일에는 소홀합니다. 많은 지식을 쌓으면서도 주님을 진정으로 마음에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 서적을 보는 시간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신심서적을 읽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합니다. 텔레비전 앞에서는 몇 시간을 보내지만 성경을 펴 들고 있는 시간은 너무도 미약합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에 관해서 열심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 15,58)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로마12,11)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굼뜸이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을 바칩니다. 오늘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 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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