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4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예수께서 “집에 돌아가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 하시니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요한 4,43-54)
Jesus said to him,
"You may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believed
what Jesus said to him and left.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20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 21 그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이사야서 65,17-21)
◎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 주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하시어, 원수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당신이 제 목숨 저승에서 건지시고,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리셨나이다. ◎
○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
○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니, 주 하느님,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그때에 43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요한 4,43-54)
예수님의 기적은 이런 예수님의 ‘사량’(思量)에서 나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고 헤아리는 연민의 마음에서 기적의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런 사랑은 우리 믿음의 응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받고자 하는 믿음의 크기만큼 그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들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왕실 관리의 모습이 좋은 예입니다. 왕실 관리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단 한마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는, 두말없이 ‘믿고서’ 왔던 길을 돌아갑니다. 그의 단순하고 확고한 믿음이 아들을 살렸습니다.
믿음은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 크고 비어 있을수록 하느님의 사랑의 은총은 쉽게 작용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오히려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량’(思量)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박순웅 목사-
콩·들깨·감자·옥수수·호박·배추 등 먹을거리를 들여다보면 신비롭다. 보이는 것보다도 보이지 않는 무수한 것들의 믿음이 서로에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열매가 맺혀진 것이다.
벌써 10년 전쯤 일이다.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할머님 한 분이 교회를 찾아왔다. 예배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님이 “목사 양반, 누군가가 교회에 가면 이 몹쓸 병을 고쳐준다 해서 왔는데 얼마만큼 다니면 나을 수가 있는 거유?” 하시는 것이었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난 잠시 후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할머님의 믿음으로 나을 수 있어요.” “그럼 내 잘 믿어봐야겠구먼!” 하시고는 가셨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별 차도가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성경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고 교우들과의 교류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시면서 3년째 되는 어느 해 몸이 급격히 쇠하여졌고 급기야는 운명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목사를 찾기에 급히 갔더니 숨을 쉬면서 예배를 인도해 달라신다. 교우들과 예배를 드리고 나니 조금 차분해지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교회에 처음 나가서 내 병 고쳐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던 것 기억하세요? 이제 세월이 가고 교회의 생활과 성경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주 조금 알 것 같아요. 이제 나는 다 나아서 돌아갑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까요.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이 많았죠? 이제 다 나아서 가니 목사님께도 고맙습니다.” 할머님의 말을 들은 나는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돌아가시는 마당에 다 나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고백하는 신앙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신비로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그분을 고백하고 그분 때문에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은 기적과 이적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낮은 곳으로 오심과 소외되고 외진 구석의 보이지 않는 골고타 사건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경험을 어떻게 머리로 이해하랴!

구원을 부른 고통 ~반영억신부~
왕실의 한 관리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앓아 누웠습니다.
그러자 그 관리는 예수님께 쫓아가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주님,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4,48-49) 하며 사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거라. 네 아이는 살아날 것이다”는 예수님의 응답을 얻어냈고 그 시간에 아이는 나았습니다.
왕실의 관리가 예수님께 사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들 때문입니다. 아들의 고통이 관리를 사정하게 했고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면박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네 아이는 살아날 것이다’ 는 말씀에 두 말 없이 믿음을 걸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살아났고 온 집안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고통이 하나의 시련이었지만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왕실의 관리의 믿음이 만나서 아이는 살아났고 온 집안이 믿게 되었습니다(요한4,53).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주십니다”(야고5,10).
믿음 없이 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제서야 밤을 지새며 기도하고 부산을 떠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매달리면 주님께서 그 마음을 헤아려 주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채워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실의 관리가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가시길 원했지만 예수님은 한마디 말씀으로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낫게 해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지혜16,12).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4,12-13)
그러므로 내 방식으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심을 믿고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 하십시오”(로마12,12). “아무것도 걱정 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필리피4,6-7).
고통은 결코 죄의 벌이 아닙니다. 한편으로 하느님의 섭리요, 은총의 기회입니다. 또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부활의 기쁨으로 끝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꼈을 때는 이제 다가올 부활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모두가 다 귀한 것입니다. 고통 이라할지라도....이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자 하시는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아듣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더욱 튼튼하여지고 아름다워지길 빕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