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월요일] 세상의 빛 (요한 8,12-20)
음욕에 빠진 바빌론의 두 늙은 원로 재판관이 무죄한 유다 여인 수산나를 곤경에 빠뜨리지만, 주님께서는 젊은 다니엘을 세우시어 주님을 경외하는 아름다운 이 여인을 구해 내신다.(다니엘 13,1-9. 15-17. 19-30. 33-62)
그 무렵 1 바빌론에 요야킴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2 그는 수산나라고 하는 힐키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3 수산나의 부모는 의로운 이들로서 그 딸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교육시켰다. 4 한편 요야킴은 아주 부유한 사람으로서 넓은 정원이 그의 집에 맞붙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큰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늘 그를 찾아오곤 하였다.
5 그런데 그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그들을 두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빌론에서, 백성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재판관인 원로들에게서 죄악이 나왔다.” 6 그들이 줄곧 요야킴의 집에 있었으므로, 소송거리가 있는 이들은 모두 그리로 그들을 찾아갔다. 7 한낮에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수산나는 남편의 정원에 들어가 거닐곤 하였다. 8 그렇게 그곳에 들어가 거니는 수산나를 매일 눈여겨본 그 두 원로는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게 되었다. 9 그들은 양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린 채, 의로운 판결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15 그들이 알맞은 날을 엿보고 있을 때, 수산나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녀 둘만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이 무더웠으므로 그곳에서 목욕을 하려고 하였다. 16 거기에는 숨어서 수산나를 엿보는 그 두 원로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17 수산나는 하녀들에게, “내가 목욕을 하게 올리브 기름과 물분을 가져오고 정원 문들을 닫아걸어라.” 하고 말하였다.
19 하녀들이 나가자마자 두 원로는 일어나서 수산나에게 달려가 20 말하였다. “자, 정원 문들은 잠겼고 우리를 보는 이는 아무도 없소. 우리는 당신을 간절히 원하오. 그러니 우리 뜻을 받아들여 우리와 함께 잡시다. 21 그러지 않으면, 어떤 젊은이가 당신과 함께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당신이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증언하겠소.”
22 수산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는 꼼짝 못할 곤경에 빠졌소. 그렇게 하면 그것은 나에게 죽음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오. 23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들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편이 더 낫소.” 24 그러고 나서 수산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두 원로도 수산나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더니, 25 그 가운데 하나가 달려가서 정원 문들을 열어젖혔다. 26 집에 있던 사람들이 정원에서 나는 고함 소리를 듣고, 옆문으로 뛰어들어 가 수산나에게 일어난 일을 보았다. 27 원로들이 저희 쪽의 이야기를 하자 하인들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였다. 수산나를 두고 누가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28 다음 날, 수산나의 남편 요야킴의 집으로 백성이 모여들 때, 그 두 원로는 수산나를 죽이겠다는 악한 생각을 가득 품고서 그리로 갔다. 29 그들이 백성 앞에서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요야킴의 아내, 힐키야의 딸 수산나를 데려오게 하시오.” 그러자 백성이 사람을 보냈다. 30 수산나는 부모와 자녀들과 모든 친척과 함께 나왔다. 33 그러자 수산나 곁에 있던 이들과 그를 보는 이들이 모두 울었다.
34 그 두 원로는 일어나 백성 한가운데에서 수산나의 머리에 자기들의 손을 얹었다. 35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 그 두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단둘이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이 여자가 여종 둘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가더니, 정원 문들을 닫아걸고서는 여종들을 내보냈소. 37 그때에 숨어 있던 젊은이 하나가 이 여자에게 가더니 함께 누웠소. 38 정원 구석에 있던 우리는 그 죄악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들에게 달려갔소. 39 그리고 둘이서 정을 통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자가 우리보다 힘이 세어 붙잡을 수는 없었소. 그래서 그자는 문을 열고 달아나 버렸소. 40 그 대신 이 여자를 붙들고 그 젊은이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41 이 여자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았소. 이것이 우리의 증언이오.”
그들이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회중은 그들을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시편 23(22),1-3ㄱ.3ㄴㄷ-4.5.6(◎ 4ㄱㄴㄷ)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에제 33,11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며 당신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2-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12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16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19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20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송영진 모세 신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이 말씀의 뜻은, "나는 어둠 속에 있는
너희를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이다.
너희가 구원과 생명을 받기를 원한다면 나를 따라라."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이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어둠 속에 있다는 것, 또는 어둠 속을 걷는다는 것은 멸망을 향해서 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허무하게 멸망하게 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세상이 어둠 속에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또는 "내 인생은 어둡지 않다." 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는데(마태 4,8)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영광은 사탄의 것이고,
그것은 생명의 빛이 아니라 사람들을 속이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을 속이는
가짜 빛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휘황찬란하지만, 생명의 빛이 아니라 죽음의 덫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빛이라고
착각하면서 살다가, 즉 자기는 빛 속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나는 나의 종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가 필요 없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는 예수님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구원과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예수님만이 유일하고 참된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와 신앙이 없어도,
또는 종교와 신앙이 달라도 착하게, 또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모두 무조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구원받기에 합당하다면 그들도 어떻게든 구원받겠지만, 그러나 스스로 하느님 나라가 아닌 쪽을 향해서
간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생명을 얻기를 바라고 나를 따른다면 어둠 속을 걷지 말고 나만
따라라." 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예수님만 믿고, 그 믿음을 실행하는 삶을 뜻합니다.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마태
7,21).
배반자 유다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 사람이지만, 마지막에 사탄의 유혹에 빠졌습니다(루카 22,3).
예수님을 따른다면 '예수님만' 따라야 하는데, 사탄을 따라간
것입니다.
우리도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르 4,18-19)."
'세상 걱정, 재물의 유혹, 여러 가지 욕심'은 우리가 예수님만 따르는 것을 방해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게 만드는 걸림돌입니다.
말하자면 신앙 여정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고장 난 신호등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라는 말씀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고, 당신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동참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그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사람들이 아버지를 찬양한다는 말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빛을 잘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착한 행실'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단순히 착하기만 한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기본이고(당연한 일이고), 믿음, 희망, 사랑, 기쁨이 가득한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어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 실천을 중단하면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려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또 가장 첫 번째로 할 일은 역시 '기도'입니다.
배반자 유다가 예수님을 따라가다 말고 사탄의
길로 빠진 것은 아마도 분명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다는 늘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 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평소에 꾸준히
기도한다면 믿음, 희망, 사랑, 기쁨, 감사가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지지만,
만일에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모두 차츰
희미해지다가 결국에는 사라지게 됩니다.
가지고 있던 빛을 모두 잃고 어둠 속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시각각 변화 발전하는 세상의 물질문명은 화려해 보여서, 늘 우리를 유혹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들은 수산나 이야기는 화려한 이방 문화에 자극받는 히브리 백성들의 특별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수산나는 두 원로에게 유혹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하느님만을 충실히 믿으며, 선조들의 신앙을 버리지 않은 의인들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니엘의 개입으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고 정의가 승리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도 세상의 너무 편안한 삶으로부터 오는 많은 유혹을 잘 견디어 내고 주님의 빛을 놓치지 말라는 큰 지침을 던져 줍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등불은 등경 위에 얹어 놓아야 한다며, 제자들에게도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13-15). 성전에서의 빛은 하느님의 현존을 뜻하고, 사막에서 빛나던 구름을 기억하게 합니다. 새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신성이 완전히 드러나고, 그분은 우리를 새로운 이집트에서 진정한 자유의 세상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빛나는 현존이십니다.
죄의 개념이 무뎌지고 정의가 흐려져 가는 오늘날, 고뇌와 좌절의 어두운 밤을 걷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더욱 밝게 빛나야 합니다. 자연을 파괴하며 돈만 숭배하는 오늘날, 세상이 주는 유혹과 협박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