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목요일]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 (요한 5,31-47)

2016. 3. 10. 오전 5:15:14

글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 (요한 5,31-47)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라 (요한복음 5:39 - 5:47) / CGNTV제공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자 주님께서 진노하신다. 모세가 주님의 계약을 상기시키며 애원하자 주님께서는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신다.(탈출 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시편 106(105),19-20.21-22.23(◎ 4ㄱ)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백성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 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 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 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 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


복음 환호송 요한 3,16 참조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며 당신이 하시는 일과 성경과 모세가 당신을 증언한다고 하신다.(요한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32,7-14)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들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9-10)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뻣뻣한'이라고 번역된 '케셰'(qesheh)는 아마 농경 문화의 배경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이것은 '멍에를 지우는 데 대한 황소의 반항적인 반발'을 의미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말이 성경에서는 '뻔뻔스럽고'(shameless), '오만(거만)한'(insolent), '완고한'(harden)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널리 사용되었다(신명9,6; 2역대30,8; 느헤9,16; 사도7,51).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센 모습이 마치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버티는 미련한 소와 같다는 말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나를 말리지 마라'로 번역된 '한니하 리'(hanniha li; leave me alone)에서 '한니하'(hanniha; '말리지 마라','하게 하라')원형은 '누아흐'(nuah)인데, '내려앉다','멈추어 서다'(민수10,36), '쉬다'(탈출20,11), '휴식을 취하다', '편안히 쉬다'(이사23,12)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편히 쉬게 하다','홀로 쉬게 하다'(이사28,12)라는 의미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된 것을 감안해서 '나를 홀로 있게 하여라'(let me alone)라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절교선언(絶交宣言) 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백성을 노예생활하던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켜 인도하시고  이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나,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완고하고 사악한 백성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제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내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하느님의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다(창세12,2). 그런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이 아닌 모세에게 다시 주어지고 있다. 모세에게 주신 이 약속은 단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계약의 상속자라는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주신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제2의 아브라함으로 삼아 그의 후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이 성경이 곧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송영진 모세 신부


3월 10일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 5장 31절-47절,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인데,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일 수도 있고,
제자들의(또는 복음서 저자의) 신앙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은 네 가지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 아버지 하느님의 증언, 구약성경의 증언.


1) 세례자 요한의 증언.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요한 5,33)."
이 말씀에서 "진리를 증언하였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메시아라고 증언했다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은 메시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사람들에게 증언했습니다(요한 1,26.29.34).
그런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2)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 5,36)."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셨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고,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셨고, 마귀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 일들은 모두 하느님의 권능과 권한으로 하신 일들이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신 일들입니다.
그 일들을 보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제자들의 말이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라는 증언이 됩니다.)


요한복음 10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았으면서도 안 믿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 일들을 보지도 않고(보려고 하지도 않고) 안 믿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최고의회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 니코데모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요한 7,51)"
그때 최고의회 의원들은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니코데모의 말을 무시합니다(요한 7,52).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예수님을 증언한다." 라는 말을
"우리의 '삶'이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언한다."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진짜로 신앙인인지를 보려면 그의 '삶'을 보아야 합니다.
(종교 박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기가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신자다." 라고 말은 하는데, 그 '삶'이 신앙인답지 않다면,
'사이비' 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아버지 하느님의 증언.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요한 5,37-38)."


이 말씀을 제자들의 말로 생각하면,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께서 직접 예수님을 증언해 주셨다."
라는 신앙고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못 들었지만, 우리는 들었다." 라는 증언.)
이 말씀을 뜻에 따라서,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시는데도
너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목소리를(증언을) 알아듣지 못한다."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이라는 뜻인데,
지금 이 말씀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뜻을 생각하면, "알아듣지 못한다."가 아니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하느님의 증언'이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진 증언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복음서에는 몇 가지 증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또 요한복음 12장에도 하느님의 음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요한 12,28).


4) 구약성경의 증언.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서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 5,39-40)."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나를 믿었을 것이고,
나에게서 생명을 얻었을 텐데,
너희는 구약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앞의 38절에 있는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너희는 성경을 열심히 읽기는 하지만,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증언을 알아듣지 못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도 뜻을 생각하면, "성경의 증언을 알아듣지 못한다."가 아니라,
실제로는 "성경의 증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성경이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이 모두 해당됩니다.


성경은 단순히 읽기만 해도 되는 책이 아닙니다.
날마다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책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열심히 읽는다고 해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 앞에서, 모세는 죄지은 백성들을 위한 중재자의 역할을 합니다(탈출 32,11). 하느님께서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구원의 역사를 새로이 시작하시겠다고 제안하셨음에도, 그는 이에 반대하며 하느님께서 선조들에게 하신 후손과 땅에 대한 약속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백성들 편에 서서 구원의 약속을 잊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모세의 간청에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거두십니다. 모세는 바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드러난 백성들의 태도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율법으로 고발하여 죽이려 듭니다. 예수님께는 자신을 드러낼 많은 증거가 존재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 당신의 업적, 성경의 말씀 등. 그러나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예수님의 음성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예수님의 모습과 업적 안에서도 하느님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자기 자신만을 추구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도에 안주하며, 비판을 하시는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갇히게 되면 바로 앞에 찾아오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가능성까지도 살펴보시는 자비와 인내의 아버지이십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사순 제4주간 토요일]성경 연구 ( 요한 7,40-53.)16.03.11조회 57[사순 제4주간 금요일]예수님의 신원 (요한 7,1-2.10.25-30)16.03.11조회 67[사순 제4주간 목요일]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 (요한 5,31-47)16.03.10조회 52[사순 제4주간 수요일]심판 (요한 5,17-30)16.03.08조회 59[사순 제4주간 화요일]벳자타 못가 병자치유 (요한5,1-16)16.03.08조회 46[사순 제3주간 토요일]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루카 18,9-14)16.03.05조회 101[사순 제3주간 금요일]하느님 사랑 (마르 12,28ㄴ-34)16.03.04조회 457[사순 제3주간 목요일] 벙어리 마귀 (루카 11,14-23)16.03.03조회 92[사순 제3주간 수요일] 율법의 완성 (마태 5,17-19)16.03.02조회 50[사순 제3주간 화요일]용서 (마태 18,21-35)16.03.01조회 46[사순 제3주간 월요일] 믿음으로 (루카 4,24ㄴ-30)16.02.29조회 77[사순 제2주간 목요일]부자와 거지 라자로 (루카 16,19-31)16.02.24조회 76[사순 제2주간 수요일] 그래서는 안 된다 (마태 20,17-28)16.02.24조회 106[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의 설교 (루카 11,29-32)16.02.17조회 48[(자)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 6,7-15)16.02.16조회 410[(자)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최후의 심판 (마태 25,31-46)16.02.15조회 430[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나를 따르라 (루카 5,27-32)16.02.13조회 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