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수요일] 율법의 완성 (마태 5,17-19)

2016. 3. 2. 오전 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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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수요일]  율법의 완성  (마태 5,17-19)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모신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답게 규정과 법규를 잘 지키고, 잊지 말고 명심하여 자자손손 일러 주라고 말한다.(신명 4,1.5-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5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9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시편 147(146-147),12-13.15-16.19-20ㄱㄴ(◎ 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주님은 흰 눈을 양털처럼 내리시고, 서리를 재처럼 뿌리신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며,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스스로 지키고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 불릴 것이라고 하신다.(마태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신명4,1.5-9)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7) 

신명기 4장 7절의 원문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ki; 왜냐하면)로 시작한다. 이것은 신명기 4장 7절과 8절에서  다른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율법(계명, 법규와 규정)을 보고, 이스라엘을 위대한 민족으로 높이고 우러러보는 일이 나오는데, 본문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문장임을 보여준다. 

한편 의문 부사 '미'(mi; 어디에 있느냐?) 이하의 본문을 번역하면, '어떤 나라가 크길래 우리가 외치는 모든 일에서 그러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그 나라에 가까이해 주셨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새 성경을 비롯해서 영어 번역본은 본문에 두 번 나오는 '엘로힘'(ellohim)각각 '하느님'과 다른 '신'으로 분리해서 비교하고 있는데, 본문에서의 궁극적인 비교는 하느님과 다른 신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나라들이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이스라엘과 다른 이방 민족들과의 차이의 결정적 요인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인 계약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을 전적으로 사랑하셔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고, 그들에게 가까이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며, 다른 이방 민족 백성들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라고 번역된 '뻬콜 코르에누 엘라이우'(bekol qorenu ellaiu; whenever we pray to him)에서 전치사 '뻬'(be)시간의 의미 번역했고, '모든'이란 뜻의

'콜'(kol)과 합해진 '뻬콜'(bekol)'~할 때마다'로 번역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하느님의 가까이 하심이 기도하는 때만으로 국한된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행위만 강조되고,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뻬콜'(bekol)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모든 것 안에서'이다. 

이 말과 함께 '크게 외치다(부르다)'란 뜻의 '카라'(qara)동사의 부정사형에 복수 접미어가 붙은 '코르에누'(qorenu)'~에게'란 뜻을 가진 방향 전치사 '엘'(el)에 단수 접미어가 붙은 '엘라이우'(ellaiu)가 합해져서 본문은 '그를 향하여 우리가 외치는 모든 일에서'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에는 기도의 행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상황, 곧 고통 속에서 외치는 일지라도 모두 포함되며, 기도의 내용도 모든 일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출애굽 사건의 동기가 된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이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3,7) 

이 때의 소리는 기도의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삶의 정황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잊고 살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아니하셨고, 그들의 외치는 소리에 담긴 모든 일에 하느님께서 가까이해 주셨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가장 큰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은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에 광야를 거쳐 갈 때에도 자기들의 기도 소리 뿐만 아니라 불평과 원망의 탄식과 소리에까지 가까이해 주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주님께서는 광야의 땅에서  울부짖는 소리만 들리는 삭막한 황무지에서 그를 감싸 주시고 돏보아 주셨으며  당신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휘저으며  새끼들 위를 맴돌다가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들어 올려 깃털위에 얹어 나르듯  주님 홀로 그를 인도하시고  그 곁에 낯선 신은 하나도 없었다.'(신명32,10~12)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이사55,6~7)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율법과 예언서들'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구약성경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계명'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기도 했고, 정결 예식을 무시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계명을 폐지하려고 하시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명을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만든 규정들을 폐지하셨습니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계명이 미완성 상태여서 완성하러 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들이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실천하도록 가르치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안식일을 참으로 지키는 일이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정결 예식을 무시하신 일은 "참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몸만 씻지 말고 마음을 씻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을 가르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이 말씀은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히(제대로)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그 방법은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랑은 더욱 잘 실천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럴 때에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사랑 없이 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형식적으로만 계명을 실천한다면, 그것은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실천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하느님은 '숨은 일을', 즉 마음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마태 6,4) 겉으로만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루카 18,14).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자주 부딪쳤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써'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라고 가르치셨고, 바리사이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사랑은 없이 형식만 중요하게 생각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불완전하게 지킨 사람들이 아니라 '안 지킨' 사람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

이 말씀은, 하느님의 뜻과 계명은 영원하다는 뜻이고, 또 인간들이 마음대로 그것을 바꾸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를 '종말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로 해석한다면, 그때에는 율법이 없어진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계명은 영원하지만, 종교와 율법이라는 '눈에 보이는' 제도와 체제는 없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없어진다는 말은, 소멸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완성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묵시록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하느님 나라에 성전이 없다는 것은 종교와 율법 같은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 나라 시민들은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되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율법이 완성된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이 더 율법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융통성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계명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것에 대한 경고 말씀입니다.
여기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라는 말은, "하느님의 계명들 가운데 어떤 계명을, 어겨도 되는 가장 작은 것으로 취급하고" 라는 뜻입니다.
좋은 예가 '코르반' 관습입니다(마르 7,10-13).


유대인들은 코르반 관습을 악용해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식재와 금육재를 관면 받을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들을 악용하거나 남용하는 일들이 그런 모습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아닌데도, "이런 경우에는 안 지켜도 된다고 되어 있다." 라고 말하면서 마음대로 규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 경우에 다른 사람에게 "괜찮다." 라고 말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뜻이고,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왜곡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계명을 잘 지켰으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하늘나라의 문을 스스로 잠그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안 들어가면서 남도 못 들어가게 막는 사람들입니다(마태 23,13).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5,17-1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18~19)

여기서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2베드3,10; 묵시21,1). 이러한 종말의 날에 이르기까지 율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폐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율법의 효용성이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로마7,14~24). 또한 율법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는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 5장 18절에서 '자'(점)로 번역된 '이오타'(iota; jot; the smallest letter)희랍어 '이오타'(i)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문자인 '요드'(yod)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획'으로 번역된 '케라이아'(keraia; tittle; the least stroke of pen)히브리어 문자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병기되는 작은 점이나 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 자 한 획'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구약의 율법 가운데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그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진리로서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구약 성경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하느님의 말씀임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선언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5장 19절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가장 작은'해당하는 '엘라키스톤'(elachiston; least)최상급의 표현이므로 '가장 작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번역할 수 있다. 당시 랍비들은 율법 가운데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율법이 있는 반면에 덜 중요한 것도 있다는 차별적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은 동일하게 중요하므로 결코 소홀히 여겨도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셨다. 모든 율법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태오 복음 5장 19절'어기고'에 해당하는 '뤼세'(lyse; breaks)의 원형 '뤼오'(lyo)전체가 아니라 어떤 개체나 부분을 부정(不定)하여 취하지 않는 을 말한다. 특히 여기서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율법은 취하고, 작은 율법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버리며 지키지 않는 차별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추종하는 제자들 가운데서도 인간적인 안목으로 그러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자가 있었기에 마태오 복음 5장 19절의 가르침을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타인을 가르칠 만큼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가르침을 한다 하더라도, 그 가르침의 내용 중에 어떤 한 율법이라도 소홀히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 취급될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신다.

특히 '가장 작은'에 해당하는 '엘라키스토스'(elachistos; the least)최상급의 표현으로서, 계명을 차별적으로 선택하여 지킨 자의 최후가 더할나위 없이 초라할 것임을 보여 주며, 천국 백성들도 각기 행한 바에 따라 상급이 다름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과 그 주변 민족들은 일찍부터 지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찾는 인간의 노력은 어느덧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지혜를 찾아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그러고는 그 율법 안에서, 생명의 길,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애써 찾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알려 주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다인들의 율법은 613개 조항에 이릅니다.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십계명이 되고, 다시 더 줄이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율법을 한 자 한 획도 폐지하지 않고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신 것은,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어 ‘사랑 자체’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 녹아들어 간 것입니다.
훗날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갔을 때, 그분께서는 질문을 많이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어떤 업적을 쌓았는지’, 아니면 ‘얼마나 윤리 도덕적으로 잘못이 없었는지’ 등과 같은 구구한 질문은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너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느냐?” 하는 물음만 던지실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이라는 복음 말씀은 곧 ‘사랑의 완성’입니다. 내 존재 자체가 온통 ‘사랑’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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