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성서
(11)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묵시1,12-16)
(구원은 바로 죄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십자가 가 감사하게 느껴지겠습니까? 그러나 진짜 무서운 마귀의 핍박과 공격은 예수를 믿고도 전혀 변함없이 자기 욕심을 위해, 자기의 쾌락을 위해 옛 습관과 경향대로 막 사는 것입니다. 인간을 죄로 물들여 망가트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것이야 말로 우리가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사단이 주는 환난과 핍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이 성도인 여러분을 성전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묵시1,12-16)
12 그래서 나는 누가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 보려고 돌아 섰습니다. 돌아 서서 보았더니 황금등경이 일곱 개 있었고 13 그 일곱 등경 한가운데에 사람같이 생긴 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발끝까지 내려 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14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 눈은 불꽃 같았고 15 발은 풀무불에 단 놋쇠 같았으며 음성은 큰 물소리 같았습니다. 16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고 얼굴은 대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파트모 섬에서 성령에 감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 요한을 공부했습니다. 성령에 감동한 요한이 그 환난과 핍박의 장소인 파트모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처럼 성령 안에 있는 우리도 역시 이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예수를 볼 수 있는 자라는 것을 함께 확인했지요.
우리는 ‘얼마만큼 죄인이었는가?’ 구원은 바로 죄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십자가가 감사하게 느껴지겠습니까? 복음은 바로 우리가 떨어졌어야 할 지옥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제자들이 분명 복음을 전하러 나갔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너희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자각하고 도우심을 구하라’ 는 말입니다. 죄인임에 대한 자각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죄에 대한 지적이 있을 때 여러분이 부담을 느끼시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고 감격 하셔야지요.
진짜 무서운 마귀의 핍박과 공격은 예수를 믿고도 전혀 변함없이 자기 욕심을 위해, 자기의 쾌락을 위해 옛 습관과 경향대로 막 사는 것입니다. 인간을 죄로 물들여 망가트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것이야 말로 우리가 쉽게 감지하지 못 하는 사탄이 주는 환난과 핍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당시는 즐겁습니다.
아무런 고통이 없지요. 그러나 신앙이 점 점 성숙해 지게 되면 그렇게 살았던 삶이 엄청나게 괴로운 기억으로 남습니다. 여러분, 환난과 핍박 하니까 무조건 사업이 망하고 병이 걸리고 그런 것만 떠 올리시는가 본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환난은 보이지 않게 우리 삶을 타락시키는 폭풍 속 고요입니다.
평안을 가장한 핍박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환난과 핍박의 내용 입니다. 아무 일 없다고 해서 왜 나에게는 환난이 없고 핍박이 없지? 하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 사람은 부자라서 저 사람은 얼굴이 잘 생겨서, 저 사람은 건강해서 아무 환난도 경험하고 있지 않을 거야’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환난과 핍박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 돈이 많으면 환난과 핍박을 모릅니까? 45일 동안 잠 못 자 보셨어요? 2년 동안 악성 관절염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을 면도칼로 긋는듯한 고통을 느껴보셨나요? 여러분 걸핏하면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아서 119에 실려 가는 고통을 당해 보셨습니까?
환난과 핍박과 고통이 뭔지 몰라서 그렇다고요? 사람들은 철저한 인본주의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 고통이 제일 큰지 알아요.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쓰인 ‘람바노’라는 헬라어는 누구나 흔히 겪는 고통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 그만큼의 아픔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나만 제일 불행하다고, 내가 제일 큰 환난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없습니다. 그게 환난의 당위성과 필연성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그게 부담스럽기만 하다면 그런 분은 아직 땅에 눈을 두고 계신 분들일 겁니다.
12절부터는 요한이 자기가 본 예수님을 자기가 알고 있는 구약의 표현을 인용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바라봐야 할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요한은 아홉 가지로 그 분을 묘사합니다. ①맨 먼저 우리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입는 옷 이 그 사람의 신분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지금 요한이 예수님의 옷을 묘사하면서 그 분의 신분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음을 우리 는 알 수 있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제사장의 옷을 말합니다. ‘발에 끌리는’ ‘포데레’는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에 한번밖에 안 나오지만 70인 역 LXX에서는 일곱 번이 나옵니다. 거기서 이 ‘포데레’는 전부 제사장의 의복과 연관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에 발 뿐 만이 아니라 신체의 어떤 부분의 살도 겉으로 나오면 안 되었습니다.
얼굴과 손을 제외 한 모든 부분은 철저하게 가려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이후 인간의 몸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가렸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사장들은 머리에 관을 쓰고 발을 덮는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28장에 그 제사장의 옷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제사장의 옷은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28:4) 4 그들을 시켜 지을 옷은 가슴받이, 에봇, 도포, 자수, 속옷, 사모, 제복띠 등이다.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너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 들이 입을 거룩한 옷을 지어, 나를 섬길 사제 일을 맡게 하여라.
(출애29:5) 5 그리고 속옷과 에봇에 딸린 도포와 에봇과 가슴받이 등 의복들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입히고 에봇 관대로 묶어라.
(레위16:4) 4 그는 맨살에 모시 잠방이를 걸치고 모시로 만든 거룩한 속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모시로 만든 관대를 띠고 모시로 만든 사모를 머리에 써야 한다. 이것이 거룩한 옷이다. 그는 목욕하고 나서 이 옷을 입어야 한다.
제사장의 옷은 속옷과 겉옷과 에봇과 흉패로 나누어집니다. 흉패는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보석이 박혀있습니다. 12지파는 교회 즉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전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그 흉패는 정사각형입니다. 그리고 옷감은 성막을 짓는 천과 같은 것입니다. 사용하는 실의 색상도 유사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제사장이 입고 있는 옷은 성막을, 성전을, 하느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막의 지성소는 정사각형이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이 없고 모자란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흉패도 정사각형입니다. 지성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성막을 입고 있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 가운데 계셨다 ‘스케노오’는 ‘장막을 치다, 텐트를 치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장막으로 덮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묵시7:15-17)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 있으며 하느님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옥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가리워 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태양이나 어떤 뜨거운 열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요, 17 옥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묵시21:2-3) 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 때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자세히 보면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쳐주시는 장막 아래 보호를 받는 자들입니다. 제사장의 옷은 성막입니다. 성막은 하느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전입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사장이 성막을 입고 있다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입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 제사장이신 그 분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게 되는 것을 우리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3:27) 27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그 제사장의 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촛대 사이에 서 계십니다. 촛대는 교회라고 하고, 교회는 또 성전입니다. 하느님의 통치와 임재가 있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를 성전이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하느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지 붉은 벽돌로 지은 성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건물은 예배당이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통치가 임하는 참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성도인 여러분을 성전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묵시15:6) 6 그 성전으로부터는 재난을 하나씩 손에 든 일곱 천사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눈부신 모시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모시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예수님이 성전으로부터 나오십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교회에 계신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십니다. 허리가 아닌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던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고대 시대 왕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대제사장은 하늘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대제사장은 왕이면서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끌리는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 금띠를 띤 분은 왕이시면서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왕이요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나팔 같은 소리로 말씀을 하십니다. 나팔 같 은 소리로 하늘의 이야기하는 자들이 예언자들. 바로 그 분이 예언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시며 선예언시라는 것입니다.
초림 때는 누더기 옷에 흠모할 것도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다면 이제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그 영광을 회복하시고 영광의 왕이요 제사장이요 예언자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 모습으로 영광스러운 재림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읽어내야 합니다. 초림 때는 구원을 이루시려 오셨지만 이제 그 분은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묵시1:14) 14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 눈은 불꽃 같았고
라고 나옵니다. 이 구절은 다니엘서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다니7:9-10) 9 내가 바라보니 옥좌가 놓이고 태고적부터 계신 이가 그 위에 앉으셨는데, 옷은 눈같이 희고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 옥좌에서는 불꽃이 일었고 그 바퀴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으며, 10 그 앞으로는 불길이 강물처럼 흘러 나왔다. 천만 신하들이 떠받들어 모시고 또, 억조창생들이 모시고 섰는데, 그는 법정을 열고 조서를 펼치셨다.
다니엘서는 분명 심판하시는 하느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 하느님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바로 예수님이 그 심판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하느님께 드려 우리를 구원해 내신 제사장,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영광과 위엄을 가지신 심판자이시라는 것을 요한은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백발은 영광과 위엄, 영광의 면류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백발이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19:32) 32 백발이 성성한 어른 앞에서 일어서고 나이 많은 노인을 공경하여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여라. 나는 야훼이다.
(잠언16:31) 31 백발은 빛나는 면류관, 착하게 살아야 그것을 얻는다.
요한은 그러한 구약의 상징을 이용하여 이제 하늘 영광을 회복하신 영광과 위엄을 소유하신 예수님께서 심판자로 오실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불꽃같은 눈을 갖고 계십니다. 14절 ‘그의 눈은 불꽃같고’ 불꽃같은 눈도 역시 상징이지요. 공중기도 하시는 분들이 가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느님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요?
(다니10:5-6) 5 바라보니 한 사람이 모시옷을 입고 순금 띠를 띠고 있었다. 6 몸은 감람석 같았고 얼굴은 번갯불처럼 빛났으며 눈은 등불 같았고 팔다리는 놋쇠처럼 윤이 났으며 음성은 뭇 사람이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묵시19:11-16) 11 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흰 말이 있었고 '신의' 와 '진실' 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그 위에 타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공정하게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입니다. 12 그분의 눈은 불꽃 같았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을 썼으며 그분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분의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 13 그분은 피에 젖은 옷을 입으셨고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 이라 하였습니다. 14 그리고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15 그분의 입에서는 모든 나라를 쳐부술 예리한 칼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친히 쇠지팡이로 모든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분노의 포도를 담은 술틀을 16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모든 왕의 왕, 모든 군주의 군주' 라는 칭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불꽃같은 눈도 보다시피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 분 앞에서는 감추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며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삶을 관찰하시고 우리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마태10:26) 26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큰일 났지요? 하나도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심판만을 이야기하시는 것일까요? 그럼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은 ‘주님 우리에게 심판을 내려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되나요?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말이지만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심판의 말씀들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축복의 말씀인지 함께 보자고요.
요한묵시록 19장에 보면 그 불꽃같은 눈을 하신 심판의 예수님께서 발에 끌리는 제사장 옷을 입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옷에 피가 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무리는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왜 그런 모습일까요? 이 모습을 머리에 잘 그려 보세요 이 부분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49장11절로 먼저 가야 합니다.
(창세49:8-11) 8 유다, 너는 네 형제들의 찬양을 받으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멱살을 잡겠고 네 아비의 자식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사자새끼, 아들아, 너야말로 짐승을 덮쳐 뜯어 먹고는 배를 깔고 엎드린 수사자라 할까? 10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지휘봉이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 만백성이 그에게 순종하게 되리라. 11 포도나무에 나귀를 예사로 매어 놓고 고급 포도나무에 새끼 나귀를 예사로 매어 두리라. 포도주로 옷을 빨고 포도의 붉은 즙으로 겉옷까지 빨리라.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유언을 합니다. 그 중 유다에게 유언을 하는데 유다의 후손에서 ‘실로’ 곧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 암 나귀 새끼를 타고 그 옷을 포도주에 빨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바로 ‘suffering of christ,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나귀 새끼를 타는 모습으로 그리고 십자가 에서 다른 자들의 저주를 몸에 받고 죽으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면 그 옷을 포도즙(원어로는 포도의 피 입니다) 틀에 빤다 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사63:1-6) 1 에돔에서 온 이분은 누구신가? 붉게 물든 옷을 걸치고 보스라에서 온 이분은 누구신가? 위엄찬 옷을 입고 위세를 떨치며 저벅저벅 걸어 온 이분은 누구신가? '나는 구원을 약속하는 자, 도울 힘이 많은 자이다.' 2 '어쩌다가 당신 옷에 붉은 물이 들었습니까? 당신 옷은 마치 포도주틀을 밟다가 물든 것 같군요.' 3 '나는 혼자서 술틀을 밟아야 했다. 나의 백성 가운데 나를 돕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도 노여워, 나는 그것들을 마구 밟았다.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 나의 옷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4 원수갚을 날을 정하고 벼르고 있다가 마침내 복수할 해가 왔는데, 5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나를 돕는 자가 없었다. 놀랍게도 내 편을 드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팔밖에 믿을 것이 없었고 나의 분노만이 나를 밀어 주었다. 6 너무나도 노여워 백성들을 짓밟고 너무나도 화가 나서 그것들을 짓바수어 그 피를 땅에 흘린 것이다.'
하느님께서 마지막 날에 죄인들을 포도즙 틀에 놓인 포도들처럼 밟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하느님의 진노의 발에 밟혀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밟히셨습니다. 그 분의 옷에 피가 튀었습니다. 죄의 대가로 흘려야 할 이스라엘의 모든 피가 그 분께 튀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고 예수가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제사장이 아무리 금실 은실로 짠 좋은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제사를 드리면 그 제물의 피가 옷에 낭자하게 묻게 됩니다. 제사장이 제물을 잡고 제단에 바치면서 그 옷에 피가 묻게 되는 것은 바로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묵시록19장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하느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십니다. 그런데 그 포도에게 돌아가야 할 피가 전부 튀어서 예수님의 옷에 묻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깨끗한 아마포를 입고 있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원래 그 피는 그 뒤에 쫓아오는 사람들 것이었는데 예수님의 옷에 그 저주의 피가 다 튄 것입니다.
이렇게 불꽃같은 눈은 포도주 틀을 밟는 것과 연결이 되는 것이고 그 것은 심판과 함께 구원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달라는 기도를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고 마지막 때에 그들에게 무시무시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듯 밟으실 것입니다. 피의 저주가 그 포도주 틀에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무리의 저주는 예수님께서 친히 담당하셔서 건져 주실 것이라는 것을 구약에 능통했던 당시 초대 교회들은 감격 속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불꽃같은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아시겠지요?
하느님께서 불꽃같은 두 눈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중에서 교회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 속에서 교회답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잘못가고 있는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그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 해 내실 그 불꽃같은 눈이 우리의 이 엉터리 같은 삶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묵시2:18-20) 18 티아디라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불꽃 같은 눈과 놋쇠 같은 발을 가지신 분, 곧 하느님의 아들이 말씀하신다. 19 '나는 네가 한 일들을 잘 알고 있고 네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네가 처음보다 나중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20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 여자는 예언자로 자처하며 내 종들을 잘못 가르쳐서 미혹하게 했고 음란한 짓을 하게 했으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였다.
우리는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시고 교회를 구원하실 것이며 혹 우리가 잘 못 갈 때 그 분이 지금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면서 우리를 책망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139:7-10) 7 당신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8 하늘에 올라 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9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 보아도 10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아무 데도 도망 못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은 ‘빛난 주석’ 같았다고 요한은 묘사합니다. 주석은 헬라어로 ‘칼콜리바논’입니다. 이 단어는 놋쇠‘칼코스’와 유향, 향나무‘리바노스’라는 단어가 복합되어 생긴 단어입니다. 놋쇠는 능력 권위 주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 발이 주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묵시10:1-2) 1 또 나는 힘센 다른 천사 하나가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구름에 싸여 있었고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었으며 얼굴은 태양과 같았고 발은 불기둥과 같았습니다. 2 그리고 손에는 작은 두루마리를 펴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밟고
오른발로 바다를 왼발로 땅을 밟고 계신 그 발, 그 분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분의 발은 원수인 마귀의 세력 또한 밟아 뭉개실 것입니다.
(시편110:1) 1 야훼께서 내 주께 선언하셨다.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
예수님의 발이 주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기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주석은 놋쇠와 유향의 합성어라고 했지요? 유향은 제사 때 드려지는 것입니다. 야훼께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이 있지요? 바로 제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에페5:2) 2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능력의 왕으로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가지신 그 권위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 진 것이냐? 바로 자신을 제사로 드린 영 단번의 제사, 십자가로 그 권위가 주어진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으로 주어진 고난입니다. 그게 주석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입니다.
그 주석이 어떤 주석입니까? 풀무에 달구어낸 주석입니다. 풀무에 달구어냈다는 것은 고난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발이 주석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고난을 통과해서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묵시3:18) 18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권고한다. 너는 나에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나에게서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눈을 떠라.
(묵시2:9) 9 '나는 네가 겪은 환난과 궁핍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너는 부요하다. 네가 유다인으로 자칭하는 자들에게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인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이다.
여러분 정말 성경의 부요를 맛보고 싶으십니까? 성경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참 부요 함이라는 것입니다. 불로 단련한 금을 사는 것이 부요함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것을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합니다.
(에제43:2) 2 마침 동쪽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았고 땅은 그 영광으로 빛났다.
에제키엘서에서는 하느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음성을 그 하느님의 음성을 묘사하는 단어를 가져다가 표현을 했습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구약에서 하느님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택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물소리’라는 단어는 절대적이며 쉬지 않고 힘차게 나타나는 권위의 음성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목소리로 예수님은 교회에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 서두에 모두 ‘타데 레게이’‘가라사대’하고 시작이 됩니다. 성령을 통해서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늘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왜 기적으로 일하시지 않으십니까?
하느님께서 몇 초만 나타나셔서 ‘나 있다’ 그러고 가시면 전도가 잘 될 텐데 왜 안 그러십니까? 이 패역한 인간들은 그렇게 하느님이 직접 나타나셔도 못 믿는다는 말입니다. 방법은 성령을 통해서 뿐입니다. 기적을 원하는 것은 아직 믿음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하느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부어주셨다면 기적 같은 것 없어도 얼마든지 기쁘고 행복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자꾸 기적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실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아직 선물로 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자꾸 신기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말씀 안에 완전한 하늘나라와 복음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 쫓아다니지 마세요.
기쁜 소식, 복음을 전했는데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쁘세요?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시면서 정말 예수로만 만족하십니까? 심판과 저주의 재림 때 그 저주에서 건져내어졌다는 그 사실만으로 정 말 기쁘신가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얻어내는 어떤 것으로 기뻐하십니까? 아니면 하느님으로 기뻐하십니까?
저는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여러분이 다른 더 좋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제게 원하신다면 뭔가 잘 못 되도 한참 잘 못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제발 복음을 이해하세요. 정말 복음이 뭔지 바르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매일 매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