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환난의 밧모 섬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자
(묵시1:10-16)
10 나는 주님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내 뒤에서 울려오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11 그 음성은 나에게 '네가 보는 것을 책으로 기록하여 에페소,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이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2 그래서 나는 누가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보려고 돌아 섰습니다. 돌아 서서 보았더니 황금등경이 일곱 개 있었고 13 그 일곱 등경 한가운데에 사람같이 생긴 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14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 눈은 불꽃같았고 15 발은 풀무불에 단 놋쇠 같았으며 음성은 큰 물소리 같았습니다. 16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고 얼굴은 대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오늘 본문10절을 보시면 사도 요한이 그 계시를 받은 날이 명확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날에 사도 요한은 성령 안에서 무언가를 봅니다. 여기서 주님의 날이라고 번역이 된 말은 ‘큐리오케 헤메라’입니다. 원래 구약에서도 ‘주님의 날’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아모5:18) 18 저주받아라! 너희 야훼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자들아. 야훼께서 오시는 날, 무슨 수라도 날 듯싶으냐? 그 날은 빛이 꺼져 깜깜하리라.
야훼의 날이 히브리어로 ‘예호바 욤’입니다. 주의 날입니다.
(스바1:18) 18 은과 금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으로 그 난을 면하지는 못하리라.' 야훼의 분노가 타오르는 날, 온 세상은 활활 타 버리리라. 그가 세상 사람을 송두리째 순식간에 멸하시리라.
‘예호바 욤’ 주의 날에 우주적인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사2:12,17) 12 만군의 야훼께서 오시는 날, 뽐내고 거만한 자를 모두 꺾으시는 날,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모두 끌어 내리시는 날, 17 사람의 거만은 꺾이고 인간의 오만은 숙어지리니 그 날에 야훼 홀로 드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이사13:8~10) 8 그 허둥대고 창자가 뒤틀려 괴로와하는 품이 해산하는 여인과도 같구나. 서로 눈이 휘둥그래져서 쳐다볼 뿐 얼굴만 달아오르는구나. 9 아, 몸서리쳐지는 야훼의 날이 온다. '격분과 분노가 치밀어 나는 땅을 잿더미로 만들고 죄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10 하늘의 별들과 삼성성좌는 빛을 잃고 해는 떠도 침침하고 달 또한 밝게 비치지 아니하리라.
(요엘3:4)4 해는 빛을 잃고 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 야훼께서 거둥하시는 날, 그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
신약에도 심판의 날인 주님의 날에 대한 묘사가 여러 군데 나옵니다.
(베후3:10)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살전5:2-3)2 주님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결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쓰인 단어는 조금 다릅니다.
다른 곳에 쓰인 단어는 ‘주의 날’‘큐리오 헤메라’입니다. 주님을 가리키는 ‘큐리오스’가 소유격으로 쓰여서 주의 날‘큐리오 헤메라’입니다만 오늘 본문 10절에 쓰인 주의 날에는 ‘큐리오케 헤메라’라고 형용사가 쓰였습니다.
이 ‘큐리오케 헤메라’라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여기에 딱 한번 쓰였습니다. 이 ‘큐리오케 헤메라’라는 말은 어떤 특정한 한 날 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안식 후 첫날인 오늘날의 주일을 이 단어를 써서 표기를 했었습니다. 즉, 묵시록 1장 10절의 주의 날은 다른 곳에서처럼 심판의 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주의 날, 오늘날의 주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약에 나오는 주의 날이나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 쓰인 주의 날과 오늘 본문 10절의 주의 날이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퍼부어지는 심판의 날은 하느님의 백성들의 구원의 날입니다. 그 일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가시적으로 그 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미 십자가상에서 모두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에 모여 하느님을 예배하면서 세상의 심판을 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구원 받은 자들로서 승리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사도 요한이 여기서 ‘큐리오케 헤메라’라고 표현을 한 것은 그 날은 역사상에 존재했던 어떤 특정한 한 날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주의 날에 사도 요한이 성령 안에서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습니다. 10절에 나오는 ‘성령에 감동하여’는 ‘엔 프뉴마티’ ‘성령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는 밧모 섬이라는 환난의 장소에서, 주일에,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본문 12절 13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보시면서 그 모습을 한번 그려보자고요.
(묵시1:12-13) 12 그래서 나는 누가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보려고 돌아 섰습니다. 돌아 서서 보았더니 황금등경이 일곱 개 있었고 13 그 일곱 등경 한가운데에 사람같이 생긴 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발끝까지 내려 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주의 날에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일곱 금 촛대를 봅니다. 일곱 금 촛대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교회라고 했습니다.
(묵시1:20) 20 네가 보는 내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황금등경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고 일곱 등경은 곧 일곱 교회이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 일곱 교회는 일곱이라는 완전수를 써서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교회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서 계십니다. 인자 같은 이는 어디서 인용한 것이라고 했습니까?
(다니7:13-14) 13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14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믓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다니엘서의 이 구절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말을 요한이 그대로 가져다 인용한 것입니다. 바로 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예전에 변화 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본 바로 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뒤에 계신데 그 분이 일곱 촛대, 즉 교회 사이에 계신 것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저하늘 하느님 보좌 우편에서 앉으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 교회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교회 사이에서 계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부러우세요? 여러분 혹시 사도 요한을 부러워하십니까? 나도 그런 체험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여러분은 지금 사도 요한과 똑같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계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느님을 예배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예배하고 계십니까?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고 계십니다.
(요한4:24) 24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여기에서 ‘신령‘이 ‘엔 프뉴마’와 같은 단어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진정으로 예배를하고 계신 분들이면 여러분도 지금 사도 요한과 꼭 같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계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의 날에 성령 안에서 교회와 함께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와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환난을 당하는 밧모라는 섬의 현실 속에서,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보고 있는 그 현실이 바로 지금 여러분의 현실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하늘나라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지만 여러분은 지금 말씀으로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계신 분들입니다.
사도 요한이 환난의 현실 속에서 성령 안에서 하늘을 체험하듯이 여러분도 이 지긋지긋한, 세상 권세 잡은 자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환난의 현실 속에서 성령 안에서 천국을 체험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정말 여기가 천국이세요? 우리가 처한 상황은 요한의 밧모 섬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기서 믿음으로, 말씀으로 천국을 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백성이 맞는 한 교회가 모인 이곳은 천국입니다.
(히브12:22-24) 22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23 또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24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게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묵시7:9-12) 9 그 뒤에 나는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옥좌와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옥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 양이십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1 그러자 천사들은 모두 옥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 서 있다가 옥좌 앞에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아멘, 우리 하느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세력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또 말씀으로 이곳에서 지금 읽으신 말씀 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천상의 삶의 모형을 믿음으로 말씀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줍지 않은 간증 같은 것 듣고 감동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매일매일 천국을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입니다. 사도 요한을 부러워하십니까? 천국을 다녀왔다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 펄시콜레를 부러워하세요? 여러분, 정말 천국에 가고 싶으세요? 그러면 거기가 어떤 곳인지는 아세요? 천국이 왜 좋으며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아세요? 여러분 천국을 기다리신다면서요? 가고 싶다면서요.
그럼 한번 가정해 보자고요. 여러분이 지금 천국에 가셨어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잠깐 다시 내려갔다 오라고 하세요. 여러분 그 때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러분이 정말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아신다면 거기서 이 아래로 다시 내려오시고 싶으시겠습니까? 안 내려오고 싶지요.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데 또 내려가요?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면 왜들 그렇게 신기하게 생각하세요? 왜 그 사람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들 하십니까? 정말 죽었다가 천국을 보고 내려온 사람이면 자기를 다시 살려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간증하고 다닐 수 있을까요? 다시 살아난 게 정말 감사할까요?
죽었다가 살아난 도르가나 나자로가 정말 기뻐하기만 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친구였고 초대교회의 성실한 성도였습니다. 분명 하느님을 만나고 천국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잠시 더 머물러야 합니다. 그건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지요.
여러분, 솔직히 아직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잘 모르시지요? 제가 그 나라를 맛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어떻게 그 나라를 맛보며 그 나라를 배울 수 있느냐? 바로 말씀과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으로 천국을 보고 교회 안에서 천국을 실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그 분의 나라인 천국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말씀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현 실 속에서 천국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그 맛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사도 요한이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를 본 장소와 시간을 밧모 섬, 주의 날 이라고 명확하게 기록해 놓았는지 아십니까? 사도 요한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정신이 나가서 혼수상태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뚜렷하고 객관적인 현실 안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입신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거의 혼수상태로 하느님 만나고 왔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여러분, 하느님은 그렇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2000년 전 골고다에 실제로 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믿음을 정리하고 있어야 하며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성은 신비적인 체험을 많이 한다거나 현실은 무시하고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영성은 복음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을 믿으며 그것에 감사해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거룩을 향해 발을 내 딛는 것을 진정한 영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현실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나타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아는 만큼 이 땅에서 그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 안에 여러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천국의 비밀을 조금씩 알려 주십니다.
11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 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로 보내어라’ 하셨습니다. (이 교회의 순서는 편지를 전달하는 우편배달부가 가기 쉬운 순서대로 나열 된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장3장을 자세히 보시면 각 교회에 하신 말씀 뒤에 하나같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신 말씀을 들어라’ 하십니다.
(묵시2:7) 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나는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하느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 자들은 성령을 통해 하늘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탄생되어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눈을 감고도 천국을 누리실 수 있어야 합니다.
(베전1:8) 9 그 뒤에 나는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옥좌와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옥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 양이십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1 그러자 천사들은 모두 옥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 서 있다가 옥좌 앞에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아멘, 우리 하느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세력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모세가 누렸던 하늘의 영광이 사도 바오로가 경험했던 천국의 풍요가, 한동안 황홀경에 빠져 있었던 천국의 전율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을 아는 만큼, 하느님 나라를 아는 만큼, 믿음 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10:17) 17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천국의 영광을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아내는 만큼 여러분은 그 하늘의 삶을 몸으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히브12:14) 14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며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거룩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변해서 함께 모여 사는 곳을 하느님 나라라고 합니다. 천국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거룩한 삶을 삽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교회의 목적을 ‘거룩’이라고 성경에 명시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거룩한 자로 만들어져 가는 것, 그 것이 교회가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유일한 목표입니다.
(에페1:4-5) 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에페2:10)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그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천국 백성의 흉내라도 내는 삶을 살아낼 때 그 천국의 삶을 조금이라 도 맛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 때 그 백성이 그 나라에서 살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 우주는 하나님 성전의 거대한 모형입니다.
(이사66:1) 1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머물러 쉴 곳을 어디에다 마련하겠다는 말이냐?
하늘이 하느님의 보좌이고 땅이 하느님의 발등상이라는 것은 이 우주 전체가 거대한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말이지요?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늘나라 즉 하느님 성전의 모형으로 만드셨습니다.
성막이 그렇고 성전이 그렇고 노아의 방주가 그렇고 우주가 그렇습니다. 모두 하늘의 모양인 삼중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에덴은어 떻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에덴도 하느님 나라를 원형으로 만들어 놓은 하늘나라의 모형입니다. 그러면 그 에덴이 하느님의 성전 이라면 그 안에 있는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느님 나라, 성전의 살아있는 벽돌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을 했고 벽돌이 성전의 보좌에 앉아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복된, 제 자리를 찾은 성전 벽돌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성전은 자체가 빛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느님의 성전으로 회복된 자들이 맞다면 우리 몸에서, 우리의 삶에서 빛이 나야 합니다. 우리는 성전이니까요.
(묵시21:22-23) 22 나는 그 도성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 양이 바로 그 도성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에는 태양이나 달이 비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빛이십니다. 빛으로 이 땅에 오셨던 그 참 빛이십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해와 달이 필요 없습니다. 그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의 삶에서 그 성전의 빛이 비추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일곱 촛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촛대는 성전 안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 온 세상을 비추는 것이 촛대입니다.
일곱 촛대라는 것은 촛대 하나에 일곱 개의 등잔이 있으니까 전부 49개의 불입니다. 49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희년입니다. 희년이 무엇이지요? 유대인들은 7년마다 한 번씩 땅을 쉬게 해 줍니다.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그렇게 일곱 번째가 희년입니다. 그 때에는 땅을 모든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모든 땅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종들도 다 자유롭게 풀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안식과 자유의 상징이 희년입니다.
그러한 안식과 자유에 들어간 자들이 바로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 촛대가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은 교회는 반드시 빛이 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망갈 수가 없습니다. 빛이 안 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빛을 내면서 비로소 천국을 맛 볼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의 삶에서 빛이 나도록 만드십니다. /////
(로마8:35-39) 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36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뒤가 꽉 막힌 고립이나, 핍박(디오그모스, 무언가에 쫓김)이나 기근이나 위험(귐노테스,창피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함)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만들어져 가는데 그런 것들이 방해 가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그런 일이 성도들의 삶에 있다는 것 아닙니까?
31절로 한번 올라가 보세요.
(로마8:31) 31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대적하는 것들을 박살을 내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환난과 역경과 핍박과 기근과 위험과 칼이 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습니다.
잘 보세요. 여러분, 정말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시는데 여러분 주변에서 여러분이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가하는 대적이 많으세요?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괴롭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세요?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교회의 목적인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진짜로 방해가 되는 대적들이 무엇입니까? ‘돈, 출세, 자식, 건강, 가정의 행복’ 그런 것 이루고 지켜 내느라 신앙생활 잘 못 하시잖아요? 그게 여러분의 대적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는 거예요. 돈이 여러분의 거룩을 방해하면 하느님께서 돈이라는 대적을 물리쳐 주십니다. 사업이 망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건강이 여러분의 거룩을 막는 다면 하느님께서 그 대적을 물리쳐 주세요. 건강을 잃게 되는 것 입니다.
자식에게 너무 몰두해서 그것이 여러분의 거룩을 막으면 하느님은 그 대적을 부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환난이요 역경이요 핍박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대적을 치시는 하느님의 미친 듯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정말 미친 듯이 사랑하세요. 질투하시면서 까지 사랑하세요. 다른 것 다 끊어버리고 나만 사랑하라고 말씀하세요. 그것이 피조물인 우리가 유일하게 살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후1:8-9) 8 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리려고 합니다. 그 환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을이만큼 심해서 마침내 우리는 살 희망조차 잃게 되었습니다. 9 그러나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만을 바라보시는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맹렬하신 사랑을 아십니까? 그 사랑이 우리의 거룩을 방해하는 것들을 부수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을 내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천국의 삶을 조금씩 조금 씩 알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 안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나팔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나팔은 항상 하느님의 백성들을 깨울 때 쓰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빛을 잃어 가는 이 시대의 교회에게 나팔을 부시는 것입니다.
‘너는 내 말을 잘 기록해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라’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환난과 핍박으로 사탄의 공격으로 점점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교회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오히려 너희의 거룩을 만들어 가는 나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라고 나팔을 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빛을 내라는 것입니다. ‘빛 을 내기가 힘들거든 즈가랴서에서 공부한 것처럼 올리브나무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금 기름, 성령이 너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다시 재확인하고 심지를 북돋워라’ 는 것입니다. 너희의 환난과 역경과 핍박의 상황은 내가 지금 너희 대적을 부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겨라’ 이게 묵시록 전체에서 예수께서 교회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망한 것이 그렇게 아까우세요? 좋은 대학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 잡지 못하고 빌빌대는 것이 창피하세요? 홀아비로 사는 게 부끄러우십니까? 과부가 된 게 부끄럽기만 하세요? 여러분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만 확인이 되셨다면 지금 하느님은 여러분의 대적을 부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부터 확인하세요. 그리고 감사하세요. 미유라 아야꼬 여사는 70평생에 40년을 병상에 누워서 지낸 분입니다. 폐결핵, 대장암, 디스크 그 분이 말년에 뭐라고 고백하셨는지 아세요? ‘하느님, 왜 저를 이렇게 편애하세요? 하느님, 왜 저만 이렇게 특별히 사랑해 주시는 거죠?’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매일 매일 확인하시면서 가셔야 합니다.
종의 기원을 쓴 진화론을 완성한 챨스다윈은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생이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했었고 목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신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칼막스도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그가 신학교에서 써낸 요한복음 15장에 관한 논문은 지금도 신학생들이 참고하고 있는 논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째서 하느님을 부인하는 삶으로 결론을 맺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은 정 말 자신 있으세요? 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는가? 난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매일 확인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성전으로서의 빛을 발할 때에만 천국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천국을 보는 자들입니다.
교회인 여러분, 올리브나무에서 금 기름이 계속 흘러 촛대인, 교회인 여러분에게 계속해서 빛을 발하게 하고 계십니다. 대적들의 방해를 막아내시면서 빛을 발하게 하고 계십니다. 이제 여러분의 인생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인생관을 바꾸세요. 이제 세계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세계관을 바꾸세요. 이제 우주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우주관을 바꾸세요.
이 주님의 날에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천국을 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거룩한 삶 속에서 천국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고 돈이 많이 벌리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얻는 행복이 아닙니다. 그러한 나의 상황과 환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성령 안에서 누리게 되는 하늘의 풍요와 자유와 안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그 처절한 상황이 오히려 여러분의 빛을 막는 대적을 하느님께서 부수고 계시는 축복의 순간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으셨으면 여러분의 좌절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서 이제 일어나세요. 그리고 주위 분들에게 크게 말해 주세요. ‘왜 하느님이 나만 이렇게 편애하시지?’ 거기로 들어가셔 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