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③베르가모 교회 (묵시2:12-17)

2018. 10. 4. 오전 9: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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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③ 베르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일곱 교회를 살펴보는 동안 여러분께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칭찬 받는 교회가 되자라는 데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곱 교회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참 잘못 오해되어져서 예수를 믿으면 삶이 부흥하고 유명해 지고 화려해지고 번영이 되어 져야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하느님이 축복하시면 교회도 커지고 교사도 유명해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행음을 한다고 하니까 무슨 거창한 죄들을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우상이라는 것은 하느님도 섬기면서 하느님 말고 다른 것을 자기 존재의 만족과 행복의 근거로 삼는 것을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묵시2:12-17)

12 베르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날카로운 쌍날칼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13 '나는 네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 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너는 내 이름을 굳건히 믿고 있다. 또 나의 진실한 증인 안디바스가 사탄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날에도 너는 나에 대한 14 그러나 나는 너에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중에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사주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죄짓게 하였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였으며 음란한 짓을 하게 하였던 자다. 15 또 너희 중에도 니골라오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16 그러므로 뉘우쳐라. 만일 뉘우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감추어 둔 만나를 주겠고 또 흰돌도 주겠다. 그 돌 위에는 새로운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이름은 그 돌을 받는 사람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를 살펴보는 동안 여러분께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칭찬 받는 교회가 되자라는 데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꾸중을 들었고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받은 교회이니까 우리는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칭찬 받는 교회가 되자쪽으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곱 교회는 교회시대를 통해서 사탄이 우리를 어떻게 미혹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일곱 교회를 보면서 오늘 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베르가모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2절을 보시면'베르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날카로운 쌍날칼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라고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좌우에 날선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상징이었고 권위와 심판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의 로마 총독들은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심판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총독들을 가리켜 의 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르가모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진정한 권위와 심판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먼저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세와 심판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예수를 묘사했을까요? 그 이유가 13절에 나오지요?

13절을 보시면 ‘'나는 네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 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너는 내 이름을 굳건히 믿고 있다. 또 나의 진실한 증인 안디바스가 사탄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날에도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베르가모 교회는 이미 순교자가 나왔을 정도로 로마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베르가모 교회는 그 로마의 권세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정한 권세와 심판은 우리 주님 것이라는 것을 먼저 확인시키면서 편지를 여는 것입니다. 계속 해서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거기는 사탄의 위가 있는 데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베르가모 라는 도시는 로마 아시아도의 행정수도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신전인 아우구스투스 신전을 비롯한 황제의 신전이 3개나 있었고 제우스 신전, 아테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아스클레 피오스 신전 같은 그들의 신을 섬기는 신전이 4개나 있던 그야 말로 우상 천지인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베르가모를 가리켜 사탄의 위가 있는 데라는 표현을 쓰신 것입니다. 당연히 우상 숭배와 황제 숭배가 강요되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르가모 교회는 그러한 외부적인 핍박을 잘 견뎌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아서 죽임을 당하면 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안디바라는 순교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안디바는 성경에 여기에 한번 나오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 로도 베르가모 교회의 순교자 명단에도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다른 도시에서 와서 순교를 한 사람일 것이라 추측을 할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안디바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역사도 그를 기억하지 않고 버가모 교회조차 그를 대단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직접 호명하시며 편지에 기록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참 잘 못 오해되어져서 예수를 믿으면 삶이 부흥하고 유명해지고 화려해지고 번영이 되어 져야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하느님이 축복하시면 교회도 커지고 교사도 유명해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세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처럼 살겠다고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살다 가셨습니까? 예수님은 화려한 정치적 경제적 메시아가 아닌 초라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으로 이 땅의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것이 승리의 삶이었다고 성경은 진술을 합니다.

죽으시기 전에 발가벗겨져서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했습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한번 내려와 봐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못 내려가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자기를 못 박은 빌라도나 로마 병정들이나 대 제사장 앞에 나타나서 통쾌하게 복수도 안 하십니다. 그냥 그들에게는 불쌍한 나사렛의 목수로 우스개거리로 남으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승리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없으세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며 바른 복음을 알고 있으며 또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도 합니다. 다른 한분은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가 누구인지 은혜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한 마디로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자기가 믿는 것이 맞는 줄 알고 열심히 우기며 교회 생 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보기에 참 안타까워서 몇 번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충고를 해 줍니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그 사람을 예수에 미친 광신자 취급을 하며 믿으려면 곱게 믿어라고 되레 충고를 합니다. 둘 이 비슷한 시기에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분이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하느님의 복을 받아서 크게 성공한다는 것을 저 사람에게 보여 주세요, 뽄때 한번 보여 주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나쁜 기도 아니지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의 비즈니스는 기울고 엉터리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자기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날마다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조롱합니다. 봐라, 너는 예수 잘 믿는다면서 왜 그렇게 일이 안되니? 난 이렇게 잘되는데얼마나 약 올라요? 혹시 그런 경험 없으세요? 하느님이 그렇게 일을 하십니다. 절대 복수할 기회를 안 주세요. 제 설교를 듣고 유명한 교회 교사님 몇 분이 어떤 분들을 통해 제게 아주 기분 나쁜 소리를 했습니다. ‘정말 네가 맞으면 하느님이 그 교회 크게 부흥시켜줄거다 그런 소리 들었을 때 솔직히 저도 하느님께 이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하느님, 우리 서머나 교회에 사람들 좀 많이 보내 주세요. 그래서 저 사람들 코를 좀 납작하게 해주게요.’ 그런데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느님은 절대 그렇게 일을 안 하신다는 거예요. 그냥 썩어지는 밀알로 가라고 해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래요.

엘리야가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로뎀 나무에 머리를 박고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 어떻게 이렇게 일 하실 수가 있습니까?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하느님께서 그를 호렙산으로 부르시고 거기서 엘리야에게 대답하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냐? 크고 강한 바람을 불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안에 하느님이 안 계십니다. 곧 이어 커다란 지진이 일어납니다. 거기에도 하느님이 안 계십니다. 큰불이 그 앞에 있었는데 거기도 안 계십니다. 그리고는 작고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하느님이 거기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의 삶을 좇겠다고 나선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그런 모습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엘리야의 사건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보기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가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안디바를 가리켜 충성된 증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그 이름은 묵시록15절에서 예수님께 붙여졌던 이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길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버가모 교회를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묵시2:14) 14 그러나 나는 너에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중에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사주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죄짓게 하였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였으며 음란한 짓을 하게 하였던 자다.


베르가모 교회가 외적으로는 핍박을 잘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의 어떤 자들이 잘 못된 가르침에 속아 우상을 섬기고 행음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교회는 우상을 섬기지 않기 위하여 핍박을 당하면서도 이겨내고 있는데 그 중의 어떤 자들은 우상을 섬기고 행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먼저 발람의 교훈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발람은 하느님을 아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이방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 그를 예언자라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면서 그 여정에 있는 이방 민족들을 하나하나 치면서 나갔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연전연승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길에 모압왕 발락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예언자를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습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사람들을 보냅니다. 발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가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람들을 보냅니다. 발람이 따라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저주해야 하는 대목에서 하느님의 간섭하심으로 계속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맙니다. 성경에서 발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듯싶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5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느님 앞 에 큰 죄를 짓습니다.

(민수25:1-3) 1 이스라엘이 시띰에 머물러 있을 때에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놀아나는 음탕한 사건이 생겼다. 2 여인들은 자기들의 신에게 드리는 제사에 그들을 초청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초청을 받아 함께 먹으며 그들의 신을 예배하였다. 3 이처럼 이스라엘이 브올 지방의 바알신과 어울리게 되자 야훼께서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리셨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염병으로 이만사천명이 죽습니다. 이게 브올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

(민수31:16) 16 브올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것들이 바로 발람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꾀지 않았느냐? 야훼를 배신하게 한 것들이 바로 이것들이 아니냐? 야훼의 회중에 염병이 내린 것도 이것들 때문이 아니냐?

바로 발람이 하느님의 간섭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을 때 그냥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는 돈에 눈이 어두워 꾀를내서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자들과 행음하게 만들어서 이스라엘이 모압 여자들이 모시는 우상을 섬기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 발람의 꾀에 넘어갔고 하느님께 혼쭐이 납니다. 그게 발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베르가모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지도자들 이 돈에 눈이 멀어 바르지 못한 교리를 가르쳤고 교인들 중에 그 교리에 넘어가서 우상을 섬기고 행음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베르가모의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娼妓였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은 제물을 바치고 그 제물로 바친 고기를 먹는 것과 동시에 그 신을 섬기는 여 사제와 관계를 가짐으로 그 신을 온전히 섬기게 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 안에 그러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도 섬기면서 우상도 섬기는 혼합주의를 말하는 것입 니다. 베르가모 교회는 외적인 핍박은 잘 견뎌냈으나 내적인 부패를 막지 못 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잘 가고 있는 것 같았 고 실제로 순교자까지 나왔는데 속으로는 엉터리 교리에 젖은 가짜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멀리 볼 필요 없이 우리 교회를 한번 보자고요. 우리교회는 이제 일년 남짓 되었지만 이제 la에서 꽤 유명해 졌습니다. 자주 들리는 말이 서머나 교회는 꼴통 보수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이 질투가 나서 하는 말이지 잘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인들 스스로도 우리는 정도를 걷고 있는 교회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 안에 서머나 교회가 가는 방향과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행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십니까? 우상을 섬기고 행음을 한다고 하니까 무슨 거창한 죄들을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우상이라는 것은 하느님도 섬기면서 하느님 말고 다른 것을 자기 존재의 만족과 행복의 근거로 삼는 것을 우상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하느님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도 섬기면서 하느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우상을 만들어 함께 섬겼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나를 버렸다라고 표현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가리켜 이스라엘이 행음하였다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느님 말고 다른 것으로부터 만족과 행복을 얻어내려 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과거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집착했었고, 중독되어졌던 것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발람의 교훈을 좇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이 발람의 교훈에 놀아나고 있습니까? 예언자인 발람이 돈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팔아먹은 것처럼 자기의 입신양명이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 교인들 등을 치는 교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교인들의 등을 치기 위해 그들의 입으로 퍼부어 주는 그 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까? 이것이 발람의 교훈입니다.

그들은 또한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켰다고 합니다. 니골라당은 당시 초기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무 율법주의를 가르쳤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아도 천국 간다.’ 이게 무 율법주의입니다. 영지주의라는 것은 영적인 것은 고급한 것이고 육적인 것은 아주 저급한 것이어서 육적인 것이 영적인 것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육적으로 지은 죄가 영적으로 얻은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그 영지주의 자들은 교회 안에서는 아주 신실하게 종교 생활을 하다가 자기 삶의 현장에 나가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사는 그런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막 살아도 구원받는데 아무 지장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와 자율을 오해한 것입니다. 자율은 자기가 신이라는 god illusion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유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제한 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상은 없는 것이니까)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 그 고기를 안 먹는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자율은 하느님과 다른 이들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자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니골라 당입니다.


오늘 날 이 영지주의가 교회 안에 고스란히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아주 경건한 척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이 삽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런 엉터리 교리들을 전해서 교인들을 타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도자가 바르게 전해도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여전히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아모8:11) 11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 주 야훼의 말씀이시다.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교회는 많아지고 설교는 많아지는데 진짜 말씀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말씀을 바로 전하는 자도 드물어지지만 바른 말씀을 깨닫는 자들도 드물어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교리를 듣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른 행위가 나오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 맞습니까? 한번 점검해 보세요. 그리스도인은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추구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나가서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 내셔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삶이 나오고 있습니까? 안 나오고 계시다면 기도하셔야 지요. 그리고 이를 악 물고 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힘이 들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그것을 순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순교라 부를 만큼 힘이 듭니다.

(디모후3:12) 12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묵시6:9-11) 9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떼셨을 때에 나는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그 말씀을 증언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0 그들은 큰 소리로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대왕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11 또 그들은 흰 두루마기 한 벌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동료 종들과 형제들이 다 죽어서 그 수가 찰 때까지 잠시 쉬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선교에 가서 목 베임을 당하는 것만이 순교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자들이 왜 죽임을 당했습니까? ‘가이사르가 주님이 아니라 예수가 주님이라는 것을 외치다 죽은 것입니다. 예수가 주라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시므로 나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뜻에 맞게 사시는 것이 순교인 것입니다. 아니 어떤 면에 있어서는 칼에 목이 베이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칼에 목이 베이는 것은 순간에 끝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인생 내내 그 삶을 살아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래도 살아보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라고 하셨으니까. 아무도 안 알아줄 것 같지만 예수께서 안디바의 이름을 부르셨듯이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불러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묵시12:11)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 양이 흘린 피와 자기들이 증언한 진리의 힘으로 그 악마를 이겨냈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싸웠다.

여러분은 이런 구절들을 읽으시면서 막연히 어떤 미래에 있을 일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지금 여러분 교회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거룩을 향한 전투가 없다면 여러분은 지금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이 주는 달콤함에 여전히 빠져 있는 분들입니다. 발람이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 발람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니골라입니다. 그러한 교훈은 여러분을 결국 파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요일1:6) 6 만일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좇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따라주지 않는 신앙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을 좇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엄히 경고하십니다. 회개하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너희와 싸우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그들과 싸우겠다고 하시는데 그 그들은 마귀의 세력이 아닙니다. 주님은 너희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느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에 빠져있고 엉터리 무 율법주의에 빠져 게으르고 나태하고 죄에 빠져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너희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확인했지요? 우리는 종말에 무엇으로 심판을 받습니까? 말씀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 뭐라고요? 말씀입니다. 그 좌우에 날선 검으로 주님이 우리와 싸우시겠다는 것은 뭡니까? 우리는 영원히 지옥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어진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만나는 여러분이 요한복음에서 배우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6:31-35) 31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그들을 먹이셨다' 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3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33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 34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선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35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복음서나 서신서를 보면 예수님이 감추어졌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지요? 그리고 천국의 비유에서도 천국은 감추어진 보배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렇게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흰 돌은 뭡니까?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주시는데 그 흰 돌에는 새 이름이 쓰여 있고 그 이름은 받는 자밖에 모른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지요? 한번 보지요.

당시 사람들이 흰 돌 하면 떠올리는 것이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법정에서 흰 돌을 주면 무죄였고 검은 돌을 주면 유죄였습니다. 그리고 흰 돌은 성결과 거룩을 상징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버가모 교회 사람들이 이 편지를 받아 읽으면서 흰 돌을 주겠다고 하셨을 때에 죄를 사하여 주시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극장에 들어갈 때 입장권이 돌에 이름을 새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흰 돌에 이름을 새겨서 주시겠다고 했을 때 그들이 아마 천국의 입장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달달 외우고 있었던 구약의 이야기를 떠올렸겠지요?

(출애28:9-11) 9 너는 홍옥수 두 개를 구해서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라. 10 나이순에 따라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새기고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겨라. 11 보석공이 인장반지 새기듯이 이스라엘 아들들의 그 보석에 새겨라. 그리고 금테에 그 보석들을 박아라.

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보석이라고 번역이 된에벤, stone’을 말하는 것입니다. 돌 위에 이름을 새기는데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깁니다.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아들들과 함께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버가모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도시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이 뭔지를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요? 이사야서로 가보지요.

(이사56:3-7) 3 야훼께로 개종한 외국인은 '야훼께서 나를 당신의 백성에게서 제명시키리라' 고 걱정하지 말라. 고자들도 '나는 마른 나무 같은 신세구나' 하고 염려하지 말라. 4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고자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의 뜻에 맞는 일만 하고 나의 계약을 굳게 지키면, 5 나의 집, 나의 울 안에 그들의 송덕비를 세워 주리라. 어떤 아들 딸이 그보다 나은 이름을 남기랴! 나 그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주리라. 6 외국인들도 야훼에게로 개종하여 나를 섬기고, 야훼라는 이름을 사랑하여 나의 종이 되어 안식일을 속되지 않게 지키고 나의 계약을 지키기만 하면, 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에 불러다가 나의 기도처에서 기쁜 나날을 보내게 하리라. 그들이 나의 제단에 바치는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내가 즐겨 받으리라.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께서 새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을 받은 자들은 하느님의 성산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사62:2) 2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야훼께서 몸소 지어 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

보세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이 이제 어떤 한 무리, 새 이름을 얻은 영적 이스라엘이 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사65:15) 15 너희가 남긴 이름은 내가 뽑은 자들이 '주 야훼께 천벌을 받아 죽어라' 고 저주하면서 부를 그 이름이다. 그러나 나의 종들은 새 이름을 받으리라.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간에 이제 새 이름을 받은 새 민족, 새 나라,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진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받는 자들은 바로 여러분,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바로 여러분의 이름인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잘 알고 있는 버가모 교회의 교인들은 그 구절을 볼 때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어떤 용기를 얻었는지 보자고요.

(이사65:13) 13 그런즉, 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종들은 먹겠으나 너희는 굶주리리라. 나의 종들은 마시겠으나 너희는 목이 타리라. 나의 종들은 기뻐하겠으나 너희는 창피를 당하리라.

버가모 교회의 사람들이 이 편지를 읽어나가면서 이기는 자들에게는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는 대목에서 이방인인 자기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성소에 나갈 특권을 얻은 자들이며, 자기 주위에 무 율법주의나 혼합주의 같은 엉터리 교리에 빠져서 자기들의 유익만을 구하던 자들이, 겉으로는 배부르고 행복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누리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천국의 배부름과 천국의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고 지금 누리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 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줄 것이다라고 하셨다고 그것이 미래에 주어질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특히 묵시록은 천상의 완성된 교회와 지상의 가시적인 교회를 동시에 띄워 놓고 설명을 하시기 때문에 더더욱 잘 해석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묵시2:10) 10 네가 장차 당할 고통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기 위하여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가두려 하고 있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너에게 씌워 주겠다.

서머나 교회에게는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미래로 말씀하십니다.

(묵시3:11) 11 내가 곧 갈 터이니 너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에게도 네 월계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미 면류관을 받았고 그 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충고를 하십니다. 어떤 교회는 면류관을 먼저 받고 어떤 교회는 나중에 받고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미 면류관을 받아, 쓰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미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 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미 그 혼인 잔치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잔치입니다.

(묵시19:7-12)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 양의 혼인 날이 되었다.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8 하느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 9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행복하다' 고 기록하여라' 하고 말했습니다. 또 이어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참된 말씀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10 그 때 나는 그에게 경배를 드리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이러지 말라. 나도 너나 너의 형제들과 같이 일하는 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 같이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자들이다. 예배는 하느님께 드려라.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야말로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11 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흰 말이 있었고 '신의' '진실' 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그 위에 타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공정하게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입니다.

12 그분의 눈은 불꽃 같았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을 썼으며 그분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분의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그 분이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아까는 여러분의 이름이었는데 여기서는 예수의 이름입니다.

종합해서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기는 자들이 감추인 만나를 먹고 이름이 적힌 흰 돌을 받게 된다는 것이 주는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자들은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을 받으신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져서(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의 이름이 되고 여러분의 이름이 예수의 이름이 되는 연합) 이미 하느님 전에 나아가 하느님이 베푸시는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만나와 포도주를 배 터지게 먹고 마시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으로 미혹하는 마귀의 세력을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교의 삶을 기쁘게 살아내게 된다고..

그러한 자들은 이 세상의 풍요를 위해 하느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목마르지 않고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 하늘의 잔치를 온 몸으로 느끼고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렇게..

(시편23;1-6)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2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부어 내 머리에 발라 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여러분의 잔이 넘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맞으시다 면 지금 세상사람 들이 보기에 환난과 궁핍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 속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만족하고 행복하여 배가 터지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예수를 바로 아십시오. 하늘나라를 바로 아십시오. 분명 여러분의 잔이 넘치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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