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성서
(7) 나라와 제사장으로 (묵시1:5-6)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 하느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교회, 하느님 나라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집단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여서 하느님을 힘써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외롭게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아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느님을 목소리 높여 찬양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헌금을 하여 가진 소유를 나누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의 위용을 자랑하는 예배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십일조가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헌금을 안 합니까? 하느님은 이제 예수 안에서 우리 전체를 다 달라고 하십니다.
(묵시1:5-6)
5 그리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며, 땅 위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6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서 영광과 권세를 영원무궁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우리는 지난번까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장차 오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와 은혜, 그리고 보좌 앞의 일곱 영으로 표현 된 성령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화, 그리고 충성된 증인으로 먼저 살다 가셨고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하느님의 맏아들, 우리의 큰형, 왕 중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화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부터 오는 그 은혜와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감격을 이기지 못해 5절과 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합니다. 오늘은 그 찬송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뿐 아니라 사도들은 그들의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을 전하면서 언제나 감격에 복받쳐 중간 중간에 찬송을 합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본인이 그 기쁨과 감사를 참지 못하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에페3:20-21) 20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1 하느님께서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디모전1:17) 17 영원한 왕이시며 오직 한 분뿐이시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불멸의 하느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영예와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유다1:24-25) 24 하느님은 여러분을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영광스러운 당신 앞에 흠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5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세와 권위를 천지창조 이전부터 이제와 또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이렇게 사도들은 복음을 이야기하다가 문득문득 하느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성경을 읽다가 가끔 너무 복받쳐서 의자에서 내려와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한동안 앉아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엉엉 웁니다. 그 울음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나에게 이러한 은혜가 주어졌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자주 하느님을 찬송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렇게 좀 더 열성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렇게 지금도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죄와 친한가?’ 그런 것 때문에 한참을 괴로워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그 복음에 대해 묵상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어떻게 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이렇게 구원해 주셨는지 놀라고 또 놀랍니다. 그리고 크게 찬송을 부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도 부르고 ‘아 하느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도 부릅니다. 어떨 때는 성경을 읽으면서 제가 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읽으면서 제 살을 꼬집어 볼 때도 있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 인지 감격하면서 말이지요.
여러분은 예수를 생각하면서, 복음을 곱씹으면서 얼마나 감격을 하십니까?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시면서 얼마나 감격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느님을 마음 깊이 사랑하지 않고 여전히 추한 나의 모습으로 얼마나 울어 보셨습니까?
신자는 자기에게 닥친 문제 때문에 우는 자들이 아닙니다. 신자는 하느님과 그 분의 하신 일 때문에 감격해서 울고 그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지 못해 안타까워 우는 자들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렇게 수시로 찬송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묵시록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감격스러운 찬송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을 비롯해서 무려 다섯 군데에서 복받치는 감격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감격이 점차적으로 점진적으로 커집니다. 급기야 7장12절에서는
(묵시7:12) 12 '아멘, 우리 하느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세력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6절에서는 영광과 능력 두 가지만 나열을 합니다. 복음을 설명해 나가면서 그 감격이 점점 커져서 동원할 수 있는 단어는 다 동원해서 우리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해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에페1:3-1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6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8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9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10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11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14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 하느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일차적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필요 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하느님을 동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존심 상하세요? 우리가 하느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너무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줍지 않은 인본주의, 휴머니즘, 인내천, 천인 무간 사상 같은 인간이 최고라는 사상이 우리 안에 너무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미하기 위해 구원받았고 이 땅에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가 나오는데 6절을 보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입니다.
(묵시1:6) 6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서 영광과 권세를 영원무궁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따라서 거듭난 하느님의 백성들은 늘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여러분의 삶에 하느님을 향한 찬송이 나오지 않고 그냥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허락하신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면 여러분은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찬양 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느님의 약속이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소리 한번 듣고 싶으셔서 , 정말 마음 깊이 감사와 사랑이 넘쳐 나서 부르게 되는 ‘아버지’라는 찬송의 소리 한번 듣고 싶으셔서 우리를 이렇게 구원하신 것이고 양육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어떻게 이 땅에 나타났습니까?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 그 피를 우리 죄의 대가로 삼으셨습니다.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셨습니다.
5절 하반부를 보면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해방하시고’는 헬라어로 ‘루오’라고 합니다. 그 ‘루오’는 ‘깨끗이 목욕시키다, 깨끗이 빨다’라는 의미입니다. 온통 죄로 더러워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빨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의 피가 속전으로 치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묵시5:9) 9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값을 치러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 내셔서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히브9:22) 22 율법에 따르면 피로써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일이 없이는 죄를 용서받지 못합니다.
(히브13:12) 12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사1:3) 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
개만도 못한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난자해 버린 아버지의 이야기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이 어찌 찬송을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길 가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펄쩍펄쩍 뛰는 거예요. 사업 때문에 가정 문제 때문에 머리 터지게 고민하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떼굴떼굴 구르는 거예요, 좋아서 ‘아버지, 나의 아버지’를 부르는 거예요.
오늘 본문 6절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라와 제사장을 원어로 보면 ‘바실레이안 히에라이스’입니다. 이 말은 ‘나라, 곧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동격입니다. 그것은 출애굽기 19:6절의 성취이죠?
(출애19:5~6) 5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 6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줄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우리 교회는 그 하느님의 말씀을 지킬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다 지켜주시고 우리에게 그 삶을 전가시키셔서 우리는 비로소 제사장 나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의 ‘에포이에센’은 ‘포이에오’의 과거 시제입니다. ‘포이에오’는 ‘창조하다’는 뜻입니다. 하 느님은 우리를 이미 거룩한 나라요 제사장으로 창조해 내셨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서에서도 똑같은 말이 나오지요?
(베전2:9)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가 ‘나라’라는 개념을 영토의 개념으로 가지고 있어서 조금 이해가 어려우실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는 바로 우리 교회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느님의 백성들 자체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통치를 기뻐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느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하느님을 섬기게 되어있던 자들이 제사장이지요?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을 기뻐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나라, 곧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확실하게 밝혀지지요.
(히브10:19)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서 우리는 마음 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이 제사장들이에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고 하느님의 백성들은 모두가 제사장이 되어서 성소에 들어가 자유롭게 하느님을 알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영원한 성소, 천국에서 영원히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을 찬송하며 살 것입니다.
찬송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기를 낳아 본 사람은 압니다. 그 아기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너무 좋아서 계속 그 아기에게 말을 합니다. ‘손이 예쁘다, 발이 예쁘다, 눈이 맑다’너무 사랑하니까 칭찬하고 싶어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당당하게 하느님의 성소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그 하느님의 존전(尊前)에서 하느님을 섬기며 찬송하는 제사장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나라요 제사장들입니다.
(묵시20:4-6) 4 나는 또 많은 높은 좌석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했다고 해서 목을 잘리운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5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거룩합니다. 그들에게는 둘째 죽음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제가 되고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느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삶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로마12:1)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히브13:15)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찬양합시다.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려서, 절대적인 순종을 하셔서 하느님 앞에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리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몸을, 인생을 하느님 앞에 드려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물은 마땅히 죽어야하는 것입니다. 산 자가 죽음을 방불한 제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베전2:9-21)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 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분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11 사랑하는 형제들,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체적인 욕정을 멀리하십시오. 12 그리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행실을 단정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던 그들도 여러분의 아름다운 행위를 보고 하느님께서 찾아 오시는 그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13 여러분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복종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황제는 주권자이니 그에게 복종하고 14 총독은 황제의 임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악인을 처벌하고 선인을 표창하는 사람이니 그에게도 복종해야 합니다. 15 선한 일을 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16 여러분은 자유인답게 사십시오. 그러나 악을 행하는 구실로 자유를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섬기는 종입니다. 17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황제를 존경하십시오. 18 하인으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주인에게 진정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십시오.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뿐만 아니라 고약한 주인에게도 그렇게 하십시오. 19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느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며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20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영예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면서 참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21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 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이 삶이 바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기꺼이 그 분을 섬기게 되면 이까짓 찰나의 세상에서 받는 어려움 고난은 참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위해 형제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밟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의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각자가 삶의 현장 에서 제사장의 삶을 살다가 그 제사장들이 교회가 모이는 시간에 모여서 진짜 하느님 나라의 모형을 이 땅에 보여주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히 하느님을 섬기며 그 분을 자랑하며 찬양하는 하느님 나라의 삶의 축소판이 바로 교회가 모이는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야말로 우리 제사장들이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제사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삶이 결국은 예배의 삶이었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묵시22:3) 3 이제 그 도성에는 저주받을 일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어린 양의 옥좌가 그 도성 안에 있고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여기서 ‘섬기며’라고 번역된 ‘라트류오’는 ‘예배하다’라는 뜻입니다.
(히브9:14) 14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느님을 섬기는 하느님의 백성들은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이고 천국의 장자들의 무리가 모이는 예배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제사장과 나라를 동격으로 이야기하는지 아세요? 제사장들을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창세전에 교회라는 커다란 무리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아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는 궁극적 이유가 우리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감사와 기쁨이 담긴 아버지 소리를 듣고 싶으셔서 하느님은 우리를 건져내셨다고 했지요.
우리가 하느님이 진짜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아는 것, 하느님을 인정하고 하느님을 높여드리는 그것이 나라요 제사장인 우리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와 자녀가 영원히 함께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시며 자녀들은 아버지를 섬기며 따르며 사는) 居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바로 그 모습을 지상에 그려놓으신 것이 교회의 예배입니다.
(히브12:22-24) 22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23 또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24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게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예배의 모습이요,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서 드려지던 제사의 모습입니다. 교회, 하느님 나라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집단 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여서 하느님을 힘써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외롭게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아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느님을 목소리 높여 찬양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헌금을 하여 가진 소유를 나누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의 위용을 자랑하는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2:44-47)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45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46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돌아 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47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오심으로 율법이 폐기된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성취되고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진 하느님 나라로 지어져 가면서 예수 안에서 그 율법들을 완성시켜 나가는 자들입니다. 십일조가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헌금을 안 합니까?
하느님은 이제 예수 안에서 우리 전체를 다 달라고 하십니다. 그 형식은 완성되었지만 정신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배를 안 드립니까? 이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심히 주일을 지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동물제사는 이제 없어졌지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열심히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 구약의 제사에 흐르던 정신이 속죄, 십자가, 피 아닙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한 장자들의 무리가 모여 오늘도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세상을 향해 거룩하게 구별된 어떤 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배격하고 하느님을 부인하는 이 세상에서 불려 나와서 기쁘게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도 그렇게 구별되어져서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 천국 백성들이 모이는 예배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천국이 뭔지 속죄가 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예배에 늑장을 부릴 수 있습니까?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미리미리 와서 하느님을 묵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하고 기도하며 감격 속에 천국잔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하늘나라의 감격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장자들의 무리가 모이는 예배보다 골프가 더 좋을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하느님을 자랑하고 선포하는 제사장이라고요? 천만에요. 만일 이 중에 그런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분들입니다. 섣불리 하느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다른 이들에게 엉터리 복음이 흘러들어 갈 것입니다.
언제든지 나의 일이 바쁘면 미뤄 둘 수 있는 천국, 언제든지 나를 즐겁게 해 줄 용무가 있으면 빠져나가 버릴 수 있는 하느님 나라, 그런 하느님 나라를 전하실 겁니까? 그들이 여러분이 언제든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교회가 모이는 것을 빼먹는 것을 보면서 무어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난 당신보다 더 바쁜 일이 있어, 그래서 난 교회 못 가’‘너도 바쁘면 안 가잖아’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더 진지해 져야 합니다. 교회가 모이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 나라요 제사장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신 분들입니다.
여러분, 자연계가 완전하게 회복되고 나를 목숨을 걸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영원히 문명과 문화를 즐기며 슬픔과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버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의 통치를 받으며 영원히 산 다는 것이 진짜 기다려지세요? 아니면 억지로 나와 앉아 계신 겁니까?
정말 그 나라를 희망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은 교회가 모이는 것을 매순간 사모하며 살아요. 말씀을 그렇게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 무시하면 교회 안 나가?‘하고 배짱을 부립니다. 그러면 나오지 마세요. 복음을 그렇게 구걸하며 전할 생각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느님이 목숨을 끊어가며 건져내신 교회는 그렇게 우스운 것이 아닙니다.
6절에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포이에오’는 과거시제입니다.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가파오’는 현재시제입니다. 그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과 영광과 능력은 세세토록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묵시1:6) 6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서 영광과 권세를 영원무궁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이러한 확실한 희망 속에 있는 여러분이 왜 그렇게 어깨가 축 쳐져 있으세요? 힘을 내세요. 여러분은 왕이요 나라요 제사장이십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환경, 상황 속에서 열심히 하느님 섬기며 순종하며 제사장으로 살아내자고요. 그리고 열심히 모여서 사랑하며 격려하며 말씀을 나누며 하늘나라를 경험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아멘’으로 도장을 꽝 찍고 있잖아요? 힘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