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성서
(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묵시1,1-3)
하느님과 겨뤄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이기적인 축복만을 받기 원하는 불가능한 인간을 하느님은 가차 없이 죽여 버리시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드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십자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관한 계시는 그게 전부입니다. 절대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묵시록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에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재현되고 있는가, 그 복음의 내용이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어 지고 있는가‘ 를 확인해야 합니다.
(묵시1,1-3)
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느님께서 곧 일어날 일들을 당신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리스도에게 계시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당신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려 주셨습니다. 2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언하신 것, 곧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증언합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일들이 성취될 시각이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서론 부분인 묵시록 1장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 이라고 시작을 합니다. 계시라는 것은 말씀드린 대로 가려져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계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추측할 수도 없는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비밀이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드러난 책이 성경이기에 성경을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전2:9-10) 9 그러나 성서에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10 하느님께서는 그 지혜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경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십니다.
이렇게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할 하늘의 일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 계시는 유일하게 성경밖에 없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 야 합니다.
계시인 성경은 하느님과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하신 일에 관해서만 기록되어져 있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성경을 통하여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크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추악한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보내셔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계시라고도 부르고 그 일은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힌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과 셋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 즉 하느님 자손의 계보는 무죄한 자의 흘린 피로 이어진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셋의 이름의 뜻이 ‘카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하느님께서 주신 자’입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회복될 모든 피조물과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 남은 자들을 감싸 안으신 예수께서 저주의 비를 맞으시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이 살아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한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어 그 아래로 줄줄이 하느님의 백성이 올라오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힌트하고, 자기를 죽일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올라가는 이사악을 통해서 자신이 매달릴 나무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으며 죽어야 할 자가 준비되어진 어린양이 대신 죽음으로 살아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의 올 때를 기다리다 보고 기뻐했다’라는 요한복음 8장의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장면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얍복강 가의 야곱을 통해서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십니다. 하느님과 겨뤄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이기적인 축복만을 받기 원하는 불가능한 인간을 하느님은 가차 없이 죽여 버리시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드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십자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환도 뼈가 부러졌다는 것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전인(全人)’‘전 존재’가 무너진 것을 의미했습니다. 야곱의 환도 뼈가 부러졌습니다. 야곱은 죽었고 다시 살아 ‘이스라엘‘’승리‘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환도 뼈가 부러졌으면 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승리‘라는 이름을 주십니까? 죽으셨다가 다시 사셔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실 그 승리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기꾼 야곱이 하느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옛 이름이 죽고 새 이름으로 태어나야지만 가능한 데 그 것을 예수께서 야곱을 품으시고 대신하여 이루어 주실 것임을 야곱의 얍복강 사건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무죄한 자가 고통을 받음으로 어떤 백성 전체가 구원을 받는 예수를 보여주시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떤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건져진 하느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과월절에 어린양들이 죽고 그 피가 인방과 문설주에 발려진 집만 살아납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게 됩니다. 그리고 광야40년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만나와 생수와 구리 뱀 사건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옛 사람 60만 명이 다 죽고 새 사람 60만 명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장정만 계수한 것입니다.
모세는 똑같이 그 이스라엘의 삶을 먼저 삽니다. 당시 애굽에서는 히브리 사내아이는 모두 죽여 버리라는 파라오의 엄명이 있던 때였습니다. 모세는 살아납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듯 물에서 건져집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시나이 산에 올라 하느님을 만납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 돌 판을 받아서 내려오는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가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낸 야훼다’ 하고 우상을 섬깁니다. 모세는 십계명 돌 판을 그들에게 던져서 깨버립니다. 그 십계명 돌 판은 하느님이 준비하시고 하느님께서 직접 쓰신 하늘의 거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은 죄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올라가서 이제 모세가 준비한 돌 판에 하느님이 쓰시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합쳐진 계명이 내려와 이스라엘을 끌고 갑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합쳐진 존재가 예수님!. 우리는 십계명 돌 판이 깨지는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 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판관기의 판관들을 통해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셔서 이 땅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인지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은 하나같이 바보 같은 판관들을 들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왼손잡이 에훗, 소 모는 작대기의 삼갈, 여자 드보라, 바람둥이 삼손 등등의 연약한 모습에 성령이 임하시자 큰 능력이 나타나 적을 섬멸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약한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힌트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엘리야를 통해 또 한 번 예수님을 보여 주십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850대1의 전투를 마치고 이세벨의 저주의 전갈을 받고 두려워 떱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머리를 박고 ‘하느님 차라리 저를 죽여 달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그를 살려 내십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시켜 물과 떡을 날라다 주십니다.
그는 그릿 시내를 건너 광야 40일을 걸어서 호렙산, 시나이 산으로 가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과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헤로데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십니다. 헤로데가 죽고 예수님은 애굽에서 나오십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홍해를 건너신 것입니다.
(고전10:1-2)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꼭 기억해 두셔야 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모두가 홍해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2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를 받는다고 하지요? 그리고 광야로 가십니다. 시험을 받으시지요? 시험을 받으시고 어떤 결론을 내려주십니까?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한다’라고 결론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꺼내셔서 광야를 살게 하신 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실패했지만 예수님께서 실패 할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품에 안고 하느님의 요구를 성취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신명8:2-3) 2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 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3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찌기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 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지요? ‘아냐, 나에겐 빵이 필요해’‘福 줘’ 그러다 다 망했습니다. 그 실패를 예수님께서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을 가리켜 생수라고 하셨고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자신이 하늘의 만나, 하늘의 빵이라 하셨으며 구리 뱀처럼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셔서 참 가나안, 하느님 보좌 우편으로 복귀를 하셨습니다.
바로 그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내용입니다. 1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라는 말은 구약전체에 걸쳐서 예언되고 계시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시란 것을 공포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1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소유격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라는 뜻이 되지요. 그러므로 이 요한묵시록은 바로 그 복음이 적혀있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구약 전체를 통해서 그림자로 계시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계시된 대로 그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히브1:1-2)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씀을 하셨다는 뜻이 바로 그 뜻입니다. ‘그림자로 모형으로 보여주었던 그 하늘의 비밀이 바로 이 이야기다’하시며 실체이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계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구절의 ‘마지막’은 헬라어 ‘에스카토스’ ‘~의 끝’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eschatology' 종말론 이라는 단어가 나왔지요.
그러니까 그 하느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관한 계시는 그게 전부 입니다. 절대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구원에 관한 계시가 성경으로 모자라나요?
뭔가 더 필요한 것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성경이 다 인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한심한 자들입니까?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 성된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내려올 계시는 없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그 다음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마지막' 의 뜻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으로 계시를 완성하셨습니다. 그 완전한 계시, 그 홀로 충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적혀있는 책이 요한묵시록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구절에는 그렇게 우리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버리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라면, 그 분에 대한 내용이라면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은 손톱만큼도 없는 책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묵시록은 3절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주신 책이지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 위해 주신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맞다고 한다면 말이지요.
구약을 비롯한 다른 책들이 하늘의 것들을 원형으로 이 땅에 모형으로 그림자로 기록해서 하늘의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 요한묵시록은 하늘의 모습을 직접 기록해서 이 땅의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이 땅에 보내셔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 가시는 하늘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 땅의 사도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계속해서 복음의 나팔을 붑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반면에 요한묵시록은 직접 하늘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를 기록하여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렇게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았는가가 다를 뿐이지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 예수님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하느님의 말씀과 동격으로 나옵니다.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해 놓고 2절에서 그 계시의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해 줍니다.
(묵시1,2) 2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언하신 것, 곧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증언합니다.
그 계시의 내용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복음이라 부르지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삶 자체가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광야에서의 교회의 삶입니다. 교회는 여러분과 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살다 가신 것이지요? 그러면 당연히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삶을 살아내야지요. 우리 교회의 삶 자체가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시편22,1.6-8.15-19) 1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 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6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7 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8 '야훼를 믿었으니 구해 주겠지, 마음에 들었으니, 건져 주시겠지' . 15 깨진 옹기조각처럼 목이 타오르고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었습니다. 16 개들이 떼지어 나를 에워 싸고 악당들이 무리지어 돌아 갑니다. 손과 발이 마구 찔려 죽음의 먼지 속에 던져진 이 몸은 17 뼈 마디마디 드러나 셀 수 있는데 원수들은 이몸을 노려 보고 내려다 보며 18 겉옷은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19 야훼여, 모르는 체 마소서. 나의 힘이여, 빨리 도와 주소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시편 22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마치 예수님의 생애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지요? 시편 31편으로 가보세요.
(시편31:5) 5 진실하신 하느님, 야훼여, 이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건져 주소서.
(시편34:18-21) 18 실망한 사람 옆에 야훼 함께 계시고 낙심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신다. 19 올바른 사람에게 불행이 겹쳐도 야훼께서는 모든 곤경에서 그를 구해 주시고 20 뼈 한 마디도 부러지지 않도록 고이고이 지켜 주신다. 21 악인들은 그 행실로써 죽음을 부르고 의인을 미워하는 자 멸망하리라.
분명 이 시편들은 전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삶과 똑같습니까? 예수님의 삶을 다윗이 미리 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삶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시펀22:27-28, 31) 27 온 세상이 야훼를 생각하여 돌아 오고 만백성 모든 가문이 그 앞에 경배하리니 28 만방을 다스리시는 이 왕권이 야훼께 있으리라. 31 주께서 건져 주신 이 모든 일들은 오고오는 세대에 일러 주리라.
성경이 다윗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렇게 똑같이 기록해 놓은 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의 삶에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나타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묵시록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에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재현되고 있는가, 그 복음의 내용이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어 지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예수님처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삶을 우리가 살아낼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죽지 않으셔도 되었겠지요.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은 자신을 죽여 원수를 살려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원리를 우리 성도들이 이해하고 비록 자주 실패하고 실수하더라도 그 삶을 추구해 나가게 되는 그러한 삶이 우리의 인생 속에서 나타나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절대 그렇게 살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러한 자리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때로 억울하고 억지스러운 일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세요
(묵시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일들이 성취될 시각이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읽는 자라고 단수로 나와 있고, 듣는 자들이라고 복수로 나와 있는 것은 당시 성경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당에서 한 사람이 읽고 여러 사람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라) 거기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 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복이 있는 자들이란 구원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읽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야고1:22) 22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을 속이는 자라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당연히 나타나게 될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만일 배신당하고 핍박받고 환난가운데 처해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하느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와~신기하게 정말 그 예수님의 삶이 나의 삶 속에서 재현되는 구나’ 하고 기뻐하시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삶이 나타나고 있다면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을 다시 보면 그 계시의 일들이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묵시1,1) 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느님께서 곧 일어날 일들을 당신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리스도에게 계시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당신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려 주셨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악한 세력이 망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는 일입니다. 바로 그 일이 반드시 속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요한묵시록이 기록되어진 때는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입니다. 그럼 이미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미 이루어진 일 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속 히 될 일이라 기록을 했을까요? 그러면 그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다니엘서로 가보겠습니다.
(다니2:28-29) 28 하늘에는 어떤 비밀도 밝혀 내실 수 있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임금님께 훗날 일어날 일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잠자리에 누워 꾸신 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9 임금님께서 자리에 드시어 앞일을 생각하실 때 모든 비밀을 밝히시는 분이 훗날 일어날 일을 임금님께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해 주는 장면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속에서 큰 신상을 봅니다. 머리는 金으로 팔과 가슴은 銀으로 나머지는 鐵로, 흙으로 되어 있는 그런 신상입니다. 그런데 뜨인 돌이 그 신상을 부수어 버립니다. 여기서 뜨인 돌이라는 것은 공중에 떠 있는 돌이라는 말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삽으로 뜨여진 돌, 그러니까 하늘에서 뜨여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것이 마지막 때에 하느님께서 악의 세력을 멸망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을 왕에게 보여 주신 것이라고 해석을 해 줍니다.
이미 BC586년에 남 유대가 망하기 전인 BC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리한 바빌론이 벌써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가기 시작했을 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 갔으니까 예수께서 오시기 60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일은 장차 될 일, 장래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셨고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분명 묵시록에서도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기셨고 그 분이 교회 시대의 역사인 책의 인을 떼실 분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묵시5:5) 5 그러나 원로들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였으니 그분이 이 일곱 봉인을 떼시고 두루마리를 펴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책의 인이 어떤 인이지요?
(다니12:1-4) 1 그 때에 미가엘이 네 겨레를 지켜 주려고 나설 것이다.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찌기 없었던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그런 때라도 네 겨레중에서 이 책에 기록된 사람만은 난을 면할 것이다. 2 티끌로 돌아 갔던 대중이 잠에서 깨어나 영원히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영원한 모욕과 수치를 받을 사람도 있으리라. 3 슬기로운 지도자들은 밝은 하늘처럼 빛날 것이다. 대중을 바로 이끈 지도자들은 별처럼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4 너 다니엘아, 이 말씀을 비밀에 붙여 마지막 그 때가 오기까지 이 책을 봉해 두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쳐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인은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마지막 때가 이르기까지 봉해 두라고 하신 그 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고 이제 하느님의 백성들인 교회가 탄생되었으며 그 교회의 이 땅에서의 삶의 내용과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져 가는 모습이 적힌 책의 印이 떼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 하느님의 언약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은 시작되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울고 있던 요한에게 천사가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미 이기셨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이 책에 적힌 일들이 이제 공개가 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신상이 뜨인 돌이신 예수께 박살나듯 그 일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요한은 이미 이루어진 일 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반드시 속히 될 일’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또 우리는 already - not yet(이미-아직)의 원리를 적용해야지요.
요한은 영적으로, 환상으로 하느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이미 그 곳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악의 세력이 불 못에 던져진 것도 보았습니다. 그 일은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분명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하느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영적으로 이미 이루어졌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가시적으로도 반드시 실패 없이 이루어지고 만다는 운명적, 신분적 차원에서, 요한은 아직 가시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께서 이미 시작 해 놓으셨으므로 그 일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다’라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전4:7) 7 세상의 종말이 가까왔으니 정신을 차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십시오.
(베후3:3-10) 3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곧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4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고 말할 것입니다. 5 그들은 아득한 옛날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땅이 물에서 나왔고 또 물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6 그리고 물에 잠겨서 옛날의 세계는 멸망해 버렸습니다. 7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말세에 세상 사람들은 노아 때처럼 ‘언제 비가 오냐’‘비가 온다며, 왜 백년이 지났는데도 비가 안 오니?’ ‘정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종말이 올까?’ ‘언제?’ 이렇게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때 비가 왔습니까? 안 왔습니까? 왔습니다. 120년 만에 왔지만 하느님께서 비로 멸망케 하겠다고 하셨으면 반드시 그 일은 이루어진 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신 하느님의 시간 속에서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한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고 이미 시작 된 일은 더 더욱이나 확실하게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가리켜 ‘속히 될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될 일 이라는 구절은 시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완성의 필연성과 확실성’에 강조를 둔 말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매일 매일 돌아보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힘들어도 힘내시고 끝까지 이겨내 보자고요. 그날은 반드시 속히 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구절을 통해 이 요한묵시록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복음이 적혀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예수님의 삶과 사역이 바로 복음이며 우리에게도 그 예수님의 삶이 나타나야하며 그 삶이 때로 견디기 힘들고 눈물이 날 때 ‘그 마지막 날은 반드시 속히 온다’는 확신에 찬 희망으로 우리는 견뎌 내라는 것이 오늘묵시록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날은 반드시 속히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