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2

2019. 5. 28. 오전 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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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 (2013.01.16)

아 저희가 그 집회 전에 여기서 연락받기로는 그 회개와 거듭남에 대해서 그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준비해 달라고 이렇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뭐 열심이 있는건 좋지만 바오로가 이야기한처럼 그 열심 하느님을 위하여 목숨을 건 그 열심이 오히려 하느님을 핍박했던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바리세인들이 이방신을 섬기느라고 주님에게 독사의 새끼라는 욕을 먹었을까요 아니요 하느님을 너무 너무 목숨 걸어 열심히 섬겼는데 하느님은 그걸 보고 니가 왜 나를 대적하느냐 그랬단 말입니다 열심을 부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올바로 알고 부리는 열심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조금 알고 있는 개념들에 대해서 한번 고민을 좀 해보재는 거죠

회개라는게 뭐죠 여러분 회개 회개라는 건 반성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지른 어떤 것에 대한 뉘우침 정도가 아닌 거에요 그 회개라는 말을 히브리어로는 라고 쓰고 헬라어로는 메타노이아라고 씁니다 슈라는 말이 구약성경에서 회개라고 쓰이지만 원래 이 뜻이 뭐냐면 그 하느님이 이 아래의 것으로 진리를 설명해주기 위해 복음을 설명해 주기 위해 아래것으로 주신 그 성전을 제대로 잘 분석하여 이해하면 아 세상살이라는게 이런거야 라고 알고 그러면 내 세계관과 가치관은 이런 것이면 안되겠네라고 하고 돌아서서 완전히 자기가 갖는 길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돌아서 가는걸 슈 회개라 그러고 이 메타노이아라는 단어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하느님과 반대되어 모든 인간은 그 하느님이 원하는 길을 생래적으로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그러는 거에요 성경이요 이땅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러죠 그거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인간은 이 땅에 아담으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즉시 하느님과 반대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나를 위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그런데 하느님은 그리로 가면 죽는다 너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야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말이에요 그런데 그 길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인간측에서는 없어요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 성령이 우리를 원치 않는 방향으로 밖에서 띠띠우고 니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가 끌고 간다 하고 끌고 가는게 바로 메타오니아에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랬죠 제는요~~ 라고 물어봤을때 요한에게 아니 이렇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환란을 받고 이렇게 사는게 성도에 삶이라고 하는데 주님품에 늘 안겨 있는 제는요~`라고 물어봤죠 요한복음 마지막장에서 그랬더니 주님이 너나 잘해 그랬다구요

니가 왜 게 인생에 신경써 너나 잘해 그러구선 뭐라그러냐면 니가 지금까지는 니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렇게 살아갔지만 앞으로 너는 니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띠를 띠우고 띠는 항상 성경에서 진리를 상징하는 거에요 내가 진리의 띠로 너를 묶으면 너는 이제 니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를 향해 오게 될거야를 메타노이아 회개라 그래요 그러니까 회개라는건 여러분 측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산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회개의 이야기가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오는데가 어딘줄 아세요 루가복음 15장입니다 루가복음 15장에 두 아들에 비유있죠 여러분 돌아온 탕자의 비유 그 비유 앞에 어떤 비유가 붙어 있어요 잃어버린 양의 비유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 이렇게비유 세개가 연달아 나와요 주님이 한자리에서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하시냐하면 원어를 보면 내가 비유 하나를 얘기해줄께 그래요 세개잖아요 그럼 복수로 이야기하셔야 된다 말이에요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비유 하나를 얘기해줄께 그러고는 잃어버린 양에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 요걸 연달아 붙여서 말씀해 주세요 그건 무슨 말이겠어요 그 세비유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하는 거야라는 이야기에요 그럼 한번 보자구요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뭡니까 백마리의 양이 있습니다 근데 한마리를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아흔 아홉마리를 두고 한 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이야깁니다 여러분 이거 상식적으로 이렇게 하는게 옳습니까 아흔 아홉마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그거는 내가 그 잃어버린양 한마리 찾으러 가는 동안에 애들 여기에서 무슨 일 일어나가지고 여기에서 또 잃어버리는거 생기면 어떡해 그런데 그 주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흔 아홉마리를 두고 한마리를 찾아갔을까요 그 배경을 아셔야죠

죄인과 세리들 텔레이온이라는 세리라는 단어는 그 구원 그 가치 그 평안 그 안식을 사는 자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세리는 항상 성경에서 하느님과 주님과 가까이 있는 존재들로 이렇게 등장한다 말이에요 그래서 세리의 완성이 마지막에 자케오로 완성되는 거거든요

그래 세리는 이런거야 라고 이야기 하는 거라 말입니다 거기까지는 여러분들에게 다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하여튼 세리와 죄인 이거는 하느님이 부르러 온 자들인데 그때당시에 보편적 율법주의 유대주의 하에서는 그들은 가까이하면 안되는부정한 자들이였단 말이에요 근데 주님이 항상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바리세인과 율사들이 주님께 오더니 당신 왜 죄인들하고 이렇게 같이 먹고 마시고 있느냐고 이거는 율법에 비추어 봐서 옳지 않은거 아니냐고 따졌단 말이에요 거기에서 주님이 그럼 내가 비유를 하나 이야기해줄께 라고 파라볼레 하나를 던진 거라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잃어버린 자가 아니다 나는 잃어버린자 아니다 제네는 부정한 자지만 나는 이렇게 율법 잘 지켰고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 섬긴 자니까 나는 잃어버린 자아니지 제들이 잃어 버린자지라고 자기가 잃어버린 자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아흔 아홉 유대인 대부분이 누구라는 거에요 자기가 잃어버린 자인지 모르는 아흔 아홉의 어린 양이라는 거애요 그러면 그 양들은 하느님과 아무상관이 없는 자래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가 잃어버린 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게 죄인과 세리였어요 그때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였으니까 그들은 아무하고도 교제를 소통을 할 수가 없었던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들이요

그러니까 주님이 지금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내가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그 양을 찾아가지고 오면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가 여기 있는 아흔 아홉마리 자기가 길 잃은 자인지 모르는 너희같은 아흔 아홉마리 보다 이 한마리 찾아오는걸 그걸 더 기뻐한다 그랬어요 무슨 말이냐하면 주님은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느님에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존재일 수도 없는 자구나라는 걸 깨닫는 그들을 찾으러 오신대는 거에요 그러면 성령이 오면 일차적으로 우리에게서 일어나냐 하는 현상이 뭐에요 아 내가 길 잃은 자구나 내가 죄인인거 맞구나 라는 인식이 먼저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한번 보세요 그렇게 주님이 이야기한 다음에 이게 회개다 그랬어요 어 성경들좀 보시라니까 이게 회개다 그랬어요 그러면 매타노이아 라는단어를 거기서 썼단 말입니다 거기서 잃어버렸던 양이 주인을 찾아갔어요 아니면 주인님 어디계세요 소리를 질렀어요 뭘 했어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니깐요 그냥 그런데 주인이 저놈이 길 잃었다라는 것을 지가 알고 있구나 얼마나 힘들겠어 얼마나 무섭겠어 내가 찾아가야지 하고 주인이 그를 찾아갔어요 찾아가서 붙들어 어깨에 매고 찾아오는걸 주님이 뭐라 그러냐하면 이게 회개야 그런다 말이에요

그러면 회개는 뭡니까 하느님이 길잃은 자들에게 찾아가셔서 이게 진짜 가치있는 삶이 아니란다 진짜 생명에 삶은 저기 있어라고 그를끌고 가는 걸 성경이 회개라 그래요 여러분이 몇가지 잘못하고 실수하고 한걸 이렇게 반성하고 뉘우치는거 물론 해야죠 인간인데 네 그것도 안하면 인간도 아니지 그건요 그런데 성경은 그걸 회개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함부로 너 회개해 이딴 소리 하지 말라니깐요단어를 잘 알고 써야 된다니깐요

그리고는 열 드라크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열이라는 건 항상 성경에서 하느님에 법을 상징해요 율법 근데 그 열이라는 것으로는 반드시 진리라는 하나를 깨달아야 되요 그래서 율법을 처음 줄때 열로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십계명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직역을 하면 십에 계명에 십 이라는 뜻이에요 그 계명을 십으로 줘볼께.... 그걸 설명하기 위해 율법 말씀이 뭔지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십으로 준다가 십계명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열을 주면 그걸 갖고 뭘 알아야 되요 그 하느님에 그 사랑 그은혜를 깨달아 알아야 되는 거지 그 열을 열심히 지키면 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 열을 열심히 지켜서 욕먹은게 바리세인 유대인들이였잖아요 그러니까 그 열이 꽉 채워져 있어야 그래야 그걸 우리가 이게 진짜 그 진리 그 악 앞에 그 은혜 그 사랑이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깨달아 먹는데 거기에서 하나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요 그럼 미완성이에요 그건 반드시 찾아와야되 찾아다가 열로 맞춰놔야 되요

당시에 신랑이요 신부에게 주는 빙패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드라크마가 큰돈 아닙니다 드라크마 열개를 줄에 꿰어서 목걸이로 준 거 였어요 이거는 너는 내꺼야 너는 내 신부야라는 징표였기 때문에 신부가 그걸 잃어버리면 안되요 근데 그거 하나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요 그건 나머지 아홉 드라크마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거에요 완성이 아니래니깐요 그래서 그 여자가 그 별루 별거 안되는 그 돈을 등불을 켜고 빗자루를 들어 찾은 거에요 그거 없으면 안되니까 반드시 열로 채워져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 찾았습니다 그래서 열로 완성을 했어요 그러더니 주님이 또 뭐라 그러냐면 이게 회개다 그래요 또 그럼 회개는 뭡니까 주님께서 잃어버려진 어떤 것을 주님이 찾아 그 완성에 자리로 끼워 넣는걸 회개라 그래요 그럼 역시 그 회개의 주도권은 주체는 누구에요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게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요 그러면 그 이야기도 역시 회개에 이야기겠죠 그렇다면 그 잃어버린 탕자가 스스로 돌아오는게 맞아요 아니면 아버지가 그를 내보낸 다음에 니가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고 나에게 돌아오너라라고 의도적으로 그를 내보낸게 되어야 됩니까 성경은 항상 문맥을 따라보셔야 되는 겁니다 그냥 여러분이 뚝뚝 끊어서 여러분이 그냥 큐티하듯 오늘은 여기 한다섯절만 읽을까 그래놓고 요기에서 나에게 주는 교훈은 뭘까 그거는 차라리 일간 스포츠의 오늘의 운세를 보는게 나아요 성경은 그렇게 읽는게 아니라니깐요 성경 전체는 일관성 있게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성경 전체에 저자는 성령이며 그 전체는 한권인 거에요

그래서 마지막 요한묵시록에 가면 그 성경을 한 권으로 읽지 않고 여러권으로 읽는 자는 반드시 심판이다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니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도대체 이것이 그 하나를 이야기하기 위해 왜 여기게 끼어 있으며 그 책은 왜 이자리에 있으며 그 책 안에 이 장절은 왜 꼭 여기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가 아니 성경이 이야기하잖아요 성경의 편집자는 성령이라고 그러면 성령이 아무렇게나 막 편집하지는 않았을거 아닙니까 그쵸 그러니까 그걸 반드시 아셔야 되는거에요 그럴러면 문맥을 반드시 그 흐름을 아셔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공부를 하는 거에요

여러분이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소원을 이루며 살 수 있을까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 안에서 진리를 배우고 그 예수를 배워야 되는 것이지 그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절대로 여러분에 처세술이나 아니면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은 다른 사람에 존경을 받는 도덕적 윤리적 인간으로 살 수 있을까를 배우는 것이 교회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거는 요즘 뭐 티비에 나오는 그 무슨 헤민이니뭐니 하는 그런 중들 맨토들이라고 자처하는 그 사람들에 얘기를 들어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거니까 성당에 와서는 그런 얘길 듣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두 아들 그 탕자와 맏아들의 그 이야기는 도대체 왜 그 앞에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드라크마의 비유와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반드시 생각을 해보셔야 될거 아닙니까 무조건 성당에 소원 빌러 오고 내 앞일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어려운 일들을 없이 해주시고 승진하게 해주시고 이런거 빌러 온거 아닐거 아닙니까 그런가 부네 표정들이 어 그런거 같는데 아 그러면 절에를 가지 뭐하러 여기를 와요 거기는 해준대니깐요 진짜로 밥도 맛있고 ~

잃어버린 탕자의 비유는 바로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인 거에요 앞에서도 다 잃어버린 이야기죠 지금 두 아들을 전 인류를 하느님은 둘로 봐요 로마서에 나오는 내가 뱃속에서 부터 그들이 나지 아니하였을 때 이미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결정했다고 한 그 두사람 그게 맏아들과 탕자의 이야기에요

그런데 탕자가 뭐라 그러냐하면 아버지 내껄 미리 주세요 내가 나가서 내 유익을 위해 한번 그걸 사용해 보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한다구요 갖고 나갑니다 나가서 그냥 열심히 그 돈을 허비해요 허랑방탕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건 허비란 뜻이에요 허비하는데 어떻게 허비하냐면 그가 허비를 하고 깨닫는게 뭐냐하면 눈을 떠보니까 자기가 그걸 허비하고 있는 그 세상이 돼지우리야 돼지라는건 히브리 사람들이 가장 부정한 짐승으로 여겼던 거에요 그래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인을 조롱하고 모욕하기 위해서 그들에 성전을 장악한 다음에 되지를 잡아 제단에서 제사를 지냈다니깐요 그러니까 돼지는 가장 부정한 짐승에 대표인 거에요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이 내가 내 유익을 위해 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내 자아를 구축하기 위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돼지우리라는 거에요 깨닫고 나니까 그리고 자기가 열심히 다른 돼지들과 함께 아귀다툼하면서 얻어 낼려고 하는게 주염열매네 적어도 성도라는 여러분은 그정도 인식은 이미 하셨어야 되는 거에요 그렇다면 보세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아귀다툼하며 모을려고 하는 이것은 돼지가 먹는 부정한 것들이 먹는 부정한 거라면 그럼 내 양식은 진짜 내 양식은 어디있지 생각을 해야죠 그 탕자가 어디있다 그러요 우리 아버지집에 그건 있어 거기서는 종들도 그거 먹어 나는 거기가야되 라고 깨닫게 되는 걸 회개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돌아갑니다 아버지가 맨발로 버선발로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거에요 그리고는 알았니 아들이 니가 내려가서 너에 유익을 위해 니 자원과 니 열심과 노력으로 구축할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런거라는걸 니가 알았니 그럼 넌 내 아들이야 라고 하는게 구원인 거에요

그런데 맏아들은 아버지 내가 아버지 말을 어긴 적이 있습니까 나는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다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아버지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금식도 자주했고 헌금도 열심히 했고 예배도 안빠졌습니다 난 아버지의 말을 지키기 위해 술도 끊었고 다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 왜 나에게는 제한테 준 그거를 안줍니까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건 뭐죠 내가 하는 만큼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보상을 해줘야 된다라는 그게 뭐에요 그걸 율법주의라 그래요 차등 상급론이라고 하는데 그건 은혜가 아니죠

은혜라는게 뭡니까 은혜라는 단어 캐리스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단어냐면 내가 받을 자격도 없고 갚을 능력도 없는데 그냥 무작정 나를 찾아오시더니 이리스터블 그레이스 불가 항력적 은혜로 나에게 줘버려 뚫고 들어와 버려 그리고는 이게 너를 살리는거야 라고 가르쳐 줘요 그런데 아무리 그 어떤 것으로도 내가 갚을게 없네 그때 그걸 은혜라 그래요 그런데 그 은혜를 그러면 우리는 이제 찬송하게 되겠죠 그게 에페소서 1장 아닙니까?

인생의 목적이 뭐에요 그 은혜를 찬송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내가 이마만큼 하면 하느님이 나에게 이마만큼 보상해 주겠지라는 그리로 수시로 떨어진다니깐요 그걸 율법주의라 그래요 그게 유대인이였어요 그게 바리세인이였어요 하느님이 아들아 이 아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가서 다나토스 죽었다가 살아서 나에게 온 아들이야 이가 이들이란다. 너는여전히 내 앞에서 시퍼렇게 살아있구나 그걸 바리세인과 율사로 비유하시는 거에요 그게 15 루가복음 151절부터 32절 마지막까지의 논지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여러분이 울고 불고 한다고 되어지는게 아니에요 그리고 나가면서 똑같은 일 또 해본 경험있죠 그걸 회개라고 합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솔직히 한번 스스로에게 대답해 보세요 여러분이 이 추운데 이 산꼭데기 까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여기 와가지고 지금 이렇게 열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한테 대답하지 마세요 뭐하러 오셨습니까 여기,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분이 계시다면 혹시 거기가면 이게 해결되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어떤 희망 소원 그래 이렇게 열심을 부리면 하느님이 혹시 나를 기특하게 여겨 하느님께서 그걸 이루게 해주지 않을까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거 성경에 있어요? 이런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교회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70프로가 그거 성경에 있는말이죠 그랬단 말이에요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은혜라는 말과 반대말인 거에요 그건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결핍을 느끼고 있는거 그리고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원인이 대부분 뭐냐면 이 소유에 문제에요 그죠 아 그것만 있으면 그것만 해결되면 취직만 되면 지금 이 빚만 해결되면 어려운 상황만 넘기면 이게 다 어디에 관한 문제냐면 나의 존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 소유에 문제라니깐요 그러면 요것만 해결되면 진짜 여러분은 평생 죽을때 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곧 또 다시 여러분에게 어떤 모양으로든 결핍이 찾아와요

인간은 소유에 문제로 힘들어하는게 아니라 사실은이 존재에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는 거에요 우리에 결핍은 우리가 이렇게 공허하고 이렇게 외롭고 고통스럽고 하는 모든 건 나에 어떤 소유에 문제 그리고 나에 어떤 건강에 문제 이런것이 아니라 이 존재에 문제인 거에요 모든 인간들이 이 땅에 나오면서 생래적으로 갖고 나오는 그 공허 그걸 존재에 결핍이라 그래요 그래서 모든 인간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종교라는걸 만드는 거에요 왜 어떤 것으로도 이게 채워지지가 않아 아니 우리가 생각할 때 그 많은 재산을 갖고 그렇게 인기가 있는 그런 유명인들이 자살을 하는거 보면 이해가 안가지 않아요 아니 도대체 왜 그걸 갖고 나는 그거에 10분의 1만 있어도 그냥 잘살수있을거 같은데 왜 그 많은걸 갖고 무슨 뭐 무슨 우유주사니 무슨 프로포플이니 왜 그런게 필요하며 왜 그것도 안들어서 결국 목을 매다는냐 말이에요 다 가졌는데 그렇다고 뭐 얼굴이 못생겨 아니 너무나 다 멋지게 생겼어 그리고 다 건강해 그런데 왜 그들이 목을 매달아요 이 존재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서 그래요

이 존재의 결핍은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인간들은요 원래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지어진거라 그랬죠 하느님이 그 반쪽으로 붙어 있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서 창세기 여섯째날 하느님이 사람을 만드시는데 야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놓고는 단수입니다 아담 사람을 만들자 그래놓고는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그래요 그 남자가 자칼이고 여자가 네케바에요 그럼 자칼과 네케바가 하나가 되어 요렇게 하나가 되어야 사람이란 뜻이에요 그게 비로소 산 존재라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성경에서 항상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이신 씨를 줄 수 있는 씨를 가지고 있는 그 하느님 그 진리에 본체이신 그 하느님을 남편 신랑 남자라 부르고 그 씨를 받아 그 남자와 부모를 떠나 하나가 되어 그 남자와 한몸이되어 사람이 되는 그 나머지 모든 피조물을 여자라 그래요 그래서 성경에서 항상 어린 양을 신랑이라고 하고 교회인 우리를 신부라고 하는 거에요 여자라고 하는 거에요 성경에 나오는 성별있죠 남녀 이런거는 다 생물학적 분류인 남자 여자가 아니에요 그런 말은 단 한구절도 없어요 전부 하느님과 교회에 관한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 하느님 남자와 그 여자는 반드시 하나가 되야 비로소 존재여야 되는데 모든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날때 그 하느님을 상실한 존재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하느님이 그렇게 조처를 하신 거라니깐요 왜 내 아들들아 내가 없이 너희들에 이 능력과 지혜와 열심과 노력을 갖고 크로노스의 역사속으로 내려가서 너희들이 너희의 것을 니들이 최고로 좋은거 그게 바로 구원이며 그게 바로 아방궁이며 그게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그걸 니들 힘으로 만들어보래는 것입니다 그랬을때 니들이 정말 만족하고 거기서 살 수 있으면 내가 그거 주겠다는 뜻입니다 내 사랑하는 새끼들이니까

그런데 이 땅에 내려온 인간들이 그 수천년을 열심히 노력해서 이것만 가지면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어 이것만 가지면 만족할 수 있어 라고 생산해 넨 그것들이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공허 속으로 집어넣어 죽게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존재의 결핍은 무엇으로만 채워져야 되는 거에요 그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되는 거에요 자 여기서 그래요 나는 내가 쫄딱 망한다 할지라도 아니 내몸에 지금보다 더 심한 병이 든다 할지라도 그 하느님만 내 마음에 내 신랑으로 갖게 된다면 난 오케이 하느님 내 인생 맘대로 하세요 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망해도 좋다하고 올라온 사람 많겠죠 하하하 그걸 신앙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우리는 그 하느님에 나라로 가는 거지 여러분이 원하는걸 이 호코스모스의 역사속에서 얻어내는게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렇게 오해되기 시작한건 뭐 근자의 일이 아니에요 아에 그 그리스도교가 뭐에요 크라이스트죠 그럼 주님이 이땅에 오셨을 그때부터 그리스도교라는 거는 우리에게 이제 나타난 모양으로 주어진건데 그 전에도 물론 그 하느님에 백성들과 하느님이 계셨죠

그런데 그 역사 전체 하느님이 인간과 상관을 하기 시작하고 상관을 하시는 그 역사 전체 그 전체에 그 그리스도교에 대한 오해는 늘 있어 왔어요 그걸 샤머니즘이라 그래요 여러분 무속신앙이라 그래요 그래서 모든 종교가 다 그 틀을 갖고 있어요

인간들은요 이게 존재의 결핍 저거를 뭐 신학에서는 신인식이라 그래요 내가 태어나긴 태어났는데 나보다 굉장히 어떤 큰 힘을 갖고 있는 어떤 존재가 분명히 있을거 같은 거에요 그리고 그 분에 도움을 받으면 내가 지금처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 같애 그리고 이 공허속에서 이 심심함 속에서 이 권태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 같애 요걸 신인식이라고 하거든요 고런 신인식은 반드시 그 신에 대한 섬김을 잉태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신에게 뭔가 부탁을 하고 싶어... 그게 신이어도 좋고 뭐도 좋아 하여튼 그러니까 뭐 성황당 앞에가서도 빌고 바위앞에서도 빌고 뭐 강 앞에서도 빌고 심지어 개구리 앞에서도 빌고 다 신이야 그죠 범신론이 그거 아닙니까 어디에 있던 하나만 걸리래는 거죠 그래서 나의 유익에 도움이되달래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비는데 아니 나는 그 존재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떤 고 때마다 어떤 이들이 나타나는데 그 존재와 굉장히 나보다는 더 친할거 같은 존재들이 나타나요. 우기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들을 중재자로 세워요

그리고는 그들에게 부탁합니다... 내가 사실 이러이러한 소원이 있어요 그리고 이러이러한 것을 해결받길 원해요 그런데 내 힘으로는 안되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보다는 뭐 신학교도 졸업했다 그러고 뭐 신을 연륜도 깊다고 하니까 나보다는 친할거 아니야 그러니까 당신이 내 말을 내가 섭섭치 않게 복채는줄께 내 말을 저분에게 좀 전해줘 그래서 그이에게 그 응답을 받아 나에게 전해주세요 라고 중간에 세우는 인물들을 샤먼 무당이라 그래요 그런데 이게 모든 존재들에 그 존재에 결핍 그 신인식에서 나오는 거기 때문에 모든 종교라는 것 심지어 고등종교라는것도 다 저 틀에 먹히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주인공은 항상 누구냐면 나래니깐요 나 ...그 하느님이 아니라 나의 문제 나의 소원해결 나에요 나 그러면 보세요 이 샤머니즘에 이 틀에 모든 종교들이 먹힌다고 했는데 그래서 저 아프리카 오지나 아마존 오지에 가도 다 제사 지내죠 그거 도대체 누가 가르쳐 줬을까 전부 또 갈라 그걸요 피를 낸다니깐요 그 레위기에 나오는 그걸 그대로들 하고 있어요

샤머니즘은 인간 보편에 그 그들에 본질적 그 마음을 가리키는 거에요 인간들은 항상 자기를 위해 선택하고 자기를 위해 결정하고 자기를 위해 애쓰게 되어 있어요 아닌데요 나는 이렇게 희생하여 가족들을 위해 살고 있는데요.... 아니요 잘 생각해 보세요 그거라도 안하면 더 결과가 악해질까봐 그걸 하는 거에요 역시 따지고 들어가보면 다 나를 위해 결정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그 종교에 주체가 나가 되어 버리면 그걸 성경은 멸망이라 그래

한번 보세요 불교라는게 뭡니까 불교라는건 저기 그 참 진리 그 참 진리 라는게 있는데 그 참진리 그건 신이라고도 할 수 없고 하여튼 뭐라고도 할 수 없어 그런데 참진리가 있어요 부라만 부라마 부라만 뭐 이렇게부르는데 그런데 그것들이 그 진리가 이렇게 뒤에서 어떤 것을 확 비치면 그림자 같은게 투영되어 프로젝션 돼죠 앞으로 요 나타난 현상들이라는건 ,,,,,전부 그 진리가 그 부라만이 이렇게 투영되어.... 헛것으로 이렇게 그림자로 나타난 거야 그래서 공허를 이야기하죠

그래서 나타난 색 이건 즉 시공인거야 라고 이야기하고 그래 그 공이 바로 이 색으로 나타난거야 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이야기한다 말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 진짜 참 불교에 지양점은 뭐가 되야 되냐면 그래 이 나타난건 이건 헛것 허상이니까 여기에서 빨리 깨달음을 얻어서 우리가 그 진짜 부라만의 실체 그리로 돌아가야지 요거를 열반이라 그래요 안그러고 계속 이 색의 세계에 묶여 있으면그걸 윤회라고 한다 말이에요 계속 돌고 돌아 왜 그들은 깨달음이 없어서 자기들에 행위에 의해 그게 업보가 되고 그것이 어떤 자기들에 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에서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소로도 태어났다가 개로도 태어났다가 나중엔 벌레로도 태어났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그런대는 거에요

아니 세상에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는게 제일 불행한 거라고 생각해요 차라리 우리집에 강아지가 한마리 있는데 나는 게가 너무 부러워.... 이렇게 생각하고 고뇌하고 뭔가를 희망하고 그걸로 외로워하고 이게 얼마나 큰고통인지 아세요 사람은 나지 않는게 제일 좋은 거에요 성경도 그런다니깐요 근데 났는데 어떡하냐 났으니 진리를 깨닫고 천국가라 그런다라구요 그러니까 함부로 그들에게 진리도 가르쳐줄 능력도 없는데 함부로 애 낳고 그러지 말아요 그건 악한 거래니까 놔 놓고 게들한테 맽겨버리면 어떡하냐구 그거를

아니 여러분 진짜 한번 그냥 우리끼리 얘기니까 솔직해 지잔 말이에요 삶이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애들은 애들대로 어렵고 어른은 어른대로 어럽대니깐요 그리고 저마다 자기 고민이 제일 커 그런데 진리를 깨닫고 난 그 인간은 그때부터 이 색에 세계에 안묶이게 되어 있어요 그때는 정말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그 진리를 깨닫게 만들어 준 그 하느님이 너무 감사하지 왜 하느님과 방불한 그 삶을 나에게 약속했으니깐요

아닌 사람은 안나은게 좋은 거라니깐요 주님도 말씀하셨어요 니가 나지 않았으면 좋을뻔했다 왜 너무 가난해서 너무 아파서 아니요 니가 나를 못알아 보잖아 ....근데 그 주님을 알아보는거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내 소원만 해결되고 내 소원만 들어주면 된다라는게 이게 그리스도교가 되어 버렸대니깐요

불교가 그 샤머니즘에게 먹히면 어떻게 되냐면 불교는 그 색에 세상에서 벗어나는게 지향점이라 그랬습니다 불교의 교리에요 그것이요 근데 오늘날 절에 한번 가보세요 전부 소원 빌러 오지 이 땅과 아무런 무관한 자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비는 사람 한사람이라도 보셨어요 그걸 위해 만배씩 하는 사람 보셨어요 아파트 재개발되서 한 두배로 올라가게 해주세요하고 만배하는 사람 많이 봤어 그런데 그것과 무관하게 나는 그 진리로 합일하게 해주세요라고 만배하는 사람 한명도 못봤어요

그리고 그 어떤 존재 불교는 그러니까 부처가 되는거지 부처에게 비는 종교가 아니잖아요 그 석가모니가 죽으면서 그랬다니까 제자들이 아이구 스승님 이제 스승님 돌아가시면 어떡합니까 막 그러고 인사말로 했겠지만 석가모니가 죽으면서 한말이 뭐냐하면 야 이놈들아 부처는 니 마음에 있는거지 니 밖에 어디서찾어... 나도 니들의 부처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 부처를 신으로 삼아 그걸 상으로 만들어 놓기 까지 했어요 그리곤 거기에다가 절하고 빌어요 그리고 그게 매일 가서 할 순 없으니까 복채를 좀 내고 샤먼을 하나 세워요 스 들을 스님 그들을 신부님이라고 안그러니까 나도 그냥 스라고 그럴라 그래 스들을 세워서 빌어달라고 복채주고 연등도 팔아먹고 기와장도 팔아먹고 왜 거기다가 전부 소원 적는 거에요 그걸 불교라고 합니까 그리고 칠성각 삼성각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죠 왜 거기는 소원 비는데 그건 원래 절에는 그게 없었던 거에요 그런데 진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그곳에는 사람 별로 없어요 정막합니다. 그러면 불교는 지금 이름만 남아있는 거지 내용은 사라져 버린 거에요 그냥 무당 잡교가 된겁니다

유교는 유교는 뭐에요 인 의 예 지 신 충 효 야 이런것만 회복하면 인간세상은 얼마든지 지상 낙원이 될 수 있어가 공자 맹자의 유교 아닙니까? 그래서 제사도 드리는 거에요 돌아가셨다고 우리가 그 충과그 효를 멈출소냐 잊지 말자 제사 지내는 거에요 충과 효에 일환으로 그러나 그것이 무당잡교에게 무속신앙에게 먹히면 거기도 샤먼이등장합니다 항상 제사를 집전하는 어떤 사람이 있어야 되고 그 제사는 내가 조상신에게 복을 받기 위한 방법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제사 안지내러 가면은 옛날엔 막 뚜들겨 맞고 그랬습니다.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해꼬지 당한다고 그래서 맏며느리들 있잖아요 종가집 맏며느리들 막 30번씩 제사를 지내는데 그 제사 죽은 사람 제사 지내느라고 산 사람이 거의 죽었어요 복받아야 되거든 그러니까 무덤을 써 놓고 진짜 좋은 돈좀 있는 사람들 좋은 명당자리가 났다 그러잖아요 그거 다 속는 거에요 지관들이 인제 뭐 야 여기서 대통령이 날 자리다 하고 여기 한 30억에 사라 그러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낼름 고 아버지 무덤 파다가 고리로 옮겨요 그런데 더 좋은 자리 나타났다 그러면 또 옮겨 그러다가 뼉다귀 한 30개씩 잊어 버려 그러던지 말던지 아버지 시신이 훼손되던 말던지 너덜너덜되던지 말던지 계속 옮겨 유교를 공부한 사람들이요 왜 우리 후손 내가 역사속에서 복받기 위해서 에요 그걸 효도라고 합니까 유교는 없어진 거에요

자 그리스도교는요 뭡니까 여러분 우리는 죄인이다 날때부터 죄인이다 하느님의 은혜 그 성령이 아니면 존재일수도 없다 이걸 깨달아 그 하느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생명을 찬송하며 사는게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무속신앙에게 먹히면 또 여기도 중간에 샤먼이 하나 서요 .목사가 스 죠 ... 그리고 그에게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다고 스스로들 맫겨 그래야 안심이 되요 놀아도 나보다는 더 친해야 내가 뭘 부탁이래도 할거 아니냐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그냥 막 광선을 쏘아 엉 치료도 해주고 소원도 들어주고 심지어 저주를 해버리면 막 저거 3대가 저주받으리라 그러면 3대가 진짜 재수없어가지고 사먼으로 목사를 세운 다음에 복채를 듬뿍 드리고 당신에 그 하느님에게 이걸 좀 말해달라고 부탁해요 그러면 여기선 그걸 받아 하느님에게 뭐 중보기도라고 하면서 같이 해주면서 받았다하고 전해주고 거래를 하는 거죠 서로 서로 기도해주는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알고 하재는 거에요

그러니까 뭐 어디 사업을 개업을 한다던가 뭐 집을 이사를 간다던가 그러면 그 샤먼을 꼭 불러야 돼 왜 혹시 잡귀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양반이 와서 그 하느님과 그 힘쎈 그 하느님과 이야기를 하여 나를 좀 소개를 이렇게 잘 해주면 이 업장이 잘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개업예배라는 걸 드린다구요 예배는 드려야죠 뭘 하던 그런데 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겁니까 우리가요 사업을 시작했어요 뭔가를 지금 하느님이 허락하신 어떤 걸 시작하는 그 지점에서 왜 예배를 드러요 우리가요

하느님 이것은 하느님이 나에게 그 진리 그 복음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하느님은 나에게 주시는 것이므로 하느님은 내가 이것으로 잘 배워 하느님을 더욱더 사랑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 하느님을 더욱더 찬송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라는 의미에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드리는걸 프로스코네오 예배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망했어 그래서 야 큰일날뻔 했구나 내가 이 세상에 이 돈이나 아니면 이러한 이런 직장이나 이런 것들이 나를 진짜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주는 걸로 끝까지 알고 이것을 의지하면서 그렇게 끝까지 살았으면 어떡할뻔 했는가

이렇게 풀의 꽃처럼 그냥 한방에 날라갈 수도 있는건데 내가 큰일날뻔 했구나 하고 배웠어요 그런데 쫄딱 망했어 그러나 그 하느님과 한발짝 더 깊은 그 교재의 장 소통의 장을 만들 수 있었다면 성공이네요 그럼 망한 다음에도 그 자리에서 더 기쁘게 예배를 드렸어야죠

개업할때 드렸던 예배의 의미가그거였다면 그런데 대부분 망한 다음에는 하느님을 원망이나 하지 그리고 기도원에 와서 그냥 악악 대면서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이럴수 있냐 이러지 예배 드리는 사람 별로 못봤어요 그렇다면 고 개업식때 드렸던 예배는 왜 드렸단 얘기에요 굿한 거에요 목사 돼지 머리 삼아 아닙니까 잡귀 물러가게 해주고 내 소원을 그 존재에게 아뢰줘가 샤머니즘이라 그랬잖아요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이름이 불려지는 곳에서 그분에 이름을 모독한다니깐요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그딴거 줄려고 오신 분이 아니에요 생명 주러 왔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상황에 던져저 있다 할 지라도 아니 그 하느님을 찬송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성숙한 신앙인이지 자기가 원하는걸 들어주지 않으면 그냥 악악거리면서 삿대질하고 욕하고 심지어 그냥 이거 끝까지 안들어주면 밥 안먹어 7일동안 안먹었는데 안들어줘 40일 안먹어 아니 애들이 자전거 사줘요 그래서 안사주면 그럼 나 밥 안먹어 이거랑 뭐가 달라요

그런데 우리는그걸 열심있는 그리스도교라 한다니까 아니 모든 종교에서 그건 다 하고 있는 거에요 이슬람교에도 라마단 금식이 있고 불교인들에게도 동안거 하안거 금식이 있고 다 있어요 그런 열심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도대체 우리가 그걸 왜 하는지를 잘 배워야죠

금식이란건 하느님 진짜 양식은 거기에 있는 그거죠 내가 이 땅에서 이 나에 육을 살찌우고 내 육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이러한 곡기 이걸로 사는겁니까 아니죠 하느님 그게 양식이죠 라는 걸 내가 알았을 때 진짜 고백해 보는거 그건 올바른 금식이에요 근대 내가 밥 안먹을테니까 내가 원하는거 반드시 이뤄내야되 이거는 내가 하느님을 종삼아 사는 거에요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그러니까 하느님이 그러는 거에요 내가 다시 이 땅에 올때 내가 믿음을 홀리고스 보겠느냐 거의 없다 그랬어요 하느님이요 예수 믿는 자들은 많은데 믿음이 없네 이렇게 말씀하셨다니깐요 예수님 당시에도 전부 하느님 섬기던 자들이였잖아요 그들이 무슨 이슬람 교인이였습니까 불교인이였습니까 다 하느님 목숨걸어 섬긴다고 하는 그들이 단 한사람도 그 하느님을 못알아 봤단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그냥 다른 종교와 별반 다를바 없이 내가 그냥 열심을 부려 나의 유익을 챙기고 나의 만족을 챙기는 그런 무당잡교가 되버린 거에요 그 하느님을 진짜 아시냐구요 그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울어 보신적 있냐 말입니다 그래서 내 삶은 하느님이 어떻게 운행해 가시던 하느님 당신것이니까 당신에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내 뜻이 당신에게 관철되는게 아니라 당신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게 순교의 자릴지라도 내가 감수하겠습니다라는 이 신앙고백을 해 봤냐 말입니다 아니면 그리스도교인 아닌거에요 아직그 예수 모르는 겁니다

그냥 그 능력있다는 그 하느님 앞에서 있는 거는 같기는 한데 나보다 힘이 강한거 같으니까 내 뜻이 있지만 아휴 그래 또 괜히 잘못보여서 해꼬지 하면 어떻게 해갖고 주일성수도 해주고 십일조도 해주고 하는건 하느님이라는 존재 앞에서 쫄은거지 믿음이라고 안그래요 안그래요 그분앞에 쫄은거지 그게 그걸 무슨 믿음이라 그래요

여러분 그분은 유일한 신이십니다 신이 인간과 소통을 하기 위한 신에 자리에서 내려와야 되요 그걸 신에 죽음이라고 한다 말입니다 신이 피조물과 비교하여 신이기 위해선 피조물이 그 신을 인식 못해야 신인 거에요 그런데 신이 내가 너희들에 친구가 되겠다고 벗이 되겠다고 이 땅에 내려오는거 자체가 신의 죽음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까지 하여.... 우리와 벗이 되겠다고... 아니 남자와 여자 신랑과 신부 한 몸이 되겠다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신 그 하느님 그 하느님 앞에서 쫄으라고 우리에게 이런 역사와 인생을 허락해준 거냐구요 내가 너 나한테 더 정성 바치지 않으면 내가 그거보다 더 해롭게 만들어 버릴거야 이게 신앙입니까 이게 하느님입니까 도대체가 그걸 무슨 사랑이라 그래요

알고 믿재니깐요 여러분 그 하느님을 해결사 정도로 폄하하거나 격하시키지 말라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그 하느님에 말씀을 잘 배워야 되요잘 배워야 되요 아이 오죽하면은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이런 사람들이 다 갖고 놀아 왜 이 강론대 에서는 들어본적이 없는 이야기를 그들은 해주거든요 그러니까 맞는거 같애 나는 배워본 적이 없어 그런데 여기서 말씀 전하는 이들에게만 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걸 원했던 거 아닙니가?

복잡한 거 필요없으니까 내가 듣기 좋은 이야기 내 나에게 위로되는 이야기만 해줘 그리고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하면 존경받을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런 이야기만 해줘 그럼 내가 편안하게 그것도 30분 이내로 그러니까 비유 몇가지 갖고 와가지고 당신 나랑 성경공부 할래요 들어보세요 사실은요 이게 이거 였구요 이게 이거였답니다 보세요 찾아드릴까요 구약에서 막 찾아주고 그러면은 신기해가지고 어머나 성경이 이런 거였어요

저한테도 몇번 찾아왔어요 그래서 감히... 앉아라 .앉아서 얘기하자. 당신이 지금 여기에서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 최고냐 최고래 그럼 나랑 얘기하자. 아니라 그러면 화날뻔 했어요 어디 하빠리가 와가지고 앉아가지고 애기하는데 그래 공부는 열심히 했어요

여기 신학생들 강도사 전도사들 많은데 똑바로 들으시란 말이에요 공부를 하시라고 공부를... 그들이 이야기하는 바 그래요 책 몇권 읽으면 다 알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거 조차도 못갖고 있다니까 이 시대 교인들이란 사람들이요 그러니까 그런 말 몇마디 해주고 사실은요 이 세상에 이 그리스도교들 이거 목사들 다 가짜에요 우리가 진짜에요 이만희가 진짜고 어쩌구 저쩌구 한다고 예 이거 또 거기서 온분들 너무 역정내지 마세요 회개하고 구원받으세요 물어보니까 그걸 그 사랑과 그 진리 그 은혜로 절대 이들은 연결을 못시켜요

여러분이 제대로 말씀 위에 못서잖아요 아무나 와서 여러분 휘둘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니까 공부 안해도 돼 그냥 사람 몇몇 좋은 예화 들어서 좀 울려주고 조금 선동해서 열심부리게 해주면 돌아가는데 뭐아니 많아져 사람이 오히려 더 그래서 그 중에 그냥 수천명 중에 한 사람 두 사람 우연히 어떻게 병이라도 나으면 그냥 용하다 소문나서 더 커져 그러다 죽습니다 그 생명이 뭔지 모르고 이 땅에서 여러분이 부활생명이 뭔지를 깨달아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절대로그 생명에 부활로 나올 수 없어요 먼 훗날 이렇게 열심을 부리면 나중에 하느님이 나에게 주실 그런 것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걸 배우고 있냐구요 그걸 여러분이 지금 내 마음으로 갖고 있냐 말입니다

성경은 정말 진짜 제대로 공부해보면 문자 하나하나 아니 그 문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단어 하나하나 아니 그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하나하나 아니 그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 하나하나 그 책들로 이루어진 성경 전체가 다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그 하느님에 이야기 여러분은 그걸 들으셔야 되요 그걸 배우셔야 되는 거에요 그러면 이 풍랑이 이는 이 세상 이 바다가 여러분을 어쩌지 못해요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이 사건 이 환경 이 현실 이런 걸 ...내가 그 표피적인 그걸로 내가 받아 버리면 그건 나를 죽일 수 있다니깐요 철썩 아프지 이리 철썩 아프지 저리 확 밀어 고통스럽지.... 다 거기에 휘둘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있는 그 내용 아 하느님께서 바로 그 하늘에 그 선그 진리를 나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해 잠시 잠깐 경점 같다 그러죠 경점 경점같은 인생동안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긴 이 역할이며 현실이라면 오케이 여기서 그거 배우면 되지 뭐 라고 하고 그 내용으로 들어가면 여러분은 그 풍랑이 어쩌지 못하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가 되는 거라 말입니다 그렇다면 기도에 내용이 이제 조금 바뀌겠죠 찬앙의 모양이 더욱더 기쁨으로 가득찰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에 현실은 하늘백성이에요 이 인생은 잠깐 지나가는 꿈입니다. 시편 기자들이 괜히 그렇게 얘기해 준거 아니라니깐요 영원이라는 그거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거기 그거에 비하면 이 잠깐 지나가는 이 인생,

아니 보세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금방 늙으리라고 누가 상상했냐고 아이 도대체 내 눈 밑에 이 주름이 언제 이렇게 생긴건지 아니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에 우리 아버지가 계셔 내 나이 아직 열여덟인데... 30년이 후딱 지나갔어 고렇게 눈한번 깜짝하면 또 그 지점에 가있을 텐데 그러면 .....고기서 깨면 그걸 꿈이라고 해요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서 꿈이잖아요 우리 현실에 이게 영원히 지속되는 거에요 아니죠 그래서 성경이 이걸 꿈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러면 꿈속에서 여러분 가끔 생각나는 꿈들 꿀때 있잖아요 때로는 멋진 역할을 맡을때도 있고 때로는 무슨 뭐 범인이 되어서 쫓길때 키클때에 쫓기다가 벼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그 역할이 여러분이 꿈에서 깼을때도 그렇게 불쾌합니까 아휴 꿈이였구나 여러분이 이 꿈은곧 깬다니깐요 그러면 그 때에 야 이게 진짜 현실인데 야 이게 그걸 내가 진짜 현실인줄 착각하고 거기에 목매달고 살았네 와 이게진짜 내 삶이야 라고 더욱더 기뻐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서 악몽을 많이 꾼 자에요

안그래요 어떨때 그럴때 있잖아요 제발 이 꿈인줄도 알어 꿈꾸면서 이 꿈이 깨지 않기를 어 꿈속에서 첫사랑을 만났어 남자들 아니 이게 왠 일이야 몇년 만이야 그런데 꿈이야 꿈같애 어 이거 깨면 안되는데 그리고 깨면 허탈하죠 여러분은 여기가 너무 살기 좋으면 안되요

그렇다고 뭐 일부러 자해를 하고 자학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이 절대 그렇게 편안하게 안 끌고 가세요 그때 그 하느님 원망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그리고 늘 성경에 목말라 하시고 그 말씀에 목말라 하시면서 여러분들의 신부님들에게 자꾸 물으세요 그래야 공부해요 혹시 출교당할지도 모르는데 허허 자꾸 그냥 귀찮게 그런다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한 신부 한 교회 살리는 거에요 아무렇게나 해도 전부 아맨 할 준비하고 가 있으면 진짜 여기서 아무렇게나 한다니까

그럴 때 눈 똑바로 뜨고 맨 앞에 앉아서 처다봐요 이렇게 무슨 말하나 그리고 아니면은 아 아닌데 하고 신호도 주고 그래서 눈이 설교할 때 움찍움찔 해야되 이게 내가 이게 진짜 맞는 말인가 스무번 서른번 확인하고 확인해서가야지 왜 영원한 생명에 관한 문제인데 어떻게 아무말이나 하냐구요 어떻게 맨날 선거얘기나 하고 정치 얘기나 하고 신문에서 본 얘기나 하고 영화본 얘기나 하냐구요 여기서요

하느님 말씀을 해줘야지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여러분이 그 불같은 으로 처다보고 있어야 예수 이야기 해줄거 아닙니까 여러분이 살아나는건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른 열심 말하는거 아니에요

바로 그 진리에 대한 열정 그 열심 하느님이 여러분 안에 성령으로 들어가 계시면 그건 당연히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어 있어요 그걸 매타노이아회개라 그래요 그러니까 감사하며 찬송하며 나를 회개케 해준 그 아버지 앞에 이렇게 면목 없이 돼지 우리에서 살다간 나에게 그 장자의상징인 반지를 덥썩 끼워주며 그래 잘했다 내 아들아 잘알았다 그거 잘 배우고 왔네 그 돼지우리에서 그 칭찬 받아야죠 근데 이 돼지우리에서 어떡하면은 멋진 돼지가 될까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게 무슨 그리스도교 인이라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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