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완 신부의 신앙 이야기 <5>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2019. 1. 23. 오전 6: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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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완 신부의 신앙 이야기 <5>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삶

고대사회에는 참 많은 신이 있었다. 제우스, 오시리스, 마르둑, 밀곰, 바알, 아스타르테….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어떤 신도 섬기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섬기던 신과 다른 신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신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신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을 통해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신은 다른 국가의 신들과는 아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가난하고 억울한 자들의 신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통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3, 7).”

고통받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는 분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다른 국가의 많은 신들은 그 나라의 왕권을 지탱하고 지켜주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권력자들의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들은 그 나라가 멸망함에 따라 이름도 사라졌다. 그러나 가난하고 억눌린 이를 보살펴주시는 이스라엘의 신은 그 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없어지지 않고, 국가로서 주권을 잃어버렸지만 하느님을 믿는 민족공동체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살펴주셨다. 나라를 잃은 그들이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하느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도 버림받은 모습으로 시작하셨고, 언제나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의 벗으로 사셨으며, 그들을 보살피다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삶 안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구원해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예수님의 큰 사랑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요한1서4, 8)”고 고백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당신이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보이셨고, 역사 안에 실제로 존재하시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뿐이심을 확실하게 드러내 보이셨다고 그리스도교는 믿고 또 선포하고 있다.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배우면서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고, 그 사랑이 성장하는 만큼 하느님의 구원이 자신 안에 자라고 있음을 믿고 체험한다. 그 사랑의 삶을 향한 여정을 간다.

이 세상의 삶은 녹록지 않기에 인간은 없어질 수밖에 없는 고대의 많은 신들, 즉 권력자들의 신을 따르고 싶은 욕망을 버리기 어렵다. 사랑의 하느님보다 권력과 돈의 신을 따르게 되는데 이것을 성경에서는 우상숭배라고 부르며,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이 이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돈이 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신앙이 자라나는 만큼 우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고백하면서,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삶을 더디지만 조금씩 배우는 마음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려는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이며, 사랑의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는 사람들이다.

cpbc부산가톨릭평화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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