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성의, 예수 수난과 부활의 증거인가?|

2017. 4. 21. 오전 4: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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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의 성의, 예수 수난과 부활의 증거인가?

토리노 성의를 촬영한 필름을 전환시켰더니 

육안으로는 희미하게 보이는 

시신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이 성의가 진짜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천이라면 

성경 다음가는 예수 부활의 증거가 될 것이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요한 19,40; 20,2-7).


예수의 이콘과 흔적 가운데 토리노의 성의만큼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것도 없다. 

14세기 역사기록에도 나타나는 이 성의를  1898년 이탈리아 고고학자이자 사진가인  세콘도 피아가 촬영해 필름을 공개하자  유럽 대륙이 발칵 뒤집혔다. 

네거티브 필름에 옷이 벗겨진 한 남자의  시신 윤곽이 뚜렷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육안으로는 흐릿해서 형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분석 결과 이 남자는 신장 175㎝의 30~40대였다. 

가혹한 고문을 당한 흔적과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도 뚜렷하다. 

필름에는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이 박힌 것으로 나타났다. 

손가락이 4개만 찍혀 있는 이유는  손목에 못이 박힐 때 신경과 근육이 당겨져  엄지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접혔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양쪽 발과 옆구리에는혈흔이, 

온몸에는 찰과상과 타박상이 남아 있었다. 

찰과상 흔적은 로마제국 당시 로마 병사들이 사용한 납구슬 달린 채찍(플라그룸)과 그 모양이 일치했다. 

얼굴도 심하게 구타를 당해  양쪽 볼과 오른쪽 눈꺼풀은 부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남자의 오른쪽  갈비뼈 부근에 큰 상처자국이 있고,

 거기서 피가 많이 흐른 흔적이다.

 또 이마와 뒤통수에 생긴 상처로 미뤄 머리에 가시관을 썼을 것으로 추측됐다.


이 성의에는 여러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십자군 전쟁 때 성전기사단이 터키에서 발견해 프랑스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프랑스 브장송성당, 성전기사단의 후손 제프리 드 샤르니, 

사보이 왕가 등을 거쳐 1578년 토리노로 옮겨졌다. 

사보이 왕가 수중에 있을 때는 화재로 인해  성의 일부가 불에 타기도 했다. 


진위 논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천에 투영된 형상(시신 윤곽)과 혈흔이다. 

과학자들은 1978년 조사 결과 성의의 혈흔은 알부민과 철 성분이 있는 진짜 사람의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혈흔이 피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수직으로 매달려 있을 때 
흘린 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 성의가 십자가에서 모셔온 시신을 닦고 감싼 천이라는 것이다.
성의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신 윤곽은 '예수에게서 나간 힘'(루카 8,46) 이라는 설도 있고, 십자가 고통과 
사후열(死後熱)에 의한 화학작용 결과라는 설도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토리노 성의를 진품이라고 믿고, 이를 통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앙을  키워가고 있다. 성의는 신앙의 신비 영역에 
속한다 하더라도 최종적 판단은 어차피 과학기술이 내려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도 진위 논란을 잠재울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토리노대교구장 안토니오 발레스테르 
추기경은 공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결론에 대한 평가는 과학에 맡겨 두면서, 
교회는 신자들의 신심 대상으로 남아 있는  이 성상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확인한다. 
그 형상의 기원과 보존에 관한 문제는 아직도 대부분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기에
 계속적 조사와 연구를 필요로 한다. 

- 평화신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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