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1
성경은 진리에 말씀을 물이라고 그럽니다. 생수라고 그러죠 하느님이 진리의 말씀을 하느님은 물이다 생수다 이렇게 창세기 1장부터 얘기를 하세요 그래서 샤마임이라는 단어가 하늘이라는 단어거든요 히브리어로,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쉠이라는 단어가 관계 부사로 쓰면 거기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요 마임이라는 단어가 요게 물이란 뜻이거든요 물이 있는 거기 거기에 물이 있다. 그거를 하늘이라고 읽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그러니까 성경에 보면 뭐 이른 비 늦은 비 이슬 생수 이런 식으로 하느님에 은혜의 말씀을 물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부터 제가 물을 뿌릴 겁니다.
이렇게 뜨거워져 계신 여러분들에게 이 진리의 말씀을 물로 뿌릴텐데 여러분이 이제 조금 긴장을 하시고 들으셔야 됩니다.
이 추운데 어떤 목적으로 여기에 올라와 계신 겁니까 그러니까 뭐 가식적인 이런거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나에게 최면걸었던거 그리고 내가 스스로 조작해서 갖고 있었던 그런 어떤 형식적인 믿음 이런거 한번 다 이렇게 내려놓고 무장해제 한 다음에 우리가 이제 솔직하게 한번 이야기해보자구요
솔직히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세요 천국갈라구요? 구원받을라고 아니면 이 세상에서 복 받기 위해서 소원성취하기 위해서 아니면 액운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예수를 믿는 다는건 또 뭐에요 어떻게 믿어야 되는 거죠 그냥 내 마음속에 아 그게 이게 믿어지는 거지라고 어떤 그 확신이나 아 신념 이런 것들이 생겼을 때 그걸 믿는다라고 하나요? 근데 그런거는 가끔 흔들리기도 하죠 솔직해지잔 말이에요 우리끼리니까 그러면 그 지속적이지 않은 그것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은 구원의 확신 구원의 확신 좋아하시는데 그 구원의 확신이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나요 여러분 어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용서 때문입니다 그죠 여러분 이제 찬양도 이렇게 열심히 하셨는데 용서 용서 저기도 써 있네요 아 십자가 용서하소서 자 이 용서라는 단어에 정의부터 한번 다시 내려보자구요
용서가 뭐에요? 죄를 없이 해주는 거죠 그러면 다시 추적해 올라가서 죄는 뭡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죄 성경에서는 죄를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그 죄는 뭐에요 살인 간음 도둑질 뭐 남 미워하는거 거짓말 뭐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나요 그러면 그런 것들을 많이 줄여가면... 우리는 아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까요 하느님에게.
그러면 예수 안 믿고 그런거 잘하는 다른 종교인들 많죠 미국에는 몰몬교인들이나 아니면은 여호와의 증인들 이런 사람들은요 계약을 할 때 계약서도 안씁니다. 우리가 이단이라고 하는 그 사람들은 얼마나 착한지 미국 사람들이 계약서를 쓰지 않고도 그냥 믿어주고 돈을 줍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 거짓말 안하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들한테 진거에요 그죠 그게 죄고 그런 것들을 하느님이 없애주는 게 용서고 구원이라면 우리보다 착하게 사는 사람 훨씬 많아요
솔직히 여러분이 이렇게 예배당에 와서 열심을 부리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들도 여러분을 그렇게 봐줍니까
엄마아빠 남편 아내 자식들이 여러분이 여기에서 이렇게 하느님에게 신실하고 열심을 부리는 이 모습 그대로 여러분을 평가해 줍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여기와서는 이렇게 이렇게 열정적이고 신실하고 성실하시고 거룩한데 정작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평가를 못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그러면 도대체 예수를 믿고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되는 거에요 도대체가 그냥 슈바이쳐 같은 그런 삶을 내놓으면 아 그러면 성공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박사학위 다섯개를 버리고 아프리카에 가서 50년을 선교를 했다 말이에요 그렇게살면 하느님이 칭찬해 주실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슈바이쳐라는 사람은 뭐 여기에서 그 슈바이쳐 슈바이쳐는 의사이기 전에 신학을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슈바이쳐의 논문을 읽어 보신분도 계시겠지만 신학하신 분들 많이 계시다니까 그 양반이 쓴 논문 중에 왜 예수는 하느님에 아들이 아닌가 라는 논문이 있고 그리고 평생은 그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에 아들이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쫓아가야할 롤 모델이다라는 것을 증거하고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거든요 그래서 그분을 자유주의 신신학의 아버지라 그러죠 슈바이쳐를
그런데 어찌 된게 교회에서 그냥 그런 사람을 롤 모델 삼아 그렇게 변하면 너는 예수 잘믿는사람 이라고 이렇게 목적지를 정해주는 우수꽝 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단 말이죠 정말 그러면 되는 거에요 슈바이쳐 처럼만 변하면 하느님이 기뻐해주시냐요?
그러면 간디나 아니면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 같은 그런 분들 정말 청빈하게 청렴하게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았잖아요 장삼하나 짚신하나 끝 그러면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지점은 거긴가요 그러면 우리는 법정한테 진겁니다 적어도 그죠
그리스도교의 목적지가 뭐에요 그리고 도대체 우리가 없애야 할 죄 라는게 도대체 뭡니까 예수 안 믿고 우리 보다 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아까 이야기한 그런 것들이 죄라면 이런 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그러면 우리가 꼭 예수를 믿을 필요 있어요 그리고 성경은 너희들이 아흔 아홉개 다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아흔 아홉개가 마치 테트리스 처럼 와장창 빵점이 되는 거에요 그러면 다시 시작해요 처음부터 속으로 그렇게 있었죠 에이 설마 그래도 빵점일까? 예 빵점이에요 원문으로 보면 헬라어 원어로 보면 그건 하나도 없는거야 다시 시작해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 좋아요 지금부터 예수를 잘 믿고 죽는 날까지 하느님이 원하는데로 성경에 적혀 있는대로 잘 살았어요 성실하게 그리고 너무 착하게 그리고 죽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느님 제가 이렇게 평생을 살았는데 어떻게 이런 거 하나 안 막어 줍니까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라고 하느님께 딱 한번 원망 했어요 그러면 그 하느님이 그 이전에 여러분이 산 모든 삶을 에이 빵점 하고 다 그냥 없애버릴까요 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건 그런 얘기에요
그러면 여러분이 완벽하게 그 하느님이 요구하는 그것들을 다 해낼 수있어요? 없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그리스도교에 목적지는 그런건 아니에요 그죠
성경이 말하는 죄라는 거는 이 죄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창세기 부터 나오죠 그런데 무엇무엇 어떤 것을 근거로 하여 죄라는 개념을 끌어들이죠 선악과 그죠 선악과가 뭐에요 여러분 먹지 말아야 할 흉측한 그런 열매입니까 근데 먹어버리는 바람에 우리가 이꼴이 된 거에요 그죠 아담이 먹는 바람에 천국가서 그냥 확 그냥 따져 버릴꺼야 그러고 계시죠
이 선악과 때문에 죄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들어왔다 말이죠 그러면 이 선악과라는 건 뭐냐 말이에요 선악과 라는건 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어떤 것이에요 뱀이 하와에게 가서 뭐라 그러냐면 너 저거 먹어 저거 먹으면 니가 선악에 하느님을 만나게 될거야라 그래 히브리 원어로 보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니가 이걸 먹으면 너는 그 하느님을 선악에 하느님으로 만나게 될거야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선악에 하느님으로 다가오시면 여러분은 그 앞에서 요만큼에 잘못만 있어도 여러분은 그 악으로 심판받게 되어 있어요 뱀이 틀린말 한게 아니에요 너 이거 먹으면 그 하느님이 너에게 선악에 하느님으로 다가올거야 그러면 너는 그 하느님을 만날거야 그럼 넌 죽어 그럼 우린 어떤 하느님을 만나야 되요 은혜의 하느님을 만나야 되요 그죠 그걸 덮으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을 만나야 되요 우리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느님이 덮어 주시는 거에요
노아의 홍수 사건이 끝나고 샘과 함과 야벳 요렇게 노아의 아들들이 노아가 홍수 끝난지 얼마 됐다고 술을 먹고 옷을 홀딱 벗고 자고 있었네요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다니깐요 전 세계에 그 어마어마한 기식하는 모든 짐승들 인간들이 여덞명 빼고 다 죽었어요 여덞명 빼고다 죽었으면 아직 주변에서 시체 썩는 냄새도 가시지 않았을 땝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도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잘 수 있는게 인간 이래니깐요
그런데 하느님이 뭐라고 노아에게 언약을 해주시냐면 무지개 언약이라고 우리가 얘기하는 그 언약인데 사람이 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에 내가 다시는 이런 방법으로 너희를 심판하지 않을깨 이래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봤지 니네 죄 지으면 이렇게 다 죽여 버리는거야 그러니까 똑바로 알아듣고 이제부터 착하게 살아 그러면 내가 심판 안할께 이렇게 얘기해야 되는데 여덞명 딱 구해놓고 그들에게 가셔서 사람은 날 때부터 악해 그래서 내가 다시는 이런 방법으로 너희를 심판하진 않을거야라고 이야기 했다 말이에요 그래놓고 일어나는 이야기가 노아가 날때부터 악한 어떤 자의 모형으로 등장하는 거에요 금방 그렇게 대 살육의 현장을 경험하고도 그냥 술먹고누워있는 거라
그런데 함이라는 아들이 들어오더니 어 우리 아버지 벌거벗었네 라고 한마디 했거던요 그런데 저주를 받았어요 뭘 잘못이야 술먹고 누워 있던 놈이 잘못이지 그거 보고서 어 벌거벗었네 부끄러운거네 그 벌거벗음이라는게 창세기 1장에서의 1장 2장에서의 그 아담과 하와의 벌거벗음을 그대로 다시 재현해 주신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라는 창세기 1장에 그 명령이 고대로 떨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벌거벗은 그거 보고 함이 선악에 구조를 갖고 이거 뭐야 이거 악이잖아 이거 부끄러운 거잖아 라고 선악에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 모습으로 이거 악이잖아 라고 하자 하느님이 저주했어요 그런데 셈이 와서 어떻게 했어요 그냥 뒷걸음질 쳐서 와서 덮었죠 그걸 은혜라 그래요 벌거 술먹고 벌거벗고 있는거 잘못한 거에요 부끄러운 거에요 그런데 하느님은 그거 함처럼 이거 벌거벗은 거잖아 너 이러면 안되는거 아니야 가 그냥 뒷걸음질 쳐서 와서 자기 아들에가죽으로 덮어버리는 거에요 그걸 구원이라 그래요 그걸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면 죄는 뭐에요 죄라는 것은 이 헬라어 하마르티아라는 이단어는 과녁을 벗어나다란 뜻이에요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것은 이 과녁을 관녁이 여기 있는 이 과녁을 향해서 활을 쏴야 되는데 그리로 달려가야 되는데 엉뚱한 과녁을 겨냥을 해 놓고서는 열심히 거기다 대 놓고 뭘 쏘는 거에요 그래서 맞춰 심지어 그런데 진짜 과녁은 여기 있어요 근데 엉뚱한 과녁을 이렇게 정해놓고 여길 맞추기 위해 열심을 부리는 걸 성경이 죄라 그래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도덕이나 윤리나 사회법 이런 걸로 우리끼리 합의한 그런 죄라는 것들은 그냥 이런 것에 증상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그런 어떤 구체적인 세목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근본적인 그 죄라는 것에 뿌리 이것을 해결하는게 그리스도교란 말입니다
그러면 이게 뭐냐구요 하느님에 은혜 앞에서 아휴 왜 우리가 하느님의 은혜만 받아야 되요 우리도 뭔가 거기에 보태야 되지 않겠어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그렇게 들고 나서는걸 성경이 뭐라 그러냐면 바벨탑이라고도 그러고 바벨탑 사건이 그 이야기에요 우리가 우리에 힘으로 하늘에 오르자 하늘에 오르자는 건 교만 뭐 우리가 그냥 괜히 그렇게들 이야기들 하는데 우리가 우리의 힘을 보태서 그 구원에 이르자 하느님께로 가자라는 거에요 기특한 고백이였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그 시도를 부수어 버린다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잘 이해하셔야 되는게 뭐냐면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건 여러분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훌륭한 사람이 되고 훌륭한 인간이 되어지는 거 이전에 죄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고 그리고 그 죄를 하느님은 어떻게 해결해 주시는가를 올바로 깨달아 그 하느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적지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에 이름을 부르고.... 또 그 분에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구하여 여러분이 원하는 어떤 것을 얻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돼요 그래서 시중에 나오는 무슨 뭐 강청기도의 능력이라든가 보좌를 흔드는 기도라든가 이런 것들은 괭장히 불경한 이야깁니다 그건 인간들이 다시 해체하고 다시 조작해낸 엉터리 그리스도교인거에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이 역사라는 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역사관은 직선적 역사관이라 그래요 직선적 역사관이 뭐냐면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죠 그죠
끝이 있는 요 사이에 요 시간을 우리가 역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역사가 뭐냐하면 히 이즈 하느님에 스토리 그분에 이야기를 여기다가 이렇게 쭉 그려놓는 거에요 역사라는 것이 그래서 우리는 이걸 뭐 시간이라고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시간이라는 건 세슘원자의 뭐 그 반복주기인가요 거기다가 뭐 몇억을 곱해서 고걸 1초로 하자라고 사람들이 그냥 합의한 거지 시간이라는걸 어떻게 젤수도 없고 그걸 사실 흐른다고도 할 수 없어요 시간이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이렇게 봤을때 해가 이렇게 떠서 이렇게 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지구가 돌아가는 거라 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마치 그런 것처럼 시간이 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썩어가는 거에요 후패되어지고 썩는 거지 시간이 가는 거는 아니란 말이에요 아무튼 우리는 이 시간이라는 이 개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어떤 것 안에 어떤 영역안에 반드시 던져지게 되고 여기서 튕겨져 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걸 탄생과 죽음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러면 시간을 시작과 끝 이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그리고 또 이렇게 인식 가능한 거니까 있다고 치자구요 그러면 이 시간이있기 이전에는 뭐가 있었을까요 뭐가 있긴 있었을 거 아니에요 하느님이 계셨으니까 그걸 영원이라 그래요 그 영원안에는 하느님만 계시죠 그런데 하느님이 도대체 왜 시간을 만드신거에요 심심해서 셋이서 고스톱을 쳐도 광 팔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거에요? 그러면 이 시간 시간이 이제 끝나죠.. 성경에서는 분명히 종말을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끝나면 뭐가 있을까 영원이죠
여러분은 영원으로 들어가잖아요 여기 천국이잖아요 여기가 자 시간이 끝나면 영원이에요 그런데 분명히 여기는 하느님이 계실거고 여기에 이 역사이전에 요 영혼과 역사 후에 고 영혼에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요기에는 하느님에 백성들이 들어가 있어요 그죠 근데 여러분 영혼은 시간으로 이렇게 끊어지고 나누어 지는게 아니라 이렇게 하나에 시간이 다른 차원에 이렇게 존재하는 거에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릴께요 여러분이 꿈을 꾸죠 꿈속에서 이건 꿈인데 라고 인식할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이건 꿈인데라고 인식하는 거근 누구에요 나에요 그래서 이거 빨리 그런데 이 꿈이 악몽이야 어 이거 빨리 깨야 되는데 그러면 이 꿈이 깨었을 때 이 꿈 밖에 있는 그건 누구에요 나죠 고걸 다른 차원이라 그래요 그래서 옛날에 장주지몽이라 그래서 장자가 나비 꿈을 꾸고 나서 나비가 내 꿈을 꾸는거야 내가 지금 나비 꿈을 꾼거야 그랬다 그랬잖아요 응 잠 들깨서 헛소리 한게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도대체 어떤게 현실이야
지금 여러분은 에페소서에 말씀에 따르면 창세 전에 구원을 받았다 그래요 그죠 그럼 창세전에 구원을 받았으면 구원받은 사람들이 왜 여기 왜 내려 와 있어요 예 솔직히, 다 홀리 홀리한 표정 짓고 계시지만 살기 힘들죠 ....사는 것 쉬운 사람 어디 있어요 우리 그 청와대 출입기자 했던 선배가 사회부 기자 할때 이 파출소 드나들면서 잡범들에 고민을 들어보고 청와대에 들어가서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 고민 들어보니까 다 힘들더래 똑같더래요 살기 힘들어요 그죠 근데 힘들다 그러면 믿음 없다 그럴까봐 그냥 다 홀리홀리 한척 하는거지 다 힘들어 그런데 이 힘든 세상에 이 역사속에 창세전에 구원받은 그 하느님에 아들들이 하느님에 아들들이 되었다라고 과거로 쓴다 말이에요 왜 내려와 있냐 말이에요 여러분이 여기로
전지 전능한 옴니션스 옴니 프레즌스 옴니 포텐스의 그 하느님이 창세전에 구원을 했으면 그냥 이리로 집어 넣으면 되지 뭐하로 이 역사를 살게 하냐구요
뭐 여기서 테스트해갖고 창세전에 구원 받았지만 여기에서 시험 못 통과하면 니네 그냥 다 죽여 버릴꺼야.. 지금 시험하는 겁니까 왜 사냐구요 왜 사냐구 묻거든 그저 웃지요에요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 보좌 우편 존재들이에요 거기에 계신 분들이라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짤막한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생각해 보세요 꿈 환상 그러면 왜 꿈이라 그러고 왜 환상이라 그래요 금방 깨니까 그런데 성경에서는요 요 인생을 꿈이라 그래요 왜 요건 금방 끝나요 찰라라 그러거든요 경점에 불과하다 그런다구요 그래서 이걸 꿈이라 그래요 그래 창세전에 이미 구원받은 여러분이 이 인생이라는 잠시 잠깐의 꿈을 꾸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가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가를 배우고 가는 거에요 이 역사 속에 꿈속에서 무슨 고대광실 집을 집고, 훌륭하고 괸찮은 인간이 되어서 이꿈같은 세상을 살기좋게 만들어라가 아니라 여기에서 하느님은 도대체 어떠한 능력으로 왜 나를 그냥 없어도 되는 나를 먼지 티끌 아파르에 불과한 나를 왜 여기에 집어 넣으셨는가 어떤 능력으로 이걸 배우고 이 속에서 영원히 그걸 찬송하는 자로 되어지기 위해 여러분은 인생을 사는 거에요 그게 에페소서 1장에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보세요 이스라엘이 에굽에서 나와서 40년 광야를 살죠 그래서 성경은 이 40이라는 숫자를 인생에 숫자 역사에 숫자로 써요 그래서 예수님도 40일 광야에서 굶주리셨던거고 이스라엘도 40년 광야를 살았던 거에요
그거를 스테파노가 뭐라 그러냐면 광야 교회라고 이야기를 해요 광야교회 교회라는 건 하느님이 아담을 만드셨을 때부터 이 세상에 있었던 거에요 교회라는 거 그 자체가 에크 레시아 어디서 밖으로 끄집어 내어진 무리라는 거거든요 뭐냐면 이 역사에 그냥 묶어서 여기가 다 이겠거니 라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아니지 여기가 다가 아니지 우리가 살 곳은 여기지 라고 깨닫고 이리로 끄집어 꺼냄을 받은 그들을 교회라고 하거든요 이런 유형에 로컬쳐치 지역교회를 교회라고 하지 않아요 성경은 그러니까 교회는 이 역사에서 시간에서.... 육적 세상에서 빠져나온 무리를 교회라고 그래요 성경이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때부터 건져내신다 말이에요 아담부터 시작해서 ....그러니까 아담은 첫번째 교회에요 아담이 왜냐면은 창세기 3장 15절을 원시 복음이라 그러죠 너희는 이렇게 놔두면은 사는 존재가 못되 그래서 여인의 후손이 올거야 그 후손에 의해 너는 사는 자가 된다라고 하고... 아담이 그걸 이해하자 하느님이 가죽 아무 죄도 없는 짐승 무죄한 제물에 껍질을 벗겨 무죄한 제물의 희생으로 그들에 부끄러움을 가리는 거죠 그게 예수란 말이에요 그래서 원시 복음이죠 그거를 이해하자 아담이 자기 아내에 이름을 하와라고 지어요 ...뭐라고 산자의 어미라고 짖는다 말입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산자의 어미라고 짓냐구요
원래 하느님이 뭐라 그랬냐면 너 선악과 따먹으면 정녕 죽을거야 라고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무트 타무트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반드시 죽여버릴거야 이렇게 이야기한다구요 그런데 먹었잖아요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산자의 어미라고 짓냐구요 아 맞아 나는 죽어 마땅해 그렇지만 그 여인에 후손에 의해 살아나는게 나지 라고 깨달은 거에요 그러니까 최초에 교회는 아담부터 이제 시작되는 거에요 흘러내려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첫번째 그 아담을 뭐라 그러냐면 성경이 하 아담 그래요 이게 관사고 아담이 이제 사람 전체 이름이에요 이거 자체가 사람이란 뜻이에요
또 아담이란 단어가 그런데 하 아담이면 그 사람이죠 그래서 구원받은 아담은 항상 그 앞에 관사가 붙어 있어요 그 아담 그러면 신약으로 넘어와서 그 아담이 뭐에요 그 사람이죠 그러면 그 사람에 후손들 있죠 믿음에 후손들 그들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하거든요 그들에 대표로 신약에 오신 분이 누구다 그 사람에그 아들 성경이 뭐라고 한글성경이 뭐라고 번역했죠 인자라고 한다 말이에요 그래서 그 인자의 그 사람에 그 아들에 그 그 사람 ... 거기어는 호 안트로포스라고 하지만 그게 히브리어로 바꾸면 하 아담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담처럼 그렇게 구원받은 자들.... 그걸 또설명해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잖아요 그래서 그분이 그 아담에 자손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아들이라고 인자라고 여러분이 바로 그 인자에 라인에 들어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분만 인자가 아니라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이 에굽에서 에굽이라는 데에서 나가야 되는데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찾아 오셔서 여러분에 문을 똑똑 뚜드리고 뚜드리는 순간... 여러분은 그 분에 손에 꽉 잡히게 되요 그리고 여러분에 이 육적 인생에서 이제 끌려 나오기 시작한다구요 그렇게 여러분이 이제 하느님에 손에 의해 끌려 나오는 그 시간 전체를 이역사라 그러고 인생이라 그래요
그 전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 그러죠 그러면 죄인은 성경이 뭐라 그러면 죽은 자라 그래요 그러면 그 주님 그 성령을 만나기 전까지 모든 인간은 인생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죽은 자에요 그러니까 온 세상은 죽은 자들이 산자인척 하고 콩콩 뛰어다니는 강시들에 세상인 거에요 죽은 시체들이 쿵쿵쿵쿵 뛰어 다니는거 있죠. 강시가 진짜 있다는게 아니라 고런... 세상이 그렇다니깐요 죽은자들이 산자인척 하는 거에요 거기에서 뭐 대통령도 나오고 뭐 재벌회장도 나오고 그러는데 진리를 가진 사람들에 눈에는 그게 시체로 보여야 되요 야 저 시체들이 참 재벌놀이도 하고 대통령 놀이도 하고 뭐 연예인 놀이도 하고 그러고 있네 이렇게 볼 수 있어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 죽은 거에요.... 그건 여러분이 부러워 할게 아니래니깐요 그거 쉽지 않아요 나도 부러워 사실은 근데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리로 간다 말이에요 가게 된다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이 인제 애굽에서 끌려 나왔어요 이제.... 인생이 시작되는 ....진짜 살아있는 인생이... 역사가. 그런데 이스라엘이 끌려 나와서 이 40년 광야 인생동안에 한게 뭐에요 60만명이 나왔다 그래요 그렇죠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이 에굽 그 야곱에 그 자손들 70명이 에굽으로 들어가서 430년 있다 나오잖아요
고때 전세계 인구가 3천만명 밖에 안됬어요 역사서를 보면 그런데 여러분 에굽이라는 한 나라에서... 장정만 60만명이니까 한 200만이 넘잖아요 전세계 인구가 3천만명인데 한 나라에서 2백만명이 빠져나가면 그 나라가 존속이 되요? 근데 거기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이만큼이 빠져 나왔어요 하느님에 은혜로 그런데 이 장정만 60만이던 이 에굽에서 빠져 나온 이 사람들이 ...이 일세대가 광야에서 전부 죽었습니다 그러면 민수기에 가보면요 약속에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몇명이라 그래요 민수기가 사람 머리를 세서 민수기에요 넘벌스에요 영어로는 넘버를 셌단 말이에요 몇명이였어요 60만명이에요 성경이 일부러 기록하고 있어요 왜 그런데 이들은 어떤 세대냐 하면 이 광야에서 난 자들이에요 그들을 새로운 2새대라 그래요 이건 하나의 상징이에요 여러분이 이 역사속에 태어날 때 전부죄인으로 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오죠 이거 억울하지 않으세요 아휴 억울하지만 그 양반보다 내가 힘이 별로 없으니까 그냥 인정해줄께 여러분 이건 벼르는 겁니다 내가 그 양반보다 힘이 세지면 그러면 당연히 인정 안하지 이거 아니에요
여러분은 이 땅에 죄인으로 왔어요 하여튼 죽은 자로 왔다라는 거에요 그거는요 태어나서 숨쉬고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해서 산게 아니란 뜻이에요 성경을 보면 하느님이 이 흙을 모아 네페시라는 어떤 존재를 만들어요 만들구는 거기다가 생기를 불어 넣죠 그런데 짐승에게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말이 있어요 없는데 짐승들이 움직이고 다녔대니깐요 돌고래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그때 다 만드셨단 말이에요 그때 설마 여기 진화론자가 있는건 아니겠죠 다 만들었다 말이에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당연히 닭이 먼져죠 하느님이 달걀을 먼저 만들었겠어요 생기가 없어도 네페시 라는건 움직이고 생각하고 돌고래처럼 아이큐도 있어요 어떤 원숭이는 사람보다 아이큐가 더 좋대 그런데 그걸 살았다고 하지 않아요 성경이요 죽었다 그래
뭐를 살았다라고 하냐면 하느님이 거기다가 생기 성령을 부었을때 그걸살았다 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일단 성령을 받기 전에는 모두 죽은 거에요 죽은 건데 그들이 이 광야 인생길에서 하느님에 그 말씀 그 진리에 성령 그 말씀에 의해 다시 아노덴 위로 태어난다 그래요 아나가 위로고 아노덴이라고 거듭나다로 번역됬지만 위로나다 란 뜻이에요 원어로 보면 위로나다 아래에서 난 이들이 위로 다시나는 거에요 여기에서 광야에서 그래서 위로 다시나게되면 이 육이 죽는 거죠 그래서 1세대는 여기서 죽고 여기에서 난 자들이 들어간다라는 걸 모형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이 교회 이 광야 교회라는 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서 유일하게 여러분이 해고 가야할 것은 죽는 거에요 여러분에 육이 죽고 여러분에 육적 야망이 죽고 여러분이 인간적 욕심이 죽고 여러분에 그 구원을 향한 가능성 내가 갖고 있는그런 가능성이 죽는 거에요 그리고는 하느님의 은혜만 꼭 붙드는 자가 되는 거에요 하느님이 나 살려주지 않으면 나는 절대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를 고백하고 가는 것이 성도에 유일한 본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속에서 율법에 대하여 죽고 나에 육신에 대하여 죽고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하는 우리들이 이 육신에 안일과 육신에 번영과 나에 야망과 소원을 이루어 내는데 ....그걸로 죽어야 된대는데 이루어 내는데 예수를 이용하고 있는 거에요 그게 교회입니까? 그러니까 불교인들이나 힌두교인들이나 그리스도교인들이나 목적지도 똑같고 기도의 내용도 똑같고 사는 것도 똑같고 각자 부르는 신에 이름만 달라 안그래요? 애들 대학 입시때보면 절에도 똑같은 기도하는부처님 교회도 똑같은 기도하는 엄마들 하느님 아니 양심이 좀 있어야죠 아니 공부를 안했으면 공부한 만큼 해게 해달라 그래야지 그럼 더 열심히 공부한 애들은 애 때문에 떨어져야 되요 무슨 그런 그리스도교가 다 있어요 내 자식만 잘되면 되는 거에요 아니 그런 강도들이 모여있는게 천국이라면 거긴 지옥이에요 근데 무조건 내꺼 내 자식 내 부모 내 교회 내 나라 여기에 전부 묶여 갖고... 왜 그건 나거든요 나 그걸 성경이 우상 숭배라 그래요 그게 너를 숭배하는 거지 니가 나를 숭배하는 거냐 나는 니 마음을 봐~~~ 사기치지 마 하느님이 그런다구요 너 나한테 사기치지 마 니가 나를 모독하는 거다라 그런다니깐요 하느님이요 내가 사람들 처럼 너에게속을거 같애 너는 지금 너의 유익을 위해 날 이용하는 거지 나를 경배하는 거 아니야 하느님이 그런다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그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속에서 잘 죽으시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러냐면 그리스도 인들에게 약속된 다른 것 다 필요없이 정말 보편적 모든 그리스도 인들에게 약속된 하느님의 약속이 하나 있다 그걸 뭐라 그러냐면 고난이라 그래요 그죠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할지도 모르나 머스트 반드시 당하나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러지요 성도에게 약속된 거는 고난이에요 우리는 이 고난이라는 걸 통해서 이 역사라는 것 이 눈에 보이는 나타난 이 세상이라는 것에 한계 그리고 이것에 헛됨 이런 것들을 배우는 거에요 아니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그러죠 아 딸들은 또 되게 기분 나빠하네 하느님 나라에는 하느님에 아들만 있어요 뭐 성별 이런거는 거기에는 아 그런건 얘기하지 말자구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없다 그랬고
거기에는 하느님이 뭐라 그러냐면 너희들은 나의 신부야 그러죠 신부야 내가 남편이야 그래 에페소서에서 그러잖아요 교회 신부이고 그리스도가 남편이다 그래요 근데 그 남편이 그 여자 신부들에게 와서 그 남편이 하나가 되어 생명을 낳잖아요 그러면 그걸 그냥 아들이라 그래요
그래 딸 아들 이런거 이런 뭐 생물학적 성별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하느님에 그 백성들 그 하느님에 그 아들들 .... 그 아들들은 이역사속에서 이 역사와 이 눈에 보이는 그 인간들에 노력과 열심으로 세워지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허황되고 하느님 앞에서 무가치한 것인가를 배우는 거에요 그래서 아 하느님이 세우시고 그분이 통치하시고 그분에 생명력과 그분에 은혜로 세워지는 그 곳에 진짜 천국이지 우리가 세우는 거는 이렇게 스러지고 망하는게 맞는 거구나를 배우는 거란 말이에요
그들이 그게 여러분에 그 하늘나라에 있는 그 하느님에 백성 그 하느님에 자녀로서에 그 신분이 여러분에 진짜 현실이에요 그게 여러분에 진짜 현실이고 이거 봐요 믿음이 없으니까 진짜 이러고 있는 거에요 지금 그게 진짜 현실 이래니깐요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여기에서 이렇게 각기 다른 얼굴과 각기 다른 옷과 각기 다른 가정 직업 이런 것으로 여기 와 있는 이게 바로 여러분이 그 곳에 자녀로 어떻게 하느님께 택함을 받았는가를 배우는 이 잠시 잠깐 지나가는 연극 속에서의 역할이란 말이에요 이것이요 그러니까 이 역할이 끝나면 여러분은 여러분에 집으로 돌아가 여러분에 진짜 현실로 가는 거라 말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이 나에게 믿음으로 현실로 와닿지 않으니까 자꾸 이 꿈같은 연극같은 이 세상 속에서 나에 행복과 나의 가치 나에 만족을 챙길려고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온통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전부 이 꿈속에서 나를 좀 잘되게 해달라는 거에요 여러분에 현실은.... 그 묵시속에 완료되어 있는 그 하느님에 자녀란 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저 사람은 참 현실적이지 못해라는 말을 들으셔야 되요 왜 내 현실은 저기야 니네 현실은 여기지 왜 너희에게는 그 하느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에게는 그게 안보이잖아요 현실은 거기라니까 이런 당당함이 있어야 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어떤 역할을 맡았 떤 그 역할에 그냥 충실하면 되요
어떻게 연극에 모든 등장인물이 다 왕의 역할만 할 수 있어요 그럼 그 드라마는 망하는 거라니깐요 그지도 있어요 되고 식모도 있어야 되고 버스 기사도 있어야 되고 청소부도 있어야 되고 각기 그 맡은 역할 속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면서 그렇다고 막 살라는거 아니에요 학생은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되고 뭐 사업가는 돈도 열심히 버세요 열심히 벌어서 잘 쓰시라니까 그럼 되는 거에요 그런 각자의 역할 속에서 그 묵시속에 현실 그 하느님의 은혜와 그 사랑을 잘 배우면 그걸로 되는 거에요 그러면 그거 그것이 진짜 목표내요 라고 알았을 때 현실속에서의 나의 이 육적 환경이나 아니면 내 뭐 배경이나 조건이나 외모나 뭐 이런 것들이 별로 별로 대단하게 나에게 가치있게 느껴지지 않을거 아닙니까
뭐 쪼금 다리좀 짧으면 어때 미국에서 살다 보니까 가장 안타까운게 그 길이요 아휴 왜냐면 웃도리를 사도 팔이 이렇게 길어 바지를 사도 꼭 줄여야되 아니 한국에 오니까 그건 편해요 딱 맞어 거의 평균이야 다, 그냥 그러면 좀 어떠냐구요 조금 가난하면 어때 이런 마음이 나에게 들때 그게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는 거에요 그게 그리스도교의 목적 이라면서요 그런데 우리는 전부 여기서 건져달라고 그러고있는 거에요 그런데 이걸 통과하지 않으면 그걸 못가르쳐 준다는데 우리는 이걸 막아주고 여기에서 건져 달라는 이거를 신앙생활에 목적이라고 으로 여기고 있다 말입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런게 목적이라면 여러분 잘못 찾아 오셨어요 주변에 있는 공기 좋고가면 밥도 맛있는거 주는 절을 가세요 절에 거기가면요 삼천배 만배 뭐 만오천배 절하는 만큼 소원 들어지게 되어 있어요 거긴 불상도 있어 가서 좀 깍아다가 밥에다가 파 먹으면 뭐 아들도 낳고 별거 다 해준대요 뭐하러 교회 와 계세요 그게 목적이라면 교회는죽으라 그러고 거기는 여기와 완전히 반대에요 우리는 자기 부인을 목적으로 하는데 거기는 자기 확신 자기 주장 자기 개발 이걸 목적으로 한다니깐요 근데 그리스도교가 그냥 비빔밥 종교가 되갖고 이것 저것 다 섞여 버렸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쇼 우리가 하느님께서 십계명 첫번째 계명을 뭘로 주셨죠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그러면은 하느님이 자기말고 또 다른 신이 있다라고 인정한 거에요 하 히브리 원어로 보면 너는 나를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란 뜻이에요 하나느 말고 무슨 신이 있어요 그런데 하느님이 너나 말고 다른 신 섬기지마 그랬겠냐구요 너는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마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내려가 보니까 하느님을 소로 섬기고 있네... 니들이 하느님 섬긴다매 하느님이 니들을 애굽에서 건져 냈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잔치까지 벌리고 찬송을 하는데 그러면 니들 안에 있는 그 하느님을 한번 보이게 만들어봐 그랬더니 소를 만들어 놨어 그 소는 애굽에서 섬기던 신이였어요 풍요의 신다산의 신
그러면 너는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마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요 여러분 우리가 나라는 존재 이 나를 어떻게 규정을 합니까 어떻게 구축해 가죠 나를 나가 뭐에요 나 나는 누구야 내가 누구지 생각해 보셨을꺼 아니에요 내가 누구에요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에요 나는 여러분 인간은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존잰데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창조됬다 그러죠 그 말은 인간은 하느님을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일 수 없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이 나라는 것을 규정하거나 구축해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피 어떻게 나를 구축하냐면 내 밖에 있는 어떤 것들 관계라든지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 이런 것들을 끌어 당겨서 나와 붙여 버려요 그리고는 이게 나야라고 이야기를 한다구요 가족, 일, 돈, 건강, 뭐 이런 것들 그래서 가족 나는 내 아들에 아버지야 나 아버지 나 엄마야 나 아들이야 나야 그게 일 나 사장이야 나 종업원이야 나 피자가계에서 일해 나 청소부야 나 부자야 나 가난해 나거지 나 장애인 나 병자 나 못생긴 사람 나 이쁜 사람 ... 이렇게 인간은 내 밖에 이런 것들 이 세상에 어떤 자원이나 이 세상것들로 나를 규정하고 구축한다구요 그러니까 이게 나가 되니깐요 이것이 곧 나에 생명이 되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잖아요 그럼 목매다는 거에요 이 돈이 특히 나에 사랑을 받던 내 생명이였으면 요 돈이 살아젔을때 사람들은 살 맛을 잃습니다 그는 목매달기 전에 이미 죽은 거에요 내 가족 내 일 왜 어른들이 명예퇴직 이런거 당한 다음에 할일 없이 파고다 공원에 가서 비실비실 대다가 돌아가시죠 나가 없어져서 그래 내 건강 암에 걸려도 요즘은 오래 오래 살아야 잘 관리하면 그런데 지래 겁 먹고 죽죠 그러면 이런 것들은 이 세상에 있는 유한한 것들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이것을 생명으로 갖고 있는 한 나는 이것이 사라질때 이 유한한 것들이 사라질때 나도 같이 죽는 거에요 그걸 세상에 속한 인간이라 그래요 그런데 이 나가 하느님에 진리에 말씀에 의해서 이런 것들로 부터 조금씩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나에게 있어서 정말 가장 소중한 것이 그 하느님으로 딱 붙어 버리면 이 분이 내 생명이야 하느님과 나에 연합을 위해선 그래 그 사업 좀 망해도 괜찮아 내 건강 조금 내가 불편해도 괜찮아 내 가족 조금 뭐 내 자식 공부 조금 못해도 괜찮아 그래서 우리가 더 사랑하게 되고 더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고 괜찮아 라고 했을때 이 사람에 생명은 이 하느님이죠 그런데 이 하느남은 죽어요? 안죽어요 그러면 이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아까 이렇게 덕지덕지 붙었던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벗어나 이리로 향해 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에는 관심도 없고 이분은 그냥 저기 멀리 떨어져서 나만 도와 주면 되 그리고 내 관심은 여기에 있어 그러니까 이거 안 도와주면은 화가 나가지구요 하느님 한테 삐지고 나중에는 막 삿대질도 하고 그 하느님에게 욕지거리까지 한다니깐요 그걸 무슨 예수믿는거라 그럽니까 여러분
그런건 예수 믿는게 아니에요 나를 섬기는 거에요 나 그걸 우상이라고 그래요 성경이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가 그렇게 되 버렸대니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하여 이 나를 더욱더 살찌우고 윤택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그런 왜곡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셔서 그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하느님을 찬송하고 그 하느님에 뜻을 내 삶 속에서 이루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이가 되어가는 거에요 그걸 위해서 여러분에 소원이 조금 안들어 져도 괜찮아요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때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이렇게 고 몇마디만 가르쳐 준거에요 이게 기도야 이렇게 아이 그 안에 일용할 양식도 있지 않아요 그 일용할 양식은 요 하늘의 빵으로 오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 분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살리잖아요 그게 내 양식입니다 그걸 달라는 거지 일용할 양식 아니 그러면은 일용할 양식만 달라 그러지 왜 그렇게 많이 달라 그래요 진짜 일용할 양식만 구해요 욕심도 많아가지고 말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아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안 풀려 아니 나 남들보다 신앙생활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아니 하느님이 좀 직무 유기를 하고 계신건 아닌가 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줄 모르겠는데 그게 맞는 거에요 그게 사실은 하느님이 여러분을 간섭하고 계시다는 증거인 거에요 마치 어떨 때는 아 하느님은 나하고는 등을 돌리고 아무 상관없는 그런 분으로 사시는 것 같아 아 너무 외롭다 고독하다 이런 기분이 드셔야 되요 때때로 그때 여러분 하느님이 그러신다구요 아니 그때 내가 니 옆에 있었어.... 그게 아버지에요
여러분에 아버지 진짜우리 부모가 때때로 아 그 부모가 왜 이러지 왜 내가 원하는대로 안 들어주지 그랬을 때 그 부모가 침묵할 때 우린 때때로 굉장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섭섭하기도 하고 그러나 나중에 철이 들어서 알고 보면 그때 그렇게 하셨던게 맞는 거잖아요 그죠 우리가 어떻게 그 하느님에 마음을 넘어서서 하느님 어떻게 일을 이따우로 하실 수 있어요 이럴수 있냐구요 그분은 창조주고 나는 피조물인데 여러분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렇게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피조물에 자리로 내려가는 거에요 그 피조물이 감히 하느님에 자리를 타고 넘어서 하느님 흉내 낼려고 하는걸 성경이 죄라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이 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뭐 그럴거면 나는 예수 안믿을래라고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원래부터 우리가 함께 있던 이가 아닌 거에요 하느님은 당신에 백성은 반드시 이 역사속에 나오기 이전부터 하느님은 그와 동행하고 계세요 그리고 반드시 그 목적지 까지 끌고 가십니다
교회에서 자꾸 사람들 선동해갖고 말이죠 이거 바쳐 저거 바쳐 집팔고 논 팔고 소팔고 자기들은 소고기 사먹고 허허허 그게 무슨 기독교냐구요 예 해도 너무하는거 아니에요 근데도 너무들 착해갖고 다 속아 예 마치 언젠가 그래도 나에게 로또 한방 내려오겠지 라는 기대를 갖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진짜 복 진짜 여러분에 기업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걸 바라보고 그것이 거기 있어서 나는 이렇게 행복합니다 라고 찬송을 해야지 하느님 내가 이렇게 열심히 찬송하니까 나 이쁘죠 하느님이 그걸 들으시겠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바뀐거에요 이게 순서가
그 하느님을 먼저 배우세요 그리고 그 하느님으로 행복한 그 진짜 복음을 그 진리를 배우셔야 되요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진짜 천국에 가면 그 하느님이 거기 계셨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만 잘 잘 구비해놓고 어디 딴데 가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분은 굉장히 서먹서먹 할거 같죠 누군지 잘 모르니까 가서 못알아 볼지도 몰라 또 그런 그분과 영원히 거기서 살면 얼마나 그게 어색하겠냐구요
이 땅에선 그분을 알고가는 거에요 그래야 그분이 없으면 안되지 이거 아니 천국은 내 사랑하는 이가 있는 그 곳이 천국이지 내가 원하는 곳이 구비되어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래니깐요 거기는 내가 원하지 않는 서먹서먹한 사람과 같이 거하게 되면 곧 지옥되는 거에요 여러분이 원하는걸 전부 다 구비해놓고 시어머니랑 영원히 살아라 그러면 거기가 천국이겠어요 허허허 시금치도 안먹는데 아니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님 함께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래매요 사랑하는 그분 그분이 있는 곳 거기에 가고 싶어요 여야 되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그 하느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어떤 분인지 궁금하지도 않아 그냥 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펄펄 끓여서 그냥 나를 액스타시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감동받은 예배다 뭐 이런 그렇다고 울면 은혜 받았대 그건 연속극 보고도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울면 사실 기분이 좀 좋아져요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그거는 은혜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행복해야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