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개(너울)

2015. 8. 12. 오전 6: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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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개(너울)

종교 교리는 만들어진 이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에 학습되면 학습은 습관을 만들고 반복되는 습관은 아집이라는 괴물을 만든다.

괴물을 담고 있는 그릇이 종교인이라는 사람이다.​​

하나의 괴물은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비난의 대상이지만 괴물이 집단을 이루면 거대한 세력으로 당연시되고 정통이 된다.

집단 괴물에 반대하는 새로운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 당한다.

이단 괴물도 정죄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면 또 다른 정통 괴물로 자라난다.

또 다른 집단이 되는 것이다.​

괴물, 마귀, 사단, 귀신 이야기를 하면 섬뜩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악마에 대한 사전 학습된 선입관 때문이다.

종교는 집단괴물의 학습 수련장이다.

종교는 선이라는 포장재로 그럴듯하게 싼 악이다.

최선이나 최악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하지만 사실 겉과 속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

사람이 겉으로 곱게 치장하고 잘 차려 입는다 할지라도  속에는 모두가 똥 오줌을 담고 사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인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한마디로 위선이다.


육욕적인 요소를 영적이라는 허상의 랩wrap으로 감싸는 것이다.

소위 믿음이 좋다는 것은 얼마나 위선으로 잘 가리어졌는가, 이다.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죄인가?

정장으로 잘 차려입고 안 먹은 척, 안 한 척, 자지 않는 척 할 뿐이다.

그러나 점잖은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있다.

점잖 떨지만 가리개로 가리는 은폐 술이다.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잘 길들여진 교인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교훈에 철저히 순종한다.

죽음도 불사하고 따르도록 훈련된 자가 최고의 믿음이다.

그러나 그런 허울 좋은 믿음의 내면엔 억압된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교리 교훈의 통제 하에 ​본능을 억제하고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게 가두어두는 것이 얼마나 괴로움인가?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 (로마 7:24)

예수가? 그렇게 믿을 뿐이고 사실은 아니다.

또 하나의 랩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여자에 추락하는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을 보라!​

감싸고 있는 믿음의 가리개가 벗겨지고 본능의 속내가 드러나면  모두가 그렇고 그런 것이다.

내면에 괴물을 꼭꼭 숨기고 철저히 외식하는 자가 ​최고의 성자 성녀다.


[출처] 가리개|작성자 산돌 Living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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