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개(너울)
종교 교리는 만들어진 이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에 학습되면 학습은 습관을 만들고 반복되는 습관은 아집이라는 괴물을 만든다.
괴물을 담고 있는 그릇이 종교인이라는 사람이다.
하나의 괴물은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비난의 대상이지만 괴물이 집단을 이루면 거대한 세력으로 당연시되고 정통이 된다.
집단 괴물에 반대하는 새로운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 당한다.
이단 괴물도 정죄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면 또 다른 정통 괴물로 자라난다.
또 다른 집단이 되는 것이다.
괴물, 마귀, 사단, 귀신 이야기를 하면 섬뜩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악마에 대한 사전 학습된 선입관 때문이다.
종교는 집단괴물의 학습 수련장이다.
종교는 선이라는 포장재로 그럴듯하게 싼 악이다.
최선이나 최악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하지만 사실 겉과 속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
사람이 겉으로 곱게 치장하고 잘 차려 입는다 할지라도 속에는 모두가 똥 오줌을 담고 사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인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한마디로 위선이다.
육욕적인 요소를 영적이라는 허상의 랩wrap으로 감싸는 것이다.
소위 믿음이 좋다는 것은 얼마나 위선으로 잘 가리어졌는가, 이다.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죄인가?
정장으로 잘 차려입고 안 먹은 척, 안 한 척, 자지 않는 척 할 뿐이다.
그러나 점잖은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있다.
점잖 떨지만 가리개로 가리는 은폐 술이다.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잘 길들여진 교인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교훈에 철저히 순종한다.
죽음도 불사하고 따르도록 훈련된 자가 최고의 믿음이다.
그러나 그런 허울 좋은 믿음의 내면엔 억압된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교리 교훈의 통제 하에 본능을 억제하고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게 가두어두는 것이 얼마나 괴로움인가?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 (로마 7:24)
예수가? 그렇게 믿을 뿐이고 사실은 아니다.
또 하나의 랩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여자에 추락하는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을 보라!
감싸고 있는 믿음의 가리개가 벗겨지고 본능의 속내가 드러나면 모두가 그렇고 그런 것이다.
내면에 괴물을 꼭꼭 숨기고 철저히 외식하는 자가 최고의 성자 성녀다.
[출처] 가리개|작성자 산돌 Living 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