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이웃 동네 누구 이름인가?

2011. 7. 1. 오후 12: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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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이웃 동네 누구 이름인가?

[독자통문-박상조]
 
2011년 06월 30일 (목) 18:25:36 박상조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사제목에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란 칼 라너의 말이 눈에 띈다. 기사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실에 고마워해야 할 것인지 실망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

로마 가톨릭 신자인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교회의 어떤 모습을 보고 사도신경에 나오는 대로 "거룩한 교회"를 믿고 있는가? 주일미사에 나오는 사람이 줄어들어 그 숫자를 보충하려고 애쓰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께서 생사문제가 걸린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 기도하셨지만 들어주시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십자가 위의 고통 속에서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해 여러 사람들이 듣는 데서 하느님이 당신을 버렸다고 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만 믿지 이 세상에 계셨던 그 예수는 믿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분처럼 고생하면서 살다가 그렇게 죽기 싫은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만 하라고 했지 우리보고 십자가에 못박혀 당신처럼 죽으라 하시지 않았으니,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위로를 받을 정도를 넘어서 우리는 그분과 아버지 하느님께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지 않나? 좋은 식당에서 맞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하는 우리의 기도는 그리스도교적인 암시가 있는가? 그 음식과 거기 모인 사람에게 축복을 해 달라는 이기적인 기도를 들어주실까? 거기에 없고, 그런 자리에 낄 수도 없는 수많은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그 기도 끝말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자리에 올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면서 이 음식을 먹게 해 주십시오"라고.

번영신학이란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것도 신학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사실은 번영신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당을 보면 사목위원이나 회장이란 사람들은 대개가 먹고살만한 정도를 넘어 동네 부자들이기 일쑤다. 가난한 사람은 교회 근처에 얼씬거리기조차 민망하게 생각할 정도로 호화스럽게 성당을 짖는다.

레지오 모임에 우리는 마니피캇을 부른다. 본론인 "교만한 자들을" 흩어버리고, "권세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내친단 말은 귀에 들리지 않고 들리는 말은 하느님의 자비가 "영원히 미칠 것'이란 끝 말뿐이다.

마니피캇이나 산상수훈을 주제로 강론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앞에 앉아 있는 신자들 대개가 중산층이라 하니 사제가 신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피하는 것일까? 교회의 봉사단체에서 한 자리를 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발판 삼아 다음에는 정부나 정부 산하기관에 취직을 한다. 이러한 교회가 예수께서 생각했던 교회라면 왜 헤로데를 보고 "그 여우"라 해 왕의 심기를 건드렸는가? 적당히 타협을 했다면 사형도 면했을 것이고, 복음선포도 수월하게 했을 것이 아닌가?

카알 야스퍼스가 하느님을 믿으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것 같다. 그 사람의 말이 생각 나 여기에 옮겨본다.

“이제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신앙인들의 진술들이 서로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반대자를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박해하는 가운데 일어났던 온갖 분열들이 모든 시대에 걸쳐 기독교적 실재의 특징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기독교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 기독교는 성서에 기초를 둔 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여러 종파들, 자비스럽고 비교리적인 퀘이커 교도들과 광신적인 칼빈주의자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신의 이름하에 고문을 하고 살인을 하는 종교재판관 등에서 현실화되었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역사적인 기독교의 공간은 서구 전체와 그 이상을 포함한다."


독일 사람이 본 서양교회의 이야기기지만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에 나오는 신앙인들의 진술과 행동은 거의 일치하는가? 아니면 야스퍼스의 말대로 거의 일치하지 않는가? 우리는 교회 안에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느님이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이름인가? 그래서 부르기만 하면 달려오는가?

그분을 보았다 만났다는 사람이 있는가? 만났다 하더라도 왜 자기만 옳아야 하는가? 그분이 그렇게 고집부려라고 시켰는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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