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담자 그리스도인 |
||||||||||||
| [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5] | ||||||||||||
|
||||||||||||
|
노동자 출신이었던 그녀는 1970년대의 가혹한 노동의 시절을 거치고, 스스로 노동자의 벗이 되기로 작심하였다. 1980년대 90년대의 폭력적인 노동세계 안에서 그가 한 일은 참으로 인간다운 요구였지만, 전통적으로 ‘반공주의’를 표방했던 교회는 색안경을 쓰고 노동운동을 바라보았으며, 그녀가 활동했던 교구가 1970년대 이후에 줄곧 친정부적 보수색깔을 유지해왔던 곳이기 때문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도 그만큼 컸다. 밥 한술은커녕 쪽박을 깨지 않으면 다행인 형국이어서, 어머니인 교회가 그녀에겐 엄마노릇을 거절했다고 보면 맞겠다. 어느 날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에 활동을 하는 자녀가 이런 말을 했다. 레지오를 맡고 계신 수녀님인지 누가 이 자녀에게 엄마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성당에만 나가면 ‘열딱지 나서’ 그냥 있는데, 아마도 수녀님 보시기에 그 딸네미의 엄마는 ‘냉담중’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자기 자식이 엄마의 회개를 위해 날마다 기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선배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평생 자신을 한 번도 '교회를 떠났다'거나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선배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톨릭 신앙 때문에 고난의 세월을 견디어오고 헌신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선배는 다시 한번 교회에 정나미가 떨어졌을 게 뻔하다. 복음 앞에서 부끄럽게 사는 교회가 보잘것 없는 형식적 잣대로 신자들을 냉담자로 낙인찍거나, 가슴이 식었는지 미리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주제넘은 짓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야 말로 ‘내 탓이요!’ 운동을 자신을 겨누어 다시 해야 할 판이다.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 가여운 교회 그런데 가톨릭 신자였던 이 친구들 가운데 지금도 성당에 나가고 있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별로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소식이 닿아서 친구들을 만나면, 한 때는 첫 인사가 “너, 요즘 성당에는 나가냐?” 하는 질문이었다. 돌아오는 답은 ‘애석하게도’ "이젠 교회를 졸업해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네들은 예전보다 더 인간적으로 성숙해 있었다. 사회운동만 알던 사람이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전투적인 해방신학만 아니라, 자연에 맛들이며 사는 법을 몸에 익혔다. 많이 평온해지고 좀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신앙, 성당…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웃고 만다. 할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결코 냉담하지 않다. 여전히 가슴이 따뜻하고 복음적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당에는 나가지 않지만 사제들과 교회에 대하여 좀더 너그러워진 것 같았다. 상처 투성이 교회에서 벗어나자 심간(心間)이 편해진 것이다. 문득 예전에는 아이들 교리반을 초기교회 신자들이 쓰던 이름 그대로 ‘명도회(明道會)’라고 하였는데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있는지 궁금해졌다. 무조건 믿을 교리를 그저 답습하는 ‘교리반’보다는 진리를 밝히는 ‘명도회’란 이름에서 더 활력있는 신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잿밥보다 염불에 마음 쓰는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교회가 가여운 느낌을 자아낸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
||||||||||||
isu@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