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이름 천주교와 가톨릭

2011. 6. 1. 오전 10:20:01

글자
교회의 이름 천주교와 가톨릭
 
 
작성자   이석균(shloam2003)  쪽지 번  호   175819
 
작성일   2011-06-01 오전 8:29:14 조회수   51 추천수   1
 
내가 다니는 교회의 공식 이름은 무엇일까?
첫째,
교회 정문 오른쪽 기둥에 새겨진 이름은 “천주교 000 성당”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름이다. 교회의 소속은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건물과 각종표기에 붙은 이름은 천주교 속성은 로마 가톨릭 이다. 이와 같이 이상하게도 이름이 불분명 하게 두 가지를 혼용 하고 있다. 왜 “로마 가톨릭 000 교회” 라고 하지 않고 “천주교”라고 했을까? 천주교는 중국에서 유래된 한문 이름이다. 그러기에 미래에 문제가 발생된다. 중국이 동북아 역사를 기술 할 때 중국 천주교에 속한 한국 교회 라고 할 수가 있다.
 
또 하나 이유, 세상에는 많은 집단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단 하나이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서 가톨릭 교회를 찾고자 할 때 지금의 이름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이름을 이렇게 표기 할 때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가톨릭과 천주교는 다른 종파라고 혼돈 할 수가 있다. 따라서 교회의 이름을 명확이 정립(正立)표기 하여야 한다.
 
교황청에서 한국 교회로 보내는 공식 문서에는 어떻게 표기되어있을까?
 
둘째,
이름의 성격
가톨릭(Catholic); 전반적인, 보편적인 교회라고 …… 설명(Britannica 백과사전)
 
그런데
한문 그대로 해석 하면
천주교(天主敎); 天; 하늘 천/ 主; 주인 주/ 敎; 가르칠 교 이다.
따라서 이름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셋째,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필리핀 등등의 여러 나라에서는 가톨릭 교회 이름을 어떻게 표기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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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Catholic) 출처; yahoo 백과사전
 
처음 3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에서 이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 예루살렘의 성 키릴루스가 쓴 〈교리문답 Catecheses〉(348)인데, 이 책에서 그는 교회를 가톨릭이라고 부른 이유를 교회의 세계적 보편성, 교리의 완전성, 모든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에 부합되는 교회의 적응성, 도덕적이고 영적인 완전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가르쳐지고 행해지는 것이 진리라고 보는 이론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의 본질과 사역에 관하여 도나투스파(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 이단종파)와 벌인 논쟁에서 처음으로 완전하게 개진되었다. 이 이론은 또한 레랭스의 성 빈켄티우스가 쓴 〈보편성 Commonitoria〉(434)의 한 단락에 고전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 모든 시대에 모든 곳에서 믿었던 것은 진리로 인정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왔다. 성 빈켄티우스는 진정한 신앙이란 교회가 전세계적으로 고대인들과 같은 내용으로 고백한 것과 이전 세대의 다양한 신학적 의견들이 모여서 합의를 이룬 내용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정통적(orthodox)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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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창설배경
한국에 천주교가 창설된 배경으로 대외적인 것과 대내적인 것 2가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대외적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결과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조선의 학자들이 천주교를 서학의 일부로서 접하게 되었다. 북경에 왕래하는 조선 사신들은 서양문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식을 얻는 한편,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조선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 芝峰類設〉에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天主實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631년 진주사(陳奏使)로 베이징[北京]에 갔던 정두원(鄭斗源)과 1644년 소현세자(昭縣世子) 일행은 귀국하면서 서양의 과학기구와 서적을 가져왔고, 이익(李瀷)과 그의 제자인 안정복(安鼎福) 등은 천주교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갖고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를 했다. 이리하여 이미 17세기 초엽부터 조선의 지식인들 특히 남인(南人) 학자들을 중심으로 천주교를 지식의 차원에서 탐구하게 되었다.
 
둘째,
대내적으로 볼 때 조선 후기에 사회변동과 문화변동이 크게 일어남으로 인해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과 아울러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기근과 전염병 등 자연재해와 세도정치의 부패로 백성들의 생활이 극히 어려워졌다. 이에 기존의 성리학적 사상체계에 대한 반발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천주교 서적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져 실학운동에 자극을 주는 동시에 '서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을 낳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 후기 사회는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수용할 기반을 마련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관심은 서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나, 차차 지식의 차원을 넘어 실천의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서학을 신앙운동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권철신(權哲身)·이벽(李檗)·이승훈(李承薰)·이가환(李家煥)·정약전(丁若銓) 등으로 경기도 광주군 천진암(天眞庵) 주어사(走魚寺)에서 교리연구회를 갖는 등 천주교 교리를 연구·실천했다. 이벽은 북경에 가게 된 이승훈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으라고 권고했고, 이에 이승훈은 1784년 봄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이벽·권일신(權日身)·김범우(金範禹) 등 자신의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들은 함께 명례방(明禮坊: 지금의 명동성당 부근)에서 종교집회를 열어 최초의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탄생했으며 이것이 한국 천주교 교회의 창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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