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설악산 눈 ‘펑펑’…소청대피소 20㎝ 적설
등록 :2015-11-19 09:22수정 :2015-11-19 09:51
대구 성서공단 출신 IS 대원… 국정원에 의해 확인
상존하는 테러의 위협… 한국도 안심하기는 일러

아랍 언론은 지난 5월쯤 노획한 IS 대원의 물품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시리아 동북부 지역의 IS를 소탕한 쿠르드 민병대로부터 발견된 물건이었습니다. 대구경북에서 사용하는 대경교통카드(대구경북교통카드)와 공업사 사원증이 함께 발견됐죠.
국내 언론들이 이 소식을 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일보는 8월 [극혐뉴스] IS 대원 지갑에서 대구경북교통카드와 사원증 발견 기사를 통해 국내에서도 존재할지 모를 IS의 위험을 지적했습니다.
당시 IS가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안심할 순 없다”며 일본을 향해 경고를 날린 상황이라 국제 사회 안전에 대한 긴장은 높았습니다. 또 지난 2월 터키로 간 김모(18)군이 IS에 가담했고, IS가 태권도 품새 등을 훈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지구 반대편의 소식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죠.
한국은 국제 테러에서 안전하지만은 않습니다. 10여년 전에는 국내를 출국한 다른 테러범이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른 일도 있었는데요.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 조직원 중 니자르 나와르라는 튀니지 태생의 1997년 청년은 프랑스 리옹에 가려다 입국 비자를 받지 못해 한국을 택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공장에서 물건을 상자에 담고 차에 싣는 일을 하던 그는 주한 미군 부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진 촬영을 하는 행동을 의심 산 국정원에 의해 추방됐습니다. 튀니지로 돌아간 그는 2002년 4월 튀니지 섬 휴양지인 ‘베트 크네세트(유대교 회당)’에 가스통을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돌진해 자폭했습니다. 이 테러로 독일인 14명과 프랑스인 2명, 튀니지인 3명이 사망했습니다.
<관련기사>
[극혐뉴스] IS 대원 지갑에서 대구경북교통카드와 사원증 발견
“과거 IS 대원 품에 한국 사원증” 이슬라모포비아 스멀스멀… 페북지기 초이스
※☆오늘의 역사 (11월 19일)
[2009년]첫 EU 대통령 선출
오니쪽부터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와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2009년 11월 19일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의에서 EU 개혁조약인 리스본조약에 따라 신설된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헤르만 반 롬푸이(62) 벨기에 총리가 선출됐다.
이날 특별 정상회의에서 초대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이하 외교대표)로는 영국의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지명됐다.
롬푸이는 2008년 12월 벨기에 총리가 됐으며 당시 이브 르테름(Leterme) 총리가 권력 남용 스캔들로 사퇴하자 하원의장이었던 롬푸이를 벨기에 국왕이 후임 총리로 지명했다. 당시까지 벨기에 정계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벨기에의 지역 갈등을 완화시키고 글로벌 경제위기를 잘 견디어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숨을 쉴 때만 입을 연다' 는 표현처럼 조용한 성품으로 27개 회원국의 갈등을 조율하고 융화시켜야 하는 EU의 지도자로서 화합과 조화의 리더십을 기대받고 있다.
롬푸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중도 우파 정치인으로 현재 EU의 정체성을 잘 대표한다. 그는 네덜란드어·프랑스어·영어에 능통하고, 1990년대 벨기에 예산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재정 적자를 큰 폭으로 줄인 경제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속칭 'EU 대통령' 이라고도 불리는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EU 외교장관' 격이라 할 수 있는 외교안보 고위대표 까지 무난히 선출함으로써 EU는 정치적 통합이 한층 강화되고 대외적 영향력도 확대된 리스본조약 체제를 내달 1일 출범시킬 수 있게 됐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년 6개월의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EU 대통령으로도 불리지만 실권은 거의 없으며 EU 집행위원회는 별로도 선출된 집행위원장이 지휘하고, EU 각료 이사회도 6개월 주기로 순번 의장국의 각료가 의장을 맡는다. 그러나 EU를 대표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는다. 연봉은 30만~35만 유로(약 5억2000만~6억원)로 미국 대통령 연봉(약 4억6000만원)보다 많으며 22명의 개인 참모와 10명의 경호원, 상임의장 전용 리무진 승용차를 운전할 운전기사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수행한다.
2009년 패션모델 김다울 프랑스 자택에서 사망
2008년 행남자기 김준형 창업주 별세
2004년 광주, 수능 ‘휴대전화 부정’ 사건
2002년 7만7000여t 중유 실은 유조선 스페인해안 침몰. 해양오염 심각
1999년 중국, 러-미에 이어 세 번째로 무인우주선 발사
1995년 크바스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에 당선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사망
1986년 바람이 전하는 말 / 조용필
1984년 중단되었던 남북적십자회담 예비접촉 열려
1984년 멕시코시티 가스공장서 대규모 폭발사고 544명 사망. 주민35만명 대피
1982년 미국, 퍼싱II 미사일 발사 성공
1981년 여-야, 야간통금해제를 정부에 건의
1980년 KAL기 김포공항서 착륙중 화재 15명 사망, 15명 부상
1979년 계엄 당국의 휴교 조처 해제로 대학교 전면 개교
1979년 이란, 미국 인질중 여자등 13명 석방
1978년 북경에 모택동비판 대자보 등장
1977년 인도에 해일 발생. 2만여명 실종
1977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
1975년 유엔총회, 한국문제의 서방-공산측 두 결의안 동시채택
1975년 한-이란 각료공동회의. 한국의 대(對)이란 기술자 파견, 건설참여 등 10개항 조인
1968년 한국-스와질란드 국교 수립
1965년 바티칸 공의회, 신앙의 자유 선언안을 승인
1963년 몬트리올서 캐나다여객기 추락 117명 사망
1961년 네루-나세르-티토, 나세르에서 중립국 수뇌회의
1960년 북한, 남북연방제 제안
1957년 유엔총회, 군축위 확대안을 채택(25개국 구성)
1946년 대일(對日) 우편물 정식인가
1946년 유네스코, 파리에서 제1차 총회
1942년 소련군, 스탈린그라드서 독일군에 대반격 개시
1942년 대종교 주요간부 21명 구속
1924년 신사상연구회 화요회로 개칭
1917년 인도수상 인디라 간디 출생
1863년 링컨,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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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게티즈버그 연설
남북의 분열을 막아 미국이 세계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나고 4개월이 지난 뒤,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이 게티즈버그를 찾았다.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 국립묘지 개관식 자리였다.
링컨이 연단에 서자, 사람들은 당대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장장 2시간에 걸쳐 이미 1만5000명의 청중들을 울리고 웃긴 뒤라 링컨의 연설이 주목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87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로 시작된 간결하고도 감동적인 어조의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로 끝을 맺은 이날의 연설은 훗날 명연설의 고전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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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즈버그
1863년 11월1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대통령 링컨이 민주주의역사에 남을 만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이 유명하게 된 것은 민주주의의 정의로 자주 인용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구절이 거기서 언급되기 때문이다. 링컨은 이날남북 전쟁의 격전지인 게티즈버그의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식전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건국 이념을 강조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병사들이 자신들의 목숨과 맞바꾼 목적에 더 헌신할 것을 다짐해야한다고 말하고, 그 목적이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정부를 지상에서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게티즈버그에서는 그 해 7월1일부터 사흘간 북군과 남군 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진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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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11월 19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남북전쟁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서 전사 장병을 위로하는 연설을 했다. 300개도 채 안 되는 단어로 이뤄진 이 연설은 시적 간결성과 심오한 철학으로 미국 최고의 연설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미국 역사 교과서에 전문이 실릴 정도로 유명한 연설이다. 하지만 게티즈버그 연설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17일 게티즈버그 연설 150주년을 맞아 연설에 얽힌 재미있는 사실 5가지를 선정했다.
첫째, 연설의 정확한 단어 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5개 버전의 연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이 친구 5명에게 선물한 연설문의 단어 수는 265, 268, 270, 272, 273개로 조금씩 다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알렉산더 블리스 장군에게 선물한 272단어 버전이다. 블리스 장군이 소장했던 연설본은 백악관 링컨룸에 걸려 있다.
둘째, 링컨 대통령은 이날 연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매사추세츠 주지사, 주영 대사 등을 지낸 유명 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이었다. 에버렛의 기조연설이 끝난 후 링컨 대통령은 찬조 연설자로 나왔다. 에버렛의 연설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된 반면에 링컨 대통령은 2분 만에 끝냈다.
셋째, 연설 후 박수가 터지지 않아 링컨 대통령은 잠시 당황했다. 연설이 너무 짧아 참석자들은 연설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해 박수를 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연설 사진도 없다. 사진사가 카메라를 조절하는 사이 연설이 벌써 끝났기 때문이다.
넷째, 일각에서는 링컨 대통령이 기차로 현지에 가는 동안 연설 내용을 급조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링컨 대통령은 4개월 전 백악관에서 게티즈버그 연설 내용과 매우 비슷한 내용의 연설을 했다. 백악관 연설을 4개월 동안 다듬어 게티즈버그에서 한 것이다.
다섯째, 후임 대통령들은 게티즈버그 연설과 비교되는 것이 두려워 ‘게티즈버그 기념 연설’은 피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1963년 연설 100주년을 맞아 게티즈버그를 방문했지만 기념 연설은 사양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150주년 기념행사에 아예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은 50주년 기념 연설을 했지만 혹평에 시달렸다. |
1828년 슈베르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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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Schubert, Franz (Peter), 1797.1.31~1828.11.19]
오스트리아 대표적인 작곡가 슈베르트가 1828년 11월 19일 사망했다. 초기 독일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로 '가곡의 왕'으로도 불리운 그의 음악적 천분은 일찍부터 두드러져 8세때 교회에서 가창, 바이올린, 피아노, 오르간 등의 기초적인 지도를 받고 11세때 아름다운 소년 소프라노 음성을 인정받아 빈 궁정예배당의 합창아동으로 채용되어 국립 기숙신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궁정악장 A.살리에르에게 작곡법을 배워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1828년 31세의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도 오토 에리히 도이츠의 연대순으로 정리된 작품번호에 따르면 작품수는 998개에 이르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약 633곡의 가곡이다.
생전의 고전파시대에는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가곡이라는 예술부문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과 색채 넘치는 화성에 힘입어 비로소 독립된 주요한 음악의 한 부문으로 취급됐다. 대표곡으로 '실을 잣는 그레트헨'(1814), '들장미'(1815),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1923), '겨울나그네'(1827)등이 있으며 유해는 유언에 따라 전년에 작고한 벨링크묘지에 있는 베토벤 무덤 가까이에 묻혔다. |
1600년 영국 왕 찰스1세 출생
1598년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 노량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