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8주년 개천절
올해 10월 3일은 4348주년 개천절이다.
‘개천’의 본래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개천절은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기리는 날이다.
지난해 개천절을 맞아 서울 종로 단군성전에서 열린 개천절대제에 참가한 역사어린이합창단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개천절을 기리는 제천의식은 삼국시대를 거쳐 먼 옛날부터 전래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했다.
그러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1949년부터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한다.
개천절이 되면 가정과 관공서는 국기를 게양하며, 오전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공식기념 행사가 개최된다. 경축식에서는 대통령명의의 경축사를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식이 끝난 후에는 전통예술을 주제로 한 기념 공연 등이 이어진다.
한편, 우리나라 5대 국경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다.
개천절의 뜻과 의미 알아보기
2015/10/03 16:01
오늘 10월 3일 개천절입니다. 개천절의 뜻과 의미가 뭘까요? 일단 개천절은 한자로 풀어보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開天節(개천절) 바로 하늘을 열었다는 개천이라는 말이죠. 개천절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환웅이 하늘에서 백두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온 것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개천절에는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개천절이라는 이름은 대종교에서 비롯됐습니다. 1909년 1월 15일 나철을 중심으로한 대종교가 문호를 열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경축 행사를 했다고합니다.
개천절의 뜻과 의미가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임시 정부에서 음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정했으며, 국경일 지정 이유는 단군을 한겨레의 시조로 정하고, 고조선을 한민족 초최의 국가로 보는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지정됐습니다.
개천절의 뜻과 의미는 엄밀히 개천절 그러니까 개천(開天)이라는 의미는 단군조선의 건국일이 아니라 단군조선 보다 124년 앞선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아서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백두사 신단주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기원전 2457년 10월 3일을 뜻한다고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군조선인 고조선의 건국일로 알고 있다고합니다.
처음 개천절은 음력 10월 3일이였지만 해마다 양력으로 환산하기 어려워서 10월 3일 이라는 날짜가 의미가 있기 때문에 1949년부터 양력 10월 3일로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개신교는 개천절을 싫어합니다. 단군을 신흥종교나 미신으로 취급하고 전국의 단군상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었죠.
개천절 이란 무슨날일까요??
= 우리나라 건국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된 날입니다. 국경일이고요.
추가설명 : 단군기원 음력 10월3일 국조 단군께서 최초의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태극기
먼저 태극기에 대해 살펴봐요~~



태극기는 흰 바탕에 가운데 홍과 청의 태극문양과 건곤감이 4괘로 이루어져요~~
하얀 바탕은 밝음과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의미하구요~~
태극문양은 붉은색의 양과 파란색의 음의 조화를 상징하고, 대자연의 순리를 뜻하지요..
4개의 괘는 대자연 자체를 뜻하며..
건은 하늘, 곤은 땅, 감은 물, 이는 불을 뜻하고 각각의 모서리에 평행하게 놓임으로써
균형을 이루지요 ^^
광복절은 우리나라 5대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의 하나로
깃봉에 바짝 붙여서 다셔야 해요^^
현충일이나 국가장기간에는 태극기와 같은 높이만큼 띄워서 달아야해요~
안전행정부에 들어가니 자세한 설명이 나오더라구요~~
건물의 모습에 따라 달아야하는 위치가 다르네요~~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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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에 관한 모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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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처음
국기 이름은 '조선국기' 나라의 이름인 '조선'과 함께 '조선국기'라 불렀다. 당시 조선왕조를 나타내는 국가의 명칭이 '조선'이었기 대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나기전까지 27여년 동안은 '조선국기'로
불리어져왔었다. 바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부터였다. 18세기 말엽 조선왕조는 관리들의 당파 싸움과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나라 꼴이 허약해기기 시작하였다. 이런 기회를 노려오던 일본은 마침내 1910년 조선왕조를 송두리채 빼앗아갔다. 이에 격분한 애국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으로 일본에 맞섰다.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독립 만세 운동를 펼치기로 하였다.
이날 참여한 모든 국민들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손에 손에 '기'를 들고 나 오기로 하고, '기' 제작을 하였는데,그때만해도 '조선국기'로 부르던 국 기 이름을 일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부터 새롭게 퍼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만들고, 국기를 바라보며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해방되기 3년전인 1942년 3월 1일에는 한국 임시정부수립 23주년 3.1절 선언문을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국기 이름을 '태극기'로 정하고 그 존엄성 을 명문화 하였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그로부터 태극기는 한국의 독립주권을 표시하였다. 그러므로 3.1대혁명 발동에 있어서도 여전히 태극기를 썼으며, 그 깃발은 혁명군중의 선혈에 물든 채 적의 총검 위에 꽂혀졌다. 이처럼 태극기는 3.1대혁명의 발동을 위해서도 없을 수 없는 큰 힘이었 으니, 한국 주권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역사의 빛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인 살고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한 폭의 태극기를 걸어 놓고 자신이 조국을 잊지
않고
있으며,나라를 되찾겟다는 민족적 신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결심을 표시하여 왔다.」 1876년에 있었던 병자수호조약을 맺을 때 부터였다. 조약을 맺기 1년전에 일본은 우리에게 문호 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면서 강 화도 초지진에 우리의 허락도 없이 군함 운요호를 정박시켰다. 강화도를 지키던 우리 수비병대가 즉각 대포를 쏘며 대항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군함 운요호에 게양된 일본기가 불타 버렸다. 이 사건은 이듬해 강화도 회담에서 우리정부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즉, 군함을 허락없이 정박했다 하더라도 국가를 표시하는 일본기를 엄연히 게양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포격을 하게된 이유를 따지자, 우리 정부는 속시원하게 대답할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만해도 우리 정부에서는 국기라는 말 조차도 없었으며, 도대체 무엇을 국기라고 하는지 조차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난처한 입장을 눈치 챈 중국은 황준헌이라는 사신을 통해 삼각형 바탕에 용을 그린 중국의 용기를 본받아 국기로 그려 사용할 것을 간섭하기도 하였다.
그후 우리나라와 중국은 아예 국기 만들기 연락 사신을 임명하여 수시로 접촉토록하였는데 우리나라측 사신은 이응준이었고,중국측은 마건충이었다.
이때만해도 우리나라는 국기에 대하여 마땅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 못한 터라 이미 대륙을 상징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하여 집요하게 간섭을 하게 된 까닭은 조선왕조의 땅 한반도를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일방적으로 우리의 문호를 요구하면서 허락도 없이 강화도에 그들의 군함 운요호를 무단 정박시켰다. 이에 격분한 강화도의 우리 수비병대는 즉각 대포를 쏘며 대응했다.
없었다. 우리 수비병대가 가지고 있는 대포의 사정거리는 멀리 나가봐야 칠백여 미터 정도였지만, 일본이 무장한 대포는 그 보다 몇배 멀리 나갈 뿐만 아니라 명중률이 매우 높았다.
그러니 피해는 당연한 우리 수비병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런 피해를 당하고도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보상 요구 조차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이 더 피해 요구를 많이 해왔다. 대포에 의해 불타 없었졌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트집은 이러했다.
나라를 표시하는 국기를 달고 바다를 운항하는 모든
배들은 전쟁이나 약탈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데, 강화도 수비병대는 그것을 무시하고 포격을 했고, 더군다나 나라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일본기를 고의적으로 명중시켜 불태웠다는 주장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우리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일본은 수비병대 35명의 목숨을 잃은 것 보다 더 분노에 차 있었다. 일본기를 대포로 쏘아서 불태운데 대한 응분의 사과와 보상이 없으면 정식으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위로 간주하여 이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니 참으로 답답할 일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우리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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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서울세계불꽃축제 2015'가 3일 개최되는 가운데 행사가 열리는 저녁 날씨가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가을 밤하늘을 화려한 불꽃으로 수놓을 '서울세계불꽃축제 2015'가 3일 오후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다. 서울의 대표 축제로 자리잡은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올해로 벌써 13회째를 맞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3일 서울의 날씨는 맑음이다. 다만 비온 뒤라 날이 쌀쌀하다. 더구나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은 체감온도를 더욱 내려가게 한다.
특히 이날 행사가 열리는 저녁 기온은 17~20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초속 2m의 람도 불 것으로 예상된다.
쌀쌀한 날씨로 인해 서울세계불꽃축제 명당에서 즐기는 이들은 긴소매 옷과 무릎담요, 장시간 앉기에 도움을 주는 돗자리 등을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한편, '세계불꽃놀이축제 2015'의 명당으로는 여의도 공원, 이촌 한강공원, 노들섬, 선유도 등이 손꼽힌다.
화려한 불꽃으로 위로 받은 밤 2015.10.03. 22:07
화려한 색과 모양, 압도적인 규모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불꽃축제는 화학과 로켓 발사원리, 컴퓨터 프로그래밍, 음악 등 각종 기술이 결합된 종합예술로 변신하고 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이날 저녁 7시20분 기준 영등포 일대에는 45만명, 용산에는 23만명, 마포에는 2만6000명, 동작에는 1만1000명의 시민들이 모여 불꽃축제를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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