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정은 인간 사회의 기초 공동체
가정은 하느님의 풍요로운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을 통하여 시작되며, 부모와 자녀의 자연적 생활 공동체인 동시에 인간 사회의 구성세포로서 자리 잡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사랑과 일치의 소명, 능력, 책임을 부여하셨고, 인간은 이러한 사랑과 일치와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혼인을 하게 된다. 즉,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창세 2:24, 마태 19:5, 에페 5:31)는 성경적 근거에서와 같이 인간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그 중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가 혼인을 통하여 형성되는 ‘가정 공동체’이다. 즉,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에 대한 신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하느님의 축복으로 마련된 공동체이며, 사랑으로 시작되어 사랑으로 유지되며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공동체, 더 큰 공동체인 사회를 지향하여 봉사와 사랑의 실천을 가르치는 교육의 공동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육성하는 생명의 공동체, 하느님 안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복음을 실천하는 가정교회의 공동체이다.
2. 가정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길
교회가 가야할 길인 인간의 길 가운데 "가정이 첫째가는 길이요 가장 중요한 길이다"(요한 바오로 2세, 가정교서 2항). 가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길로써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가정으로부터 나와 새로운 가정 안에서 자기 인생의 구체적인 소명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창조주 하느님과 일체이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정을 통하여 인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은 인간의 구원에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게 웅변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가정에 대한 봉사를 자신의 근본 의무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3. 현대세계의 가정상황
현대의 가정이 처한 상황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세계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징표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자유에 대한 더욱 활기 있는 인식, 혼인에서 상호관계의 질에 대한 더욱 큰 관심, 여성 존엄성의 촉진, 책임 있는 출산, 자녀의 교육 등에 대한 좀 더 깊은 관심이 있다. 또한 가정간 상호관계의 발전, 영적이며 물질적인 면에서의 상호 협조, 가정의 교회적 사명과 더욱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가정적 책임의 재발견의 필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부정적 측면으로는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거절하는 징표들이다. 예를 들면 배우자 상호관계에 있어서 독립성에 대한 그릇된 개념, 부모자식간의 권위관계에 관한 오해, 이혼의 증가, 인공유산의 폐해, 불임수술의 증가, 피임사고방식의 출현 등과 생존 필수수단과 아울러 가장 기본적인 자유마저 없는 제3세계의 실정 등이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현상의 근저에는 관념의 타락과 더불어 자유의 개념이 혼인이나 가정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능력으로 체험되기보다는 흔히 타인에게 해로워도 자신의 이기적 안녕을 위한 자기주장의 능력으로 체험되는 경험이 깔려있다. 이렇듯 가정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빛과 어두움의 교차 지점으로 보여 진다.
4.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
현대인의 가정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어 정상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회의 길인 가정이 갈 방향은 무엇일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에 대해서 한 마디로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신다.(가정 공동체 17항) 본연의 것이 된다함은 다름이 아니라 '시작'에로 돌아가는 것, 하느님의 창조행위의 시작에로 돌아감을 뜻한다. 다시 말해 가정은 본래 하느님이 계획하신 대로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 돌아갈 때,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할 사명’을 수행하여 본연의 것이 된다. 결국 가정의 본질과 역할은 사랑이라는 말씀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 사랑에 의해 세워지고 생명을 받는 가정은 인간들의, 곧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친척들의 공동체이다. 가정의 첫째 임무는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적 노력을 쏟으면서 일치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임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 없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 완성될 수 없다.”
5. 성사로서의 혼인
가정은 혼인으로부터 출현한다. 아울러 혼인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고 가정 안에서 성숙되고 성장한다. 혼인에 비해 가정은 더 포괄적이고 더 깊고 넓은 삶의 공동체이다. 이러한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전인적인 발전을 지향하면서 이루는 삶의 공동체로서 혈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전면적인 인간관계를 가지지만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공동 관심사나 서로간의 이득을 위해 발생되는 여타 집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공동체이다. 모든 혼인이 종교적 성격, 거룩함의 특성을 가지듯이 특히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자연의 의무, 곧 자연법상의 제도일 뿐 아니라 하나의 ‘거룩한 성사’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의 자연적 혼인은 그 자체로 성사가 된다. 따라서 혼인은 부부가 서로를 주고받는 결코 철회할 수 없는 인격적 상호 동의로써 성립되며 부부생활과 부부 사랑의 전체적이고 영구적인 공동체이다. 이러한 유대로써 이루어지는 혼인과 가정은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로써 유지되고 발전되고 완성으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은 가정이 성립할 수 있게 하는 전제조건이 되며 동시에 결혼과 가정을 성장, 성숙시켜주는 원초적인 힘이 된다. 이러한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더욱 더 순수하고 성스럽고 완전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성체성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혼인과 가정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가정생활은 가족 구성원들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룩한 혼인, 성화된 가정, 가정교회는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셨듯이 부부도 서로를 위해 일생을 다 바치는 성체성사의 삶, 곧 참된 부부 사랑으로 이룰 수 있다.
6. 나자렛 성가정
나자렛 성가정은 인류 사회가 하느님을 향하여 발전하도록 제시한 모범이 되는 가장 훌륭한 가정이다. 요셉과 마리아 두 성인 성녀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이 가정은 하느님께서 흡족해 하시는 삶의 분위기였으므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성가정의 모범인 틀이다. 성자인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기를 원하였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자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루가 2, 51)”라는 복음의 내용에 근거할 때, 예수님은 친히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면서 이상적인 그리스도교 가정의 모범이 되는 탁월한 가정생활을 하였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개방성과 이웃을 위한 연대적인 삶 안에서만 참 가치가
확인되는 가정이며, 하느님을 체험하는 친교의 현장으로서 거룩한 가정이다. 또한 이 성가정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가정의 원형이요 모범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활력이 넘치고 빛을 발하는 신앙의 요람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을 오랜 된 교회의 표현에 따라 ‘가정교회’라고 부른다. 가정은 그리스도교 삶의 첫 번째 학교, “풍요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이다. 그러므로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는 모든 그리스도교 가정은 인내와 노동의 기쁨, 형제애, 거듭되는 너그러운 용서, 그리고 특히 기도와 삶의 봉헌을 통해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 로마 서간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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