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울 지역 남성구역 봉사자 피정. 2010년 3월 14일.

2010. 3. 16. 오후 6:47:13

글자

신앙인의 재테크
이지순 교수님 (서울대 경제학과)

1. 신앙인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1) 부자가 되고픈 마음은 인지상정
(2) 신자들의 고민: 모든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vs. 우리에게 주신 talent를 잘 쓰지 못했다고 꾸지람하신 것을 보면 주님이 맡기신 재능으로 돈도 벌어야 하지 않을까? 가정을 꾸려 세상을 살아가는 하느님사업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3) 신자들의 실제 태도: 돈과 물질에 대하여 상당히 부정적인 신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돈과 물질을 매우 중시한다.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책망하며 욕심을 절제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실생활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며,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지만, 곧바로 더 벌려고 애쓰며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버둥거리게 된다.
(4) 교회의 가르침: 절제된 자본주의는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함. 자본주의를 인정하되 법적인 장치(=인간의 윤리적, 종교적 자유를 보호, 신장하는데 공헌할 수 있는 장치인 경우) 를 통해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유도해야함 (요한 바오로 2세, 1991).

2. 신앙인의 재테크 (몇 가지 원칙)
(1) 신앙인도 재테크를 잘 해야. 가톨릭 신자라고 돈 버는 행위를 백안시 말아야 (결혼해서 자손을 낳아 번창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할 때,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은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은 일. 법과 규범을 준수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해야).
(2) 근검절약이 첫걸음. 재테크: 재산을 늘리기 위한 우리의 경제행위. 벌어들인 소득을 알뜰하게 씀으로써 투자할 몫을 남기는 행위는 칭찬받을 미덕. 법을 지키며 세금을 제대로 내야함.
(3) 하느님의 뜻에 맞는 재테크 여야. 공정한 경쟁의 룰을 어기고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많고, 신자만 타인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처럼 불안을 느끼게 되겠지만 → 하느님의 셈법으로 법을 지키는 것이 설사 손해이더라도 구원에 이르는 길.
(4) 재테크에 절제는 필수 - 헛된 욕망은 파멸의 지름길. 돈이란 수단일 뿐이다 -건강, 행복, 나눔, 구원, 빈민구제, 봉사 등 더 큰 가치를 위한 수단일 뿐. 돈을 버는 일에는 절제가 필요하며,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므로 모든 면에서 절제하며, 조금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수준에서 멈추어라. 재테크를 하더라도 그 일에 몰두하지 말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목표수익율을 정한 다음, 실제 수익률이 그 수준을 넘으면 투자대상을 처분하라.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며, 빌린 돈으로 위험이 큰 투자에 나서지 말라.
(5) 은퇴후를 대비하자. 수명이 점점 길어져 은퇴후에도 소득과 일이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한다. 검소하게 살면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6) 재테그와 신앙인의 자세. 하느님의 뜻에 맞게 재테크하자 (하느님의 뜻: 부동산-나쁜데 쓰이지 않도록, 주식: 나쁜 기업은 피하고, 공평, 공정, 정당한 대가만 받아라. 사기를 치거나 거짓 불법은 안 됨)

3. 진짜 남는 장사는? 더 좋은 재테크
(1) 사람에 대한 투자: 자신, 가족, 이웃, 세계 (건강증진, 지혜개발, 근면 성실한 노동을 통한 숙련과 경험 축적, 좋은 이웃과의 사귐)
(2) 영생을 얻기 위한 투자: 영생을 위한 투자 수익율 = 무한대. 영혼을 아름답고 맑게 - 자식들을 하느님 안에서 키우자. 이웃을 사랑하자. 재산과 육신은 모두 사라진다. 잘 관리하라고 잠시 맡겨두신 것일뿐 - 그러니 잘 관리하되 그 과실은 나누어 써야한다. 재산을 남겨두고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유산을 남기는 것은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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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들보 (화해와 용서)
안향 신부님 (사목국 성서사목부)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7,3)

1. 착각에서의 탈출
▸우리는 무의식중에 악한 것에 마음이 끌린다.
▸그것을 인지하게 되면 자신을 합리화시키거나,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악과 잘못을 들춰낸다.
▸오히려 자신이 선한자 이며, 의인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즉 완덕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모습이다. 

<악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심리>
(1) 부자가 되고픈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내 삶에는 악한 것이나, 죄가 절대로 없다고 생각함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 차차, 광적인 완벽주의에 빠지거나 반대로 악에 완전히 굴복하게 된다.

(2) 악을 무시하려는 심리
▸악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아예 무의식 속으로 추방.
▸겉보기에는 악으로부터 멀어져 평온해 보이지만, 특별한 상황에 무의식적으로 폭발하거나 (술자리에서), 아예 악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하지도 않게 되는 무기력에 빠지고, 중용의 미덕을 가진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판단력이 상실됨.

(3) 투사심리
▸우리가 잘못을 범하거나 한계를 노출할 경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죄와 벌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려는 심리작용.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특정 인물에게 쏟아넣는다. 그를 비난하고 단죄, 경멸함. 투사자는 그 악을 거슬러 만족함을 얻게 되고, 그 악이 자기와 연관 없다는 착각에 빠짐.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90%는 나의 부족함을 갖고 있는 사람임.


2. 똑같은 죄의 반복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책망하는 마음인 자책감은 건전하고 건설적인 자책감과 유치하고 파괴적인 자책감으로 구분가능함.
(1) 건설적 자책감
▸나에게 중대한 가치를 나 스스로 위반하였다고 느꼈을 때 발동.
▸책임있고, 성장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데 필수적임.
▸가치를 상실한 데에 대한 후회.

(2) 파괴적 자책감
▸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때 발동.
▸자아를 폐쇄시키고 성숙을 차단.
▸체면을 잃었다는 수치심.

※ 참회는 죄와 잘못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지만, 가책은 사람이 죄와 잘못을 다시 범하게 만듬.


3. 과소평가된 하느님
   위의 자책감은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의식인데, 이 자책감은 종교적 의식인 죄의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즉, 자기 양심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차원을 초월하여 '하느님 앞에서 죄인'임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자책감에서 죄의식으로 넘어가는 것임.
(1) 죄의식
▸하느님을 상심시켜드렸음을 스스로 깨닫고 애통해 할 때 생김. 하느님 없이는 선도 악도 따로 없고, 그저 주관적이고 도덕적인 평가만이 존재함.
▸사람이 하느님과 만날 때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 자기는 죄인이라는 의식이다. 자기 죄를 깨닫게 하지 않는 하느님 체험은 참다운 하느님 체험이 아님.

(2) 초월성
▸신앙의 선조가 가졌던 하느님께 대한 기본적 인식은, 인간이 하느님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초월성임.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친밀감,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만 강조된 신앙생활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지 못하게 됨.
▸고개도 들 수 없을 정도로 초월자이신 하느님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오직 하느님께만 있음을 받아들이게 됨.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우리에게 죄의식이 생겨나고, 선하신 하느님의 뜻을 어겼다는 후회가 자연히 생겨남. 이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진실한 참회도 불가능함.


4. 하느님 말씀만이 등불
(1) 양심성찰
▸하느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한 방법은 양심성찰을 하는 것임.
▸양심성찰은 내 안의 악을 발견하고, 그것과 맞서고, 선으로 넘어가는 가장 확인한 방법임.
▸우리가 죄를 무시하거나,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모습을 없애려면 먼저 우리 자신 안에서 그 악을 찾아내야함.
▸자신의 악을 제대로 바라오는 문제는 모두가 초보자임을 인정해야 함.

(2) 매일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 앞에서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죄, 수치스러워 숨기고 싶어 하는 죄까지 드러남. 우리의 진면모나 은밀한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양심성찰을 해야 함.
▸하느님 말씀 안에서의 성찰은 무의식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내가 간과했던 죄까지도 더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알아차리게 해줌.


5. 나는 누구인가?
   만일 양심성찰이 나에게 별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아마도 내가 겪은 일상생활을 무의식적으로 별 생각 없이 훑어보았을 뿐이며, 내가 과연 누구인가를 살피는 깊이 있고 의식적인 성찰을 하지 않았기 때문임.

<양심성찰의 방법>
(1) 동기와 지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찰을 할때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 외에도 '왜', '무슨 뜻으로' 하였는지 알아야 한다(지향 알기). 우리는 늘 무시해온 바가 서서히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된다.

(2) 선을 태만히 한 죄에 대해서도 살펴야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는 기준이 '최대한' 인지, '최소한'인지 의미를 판단해야함. '최대한'이라면 어제 보다 발전된 오늘이었는지 반성할 것이고, '최소한'이라면 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에 만족할 것임. '최대한'을 추구해야.

(3) 인간이 자기의 악을 타인에게 덮어씌우려는 성향이 있다면, 양심성찰 중에는 정반대의 성향을 키우도록 힘서야함.
▸타인이나 공동체의 악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한 나 자신의 책임을 느끼고 파악해야. 어떤 악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직간접적으로 내 역할이 들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맺음
   양심성찰은 양심을 형성시킨다. 이처럼 형성된 양심은 깊이 죄를 깨닫고 뉘우치게 만들며 죄라는 것이 하느님 사랑에 대한 체험임을 통감하게 하며, 죄를 범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거절하고 거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서울 지역 남성구역 봉사자 피정
2010년 3월 14일 (주일) 10:00-16:30, 명동성당 꼬스트홀

 

댓글 1

  • 2010년 3월 17일 오전 12:02

    수고 하셨습니다.사순시기 전달 교육으로 적절한 내용입니다.다시 한번 성찰의 시간이 됩니다.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