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2001. 1. 7. 오후 5:44:27

1
글자

김광석 5주기였다네...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김광석의 죽음을 접했던 그날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연합회에서 부서원 피정이 있던 날이다. 피정 장소가 부천에 있는 관계로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었다.

나보다 먼저 와있던 몇명의 사람들(내 기억엔 당시 회장단으로 기억된다.)은 여기저기 흩어져 토막잠을 자고 있었고 나 또한 별루 할 일이 없어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 누가 버리고 간 것인지 구석에 구겨져 있는 스포츠신문 한부를 발견했다. 1면에 크게 새겨져 있는 "김광석 자살"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기사를 읽어보면 김광석이 자살하는 어떤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는 얘기겠지라며 기사내용을 한자한자 조심스레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계단 난간에 목을 메어 자살이란다. 어떤 드라마의 한토막이 아니라 사실이란다. 너무 심란하다. 정말? 왜? 무슨 이유로? 사실일까? 곧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서둘러 피정을 시작하려하니 성당으로 모이라고 한다. 미사로 피정을 시작하는데 도대체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머릿속엔 김광석 생각으로 가득하다.

김광석이 죽기 전에 그이 콘서트를 두번 간적이 있었다.

한번은 박학기와 조인트 콘서트를 했을 때였고 또 한번은 학전에서 가졌던 그의 1000회 기념 콘서트였다.

1000회 기념 콘서트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서른즈음’에란 노래를 마치고 "이 노랜 제 나이 서른에 느꼈던 그런 느낌으로 만든 노래거든요, 근데 제나이가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게 되네요. 전 마흔에는 떠날거에요.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 떠날거에요. 식구들이야 내가 그동안 벌어준 돈 있으니....뭐라구요? 오토바이에 발이 닿냐구요? 저 발 닿아요......" 그래 그는 그렇게 자기가 했던 얘기처럼 가족들을 두고 떠나버렸다. 근데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직도 난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쪽에 심증을 두고 있는 사람중 한명이기는 하지만 ...)

그렇게 애석하게 그가 떠나버렸다.

그가 없어서일까 그의 노래는 더 많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고 있고 나 또한 어제 노래방에서 젤 먼저 ’서른즈음에’란 노래를 불렀다.

김광석 노래가 참 좋다. 듣기 참 편한 그의 목소리도 그렇고 노랫가락도 그렇고 특히 노래가사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많이들 동감하겠지?)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고 난 방안에 콕 틀어박혀 라디오를 들으며 바느질 하고 있었고 그러다 이금희 시간에 어제가 김광석 5주기라는 얘기와 그의 트리뷰트 앨범 작업을 함께 한 박학기와 장필순이 나와 그의 노래 얘기와 이것 저것을 말한다. 갑자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울컥 솟는것 같았다. JSA 영화에서 송강호가 "광석이는 왜이렇게 빨리 죽었대?"했던 그 대사처럼 나도 모르게 "김광석은 왜 그렇게 갔을까?"하는 소리를 내 뱉는다.(정말 자살했을까?)

요즘 난 미치고 팔짝 뛸 만큼 우울한 일 투성이다. 김광석을 생각하니 더 우울해진다.

오늘은 하루종일 김광석 노래를 들어야 겠다. (우울할땐 더 우울한 노래를 들어야....)

 

 

 

종민...

 

 

덧붙임

아차~~ 내가 아는 어떤 분이 한 말인데.....

이등병의 편지의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그 부분을 들을때마다 ’저 노래에 우리마을 보일라(boiler)얘기가 왜 나오는걸까’라고 했다는거 있지! 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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