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0일 (자) 사순 제4주일

2013. 3. 10. 오전 7: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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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0일 (자) 사순 제4주일 하느님께서는 죄인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 사순 시기를 '은혜로운 회개의 때'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잘못을 뉘우쳐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비로운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작은아들의 모습처럼,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청합시다. 독서 <하느님의 백성은 약속된 땅에 들어가서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여호 5,9ㄱㄴ.10-12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2코린 5,17-21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루카 15,1-3.11ㄴ-32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였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뒤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먹으며 지내야 했던 그들이 비로소 조상들이 살았던 고향에 되돌아온 것이다. 이들은 이제 새로운 삶을 파스카 축제를 통해 경축한다(제1독서).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사람들을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의롭게 하신 것이다(제2독서). 자비로운 아버지는, 가산을 상속받아 방탕하게 살다가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작은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자비로운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 그리하여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그 무엇보다 기뻐하신다(복음).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깨어질 수 있는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를테면 사장과 직원은 깨어질 수 있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 이해타산에 따라 결합되거나 강제로 구속되는 경우입니다. 곧 계산적이거나 강압적인 관계입니다. 그 반면에 깨어질 수 없는 관계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을 끊는다고 말하여도 자식인 이상 어디까지나 자식으로 남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어떤 계산에 따라 결합된 것도, 강제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었습니다. 깨어질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굶어 죽을 정도의 알거지가 되자 아버지에게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때 아버지의 행동은 그가 아들과의 관계를 끝까지 깨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저 멀리 돌아오는 아들을 미리 알아본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들은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기를' 바랐지만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며 잔치를 베풉니다. 곧 아들은 여전히 깨어질 수 있는 관계인 '종'이 되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깨어질 수 없는 관계인 '아들'로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결코 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오랜 기간 교회를 떠나 있었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원망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서 내쫓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깨어질 수 없는 관계, 곧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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