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누가 젊은이입니까?

2023. 5. 29. 오전 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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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누가 젊은이입니까?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축제 ‘World Youth Day’는 처음 시작할 때 

‘세계 청소년 대회’로 번역되어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청소년’들이 거의 참석하지 못하고 대부분 ‘청년’들만 참석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번역을 ‘세계청년대회’로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칭과 관련해 또 다른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정작 다른 나라에서 참가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 

다수인데 우리는 점점 그야말로 ‘청년’들만 참가하는 것으로 굳어져, 막상 

현장에서 같이 어울리기가 멋쩍은 느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러 가지 지원을 통해 청소년들의 참여를 확대하긴 했지만 

‘청소년 참가자가 많이 늘었다.’라는 평가조차 그 구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구에서는 ‘juventude, jeunesse, youth’ 라는 말 속에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사춘기 이후의 ‘젊은이’들을 담아내는 데 비해 우리는 청소년과 청년이라는 

경계에 갇혀 그들을 한번에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구분의 문제는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할 때만이 아니라 청소년, 

청년들을 동반하는 모든 현장에서 주요한 고민이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인구도 많고 신자도 많을 때에는 세세하게 구분하여 그룹을 짓는 일이 아주 

유용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했고요. 그런데 이제 공동체의 규모가 줄어들고 그 구분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져 이렇게 저렇게 경계를 허물고 통합을 하다 보니 

‘유아-어린이-청소년-청년’이라는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경계가 생각보다 선명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고전적인 발달 개념을 토대로 한 학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사목 현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어린이이고 어디서부터 젊은이인지, 어떻게 그룹 

짓는 게 좋은지 하는 물음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이라는 기준으로 모든 사람이 유사한 발달 과정에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여전히 유효한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사회나 인간이 변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 잠시 입다 벗어 놓았어야 하는 옷을 계속 입고 다니면서 우리를 그 옷에 

끼워 맞추고 ‘원래 그런 거야.’라며 살아온 결과는 아닐까요?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러한 생각들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선물이 바로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경계와 구분을 허무는 

일이셨기 때문입니다. 

언어도, 나라도, 문화도, 인종도 다양하지만, 사실은 하나로 수렴된다는 신비를 

성령 강림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애들이 뭘 알아. 우리가 정해줘야지’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 

‘그건 청년들 시키면 되지.’ 

‘ 중2병이네.’ ‘넌 나이 먹을 만큼 먹고 그것도 몰라?’ 

‘나이도 어린 게 건방지게!’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눈을 감고 나는 어떤 경계에 갇혀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승주 대건안드레아 신부 | 청소년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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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요한20,22)


어둠 속의 성당 내부는 태양이 떠오르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빛과 색채로 물들여집니다. 

그것은 마치 성령이 참된 깨달음과 순수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아담에게 불어넣으신 첫 호흡은 예수님의 성령의 숨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고 빛이 가득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작품 설명:성령:박정석 미카엘 | 루크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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