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1일(가해)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2023. 5. 21. 오전 5: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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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1일(가해)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며 홍보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심을 기뻐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립시다. 

주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우리 인간의 품위를 들어 높이신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로 다짐합시다.


입당송 | 사도 1,11 참조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주님은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알렐루야.


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사도 1,1-11


화 답 송 | 시편 47(46),2-3.6-7.8-9(◎ 6)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또는 ◎ 알렐루야.)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


제2독서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에페 1,17-23


복음환호송 | 마태 28,19.20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


복 음 |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마태 28,16-20


영성체송 | 마태 28,20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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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 성녀 김성임 마르타 (1787~1839


인천 부평(富平)에서 태어난 김성임은 혼인에 실패한 뒤, 서울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점쟁이와 재혼하였다. 

이때부터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남편이 죽은 뒤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천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을 지녔던 김성임은 1839년 4월 11일, 자신이 

몸 붙이고 있던 이매임의 집에서 이매임과 허계임, 이정희와 이영희 자매, 김 루치아와 

함께 순교를 결심하고, 이미 체포된 남명혁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그리고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후, 같은 해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아 50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성화_이희문 作,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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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르신 하느님, 우리 곁에 계신 하느님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물리치신 부활의 승리를 통하여 다시 

하느님의 자리로 올라가심을 기념합니다. 

나아가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로 올라가리라는 희망을 간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보내면서 승리와 기쁨과 희망이 아닌 감정들을

느끼기도 합니다. 

왠지 모르게 우리의 주님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은 

황망함이 우리를 덮쳐올 때가 있음을 종종 느낍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시선도 하늘에 멈추어 버렸던 

것이겠지요.


우리가 느끼는 이 아쉬움의 이유는 하늘이라는 거리감에 있다고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으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어렵다고 느껴지거나 하느님은 

때로는 멀리 계시는 분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이 세상에 머무르는 우리와 이 세상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하늘이라는 물리적 거리와의 차이에 기반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하늘을 만져 보거나 하늘에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은 하늘을 동경하거나 하늘의 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하늘을 연구하기도 마침내 하늘을 날아가거나 하늘을 뛰어넘어 우주를 

향해 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의 두 발이 이 세상과 이 땅 위에 머물러야 하는 한, 하늘은 여전히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거나 우리에게는 너무 먼 공간에 그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분명 우리 곁에 계신다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주님의 승천 사건이 아쉬움과 

황망함, 너무나도 먼 거리의 차이를 느끼는 사건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늘은 늘 우리와 함께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 세상의 꼴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부터 하늘은 늘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첫 인간의 범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하늘은 우리 위에 있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 이후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느님의 다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하늘이 거두어진 적은 없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심을 믿는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짚어줍니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하늘처럼 늘 우리 곁에 계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에도 우리가 당신을 깨닫지 못한다 해도 우리와 

함께하셨고,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했고 그분의 부활을 직접 체험하면서도 승천의 

순간까지 의심하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 버리시자 길을 잃어버렸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도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느님,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선언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하늘에다 

터전을 마련하시고, 우리가 그 하늘을 바라보며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동경하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희망 속에 살아가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승천이란 우리의 

주님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하늘로 오르십니다. 

우리도 오늘 하늘을 바라보며 그분과 함께 살아갈 희망을 간직하도록 합시다.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시편 47(46),6 참조)



-신형학 대건안드레아 신부 효성동 본당 보좌(인천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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