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나를 해방시킨 한 마디 “괜찮다”

2023. 5. 9. 오전 4: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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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나를 해방시킨 한 마디 “괜찮다”



검은색 치마 교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묶은 채 캄캄한 골목을 잰걸음으로 걸어가는 

여고생. 제가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제 모습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저는 그렇게 매일 아침 등교 전 혼자 성당에 들렀습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성당까지는 그 나이 아이의 걸음으로 15분 거리였는데 집을 나서는 시각은 

항상 6시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춥고 어두운 겨울날 골목길 어딘가에서 개라도 짖으면 너무 무서워 전력 질주하곤 

했지요. 


그렇게 성당에 도착하면 문이 잠겨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날과 성전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 날이 반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 문은 항상 열려있게 됐습니다. 

어떤 아이가 매일 새벽에 오는 것을 알게 된 본당 신부님께서 더 일찍 문을 열어두게 

해주셨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성당에서 저는 무엇을 했을까요? 

새벽 미사를 드리거나 성체조배라도 했다면 그럴싸했겠지만 들으시기 허무하게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20분쯤 앉아 있다 나오는 게 다였습니다. 

캄캄한 대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감실의 작은 불빛을 따라 걸어간 다음 제일 앞자리에 

앉아 그냥 그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나오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상은 3년 동안 하루도 쉼이 없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움직이게 했을까요? 

그 당시 제 마음은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시림이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춘기 소녀들도 다 겪는 감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 당시 외로움은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위로받을 곳도 딱히 없었습니다. 

힘들다고 청원의 기도도 해보고 도망가고 싶다고 주님께 떼도 써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성전에 혼자 들어가게 

됐는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맥이 다 풀리는 느낌이랄까요? 

그냥 마음이 무장 해제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 걱정도, 외로움도, 두려움도, 심지어 생각도 없어지는 붕 뜬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참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주님의 음성이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세실리아야, 괜찮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괜.찮.다. 그 세 글자는 이제까지 들었던 최고의 위로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저는 그 음성을 들으러, 그 온기를 느끼러 새벽부터 신발을 신었던 겁니다. 

그리고 감실 앞에 앉아 그저 한껏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운으로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3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쌓이고 쌓여 제게 주님이란 존재는 ‘새로고침’ 되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의 주님, 덮어 두고 위로해 주시는 주님으로요. 

이제는 마음이 무너질 때도 굳이 캄캄한 성전 문을 열진 않습니다. 

주님은 매 순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괜.찮.다.”라고요



-이정민 세실리아 |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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