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살기
아파트 분리배출 하는 날, 플라스틱에 붙은 스펀지를 떼어내느라 30분 넘게 낑낑대고
있었다.
손으로 큰 덩어리를 뜯어내고 남은 조각을 커터칼로 긁어보지만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단일재질로 된 걸 사야 한다.
물건을 산다는 건 언젠가 처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자꾸 잊어버린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물건을 사는 일에 국한하지
않는다.
최근 어떤 일로 좀 지쳐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나와 목표하는 바가 다른데도 소통할
의지가 없는 듯하여 내 마음에 불평이 쌓였다.
그럴 땐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하면서 그 사람 흉을 보고 나면 좀 나아질 것이다.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왠지 성급한 행동 같아서 말을 삼켰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며칠 후 나는 그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흉보는 말을 하지 않았던 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어서였을까.
언젠가 오해가 걷히고 생각이 바뀌리라는 것, 성급히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았던 걸까.
한편, 자녀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오지 않은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난 이 녀석들이 어떻게 자라면 좋겠다 하는 구체적인 바람을 품진 않으나, 아이가
무사히 어른이 되고 여러모로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리란 기대는 늘 갖고 있다.
마음속에 그런 기대가 깔려 있기에 반복되는 수고로움도 그럭저럭 견딘다.
하지만 마음에 안개가 잔뜩 낀 듯하여 바탕에 깔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육아 자신감이 낮아져 작은 일로도 덜컥 겁이 난다.
최근의 일이다.
둘째가 뭐 때문인지 골이 난 채 자러 들어갔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오늘 내가
둘째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복기했다.
할수록 한심했다.
아이가 골이 날만 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애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사소한 듯 보여도 평생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로 인해 아이의 어느 부분이 닫혀버리는 게 아닐까.
아이가 성인이 돼서도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그때 불현듯 어떤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다는 사실. 타임머신을 타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
시점에 다녀온 것처럼 분명하게 깨달았다.
아, 크고 작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 돼주었구나.
하느님이 그렇게 만드셨구나. 그리고 내가 아무리 스스로 부족한 엄마라고 느껴도
내 안에는 이미 훌륭한 양육자의 자질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역시 하느님이 하신 일이었다.
음성이나 환영을 본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 확실히 알 순 없을 것이다.
해파리처럼 기운 없이 소파에 걸쳐져 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정신없이
감사 기도를 드렸다.
현재가 미래로 가는 통로에 불과할 때, 마치 손전등을 비추듯 주변은 까맣고 현재의
자리만 눈에 들어올 때, 우리의 세계는 좁아진다. 지금 이 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날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현재는 원인, 미래는 결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미래와 현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하느님은 날 위해 계획을 세우셨고 난 그에 자유롭게 응답하는 사람이다.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아내는 것이 적절한 응답이 되리라 믿는다.
-정신후 블라시아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