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진짜 결실

2022. 7. 14. 오전 5:19:13

글자

y

용서의 진짜 결실



고해성사를 보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제일 먼저 '용서'라는 단어가 떠오르실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용서받기 위해 고해성사를 봅니다. 

성사 보기 전 준비과정으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용서'를 받아야 할 내 생각과 행위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고해성사에서는 용서를 넘어 더 큰 내적 역동이 일어납니다. 

먼저, 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살펴볼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죄는 '양심이나 도의에 벗어난 행위'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신학자의 '사랑이 부족한 상태'라는 정의에 훨씬 더 크게 공감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지만, 우리의 약함과 한계로 인해서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게 되지요. 

그 와중에 우리 안에는 죄책감이 자리 잡습니다. 내 탓이라는, 죄

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나 때문에 사랑으로 일치될 관계가 어그러졌으니 이를 

회복시켜야 하는 책임을 느끼는 겁니다. 

그렇다면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 혹은 원동력은 무엇이 될까요? 

우리는 용서를 구하거나 화해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단지 죄책감 때문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죄를 지었다는 것은 그 순간 사랑이 부족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책감으로 인해 그 부족함을 채울 게 아니라, 용서를 통해 체험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그분께서 해주신 대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타인을 향한 용서는 사랑의 관계를 방해하는 죄를 없앰으로써 다시 관계를 회복하여 

계속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하느님 사랑의 행위입니다. 


영화 '밀양'을 보면, 주인공의 아들이 납치되어 살해되고, 범행을 저지른 학원 원장은 

감옥에 들어갑니다. 

주인공인 엄마는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럽던 중 어느 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며 

범인을 용서할 힘을 얻게 되고, 드디어 그 말을 하려고 교도소에 찾아가지요.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범인은 자신이 이미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너무나 

평화스러운 얼굴로 그 엄마에게 교회를 다니라는 권고까지 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가르침은 용서를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의 한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은 상대방이 원하는 데까지 해주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 범인은 주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되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엄마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청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해주시는 용서는 나로 인해 끊어진 다리를 당신의 도우심으로 

다시 세우라는 사랑의 초대입니다.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 | 얘기 들어주는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도.묵상 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