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복음화 사명의 도구인 사회 교리 - '신앙의 빛으로 조명된 이성'
① (회칙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신앙은 이성과 효과적으로 상호 작용한다.
(…) 사회교리 역시 그 실천의 상황적이며 역사적인 측면들에 적용되는 지식이니만큼
'신앙과 이성'을 맺어주고 그 풍요로운 관계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간추린 사회교리」 74항, 필자번역).
우리말 '사람'은 '살다'의 '삶'과 '알다'의 '앎'을 합친 말이라고 합니다.
곧 사람은 삶이 무엇인가를 더 완전하게 알려고 하는 존재라 하겠습니다.
누군가 '너 자신을 알라.'고 권고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경험하듯, 삶과 앎과 사람은 알 듯 모를 듯하여 결국 '인생은 미완성'
'세상은 요지경 속 같다'라는 말이 나오나 봅니다.
철학에서는 사람에게 이성(理性)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물(事物)에 대해서 또는 사물의 이치(理致)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 능력으로 인류는 사물과 그 이치에 관한 '학(學)- 지식의 체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이를 인문‧사회‧ 자연 과학 그리고 그 응용과 적용인 기술 등으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경험하듯, 지식의 체계와 활용이 언제나 우리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사람과 사회를 혼란과 위험에 빠뜨리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미완성'이며 '불완전'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오류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이성의 능력이 충만하게 발휘되지 않아서인데,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그 이성이 죄 탓으로 흐려졌고, 그 때문에 이성뿐
아니라 세상도 빛으로 환하게 밝혀져 정화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빛을 우리는 '신앙의 빛' '복음의 빛'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신앙의 '앎'이 역사와 구원의 신비, 하느님의 계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을
우리에게 건네신 은총에 비추어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지도한다."
(「간추린 사회교리」 75항, 필자번역)고 가르칩니다.
주목해야 할 표현은 '이해'와 '지도'입니다.
신앙의 앎도 이성의 앎처럼 '일정한 목적이나 방향으로 삶과 사물의 이치를 가르쳐
이끄는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성은 삶의 완성이나 역사의 완성이라 하고, 신앙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구원 또는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데, 표현만 다를 뿐 그 내용(길, 진리, 생명)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이성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인간의 영이 진리에 관한 관조를 향해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신앙과 이성」 머리말) 회칙 「찬미받으소서」 제2장에서 삶과
세상에 관한 신앙의 앎을 제시한 이유는 그것이 제1, 3, 4장에 나오는 이성의 앎
(상황적이며 역사적인 측면들에 관한 인문‧사회‧자연 과학과 그 기술)을 환하게 밝혀,
제5장 '접근과 행동 노선들'을 올바로 제시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생태 위기와 같은 사회적 현안에 관해 사람들은 저마다 이성으로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대화하고 정직한 대화로 그 원인을 찾으며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여기서 '신앙의 빛'은 그 길을 더욱 환하게 비추어줄 수 있습니다.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