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2021. 9. 27. 오전 5: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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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오늘 우리는 온 교회와 함께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올해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에서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라는 주제를 선택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가톨릭 신자들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해 함께 나아가기를" 호소하시는 겁니다.

부득이하게 온 인류가 각각의 그룹이나 국가로 나뉘며
'우리'와 '다른 이들'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각자 그룹들이 추구하는 최우선 목표는 단순한 생존에 그치지 않고,
연대와 협력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에 이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폄하하고, 미워하며, 심지어 죽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대 '다른이들'의 대립 구도에 빠져있는 사고방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예수님께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막지마라. …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마르 9,38-40)

아마도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인물인 요한은 '우리' 대
'다른 이들'의 대립 구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점은 '우리' 대 '다른 이들'의 관점이 아니라
'더 넓은 우리', 즉 포괄적인 하느님의 나라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한국어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공동의 나'라는 뜻으로 놀랍도록 아름답게
사용됩니다.
한국어 공부를 하던 중, 한 작은 수녀원에서 미사를 봉헌할 일이 있었습니다.
미사 후 계단 아래에 서 있었는데 어느 20대 젊은 여성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제 팔 쪽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 다 넘어지게 됐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2년 후 같은 수녀원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됐을 때, 우연히 그 자매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매의 팔에 아기가 안겨 있었습니다.
자매는 저에게 "우리 아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our baby!" (우리 아기!?)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어떻게!? 기적!? 그러다가 '우리 아기'는 '제 아기'를 뜻하는 한국식
표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한국 남성이 아내를 소개할 때 "우리 아내입니다!"라고 하면, 제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스페인어에서 '우리'를 뜻하는 단어는 'nosotros'입니다.
'nosotros'는 'nos'(우리)와 'otros'(다른 이들)의 두 단어가 결합된 복합어입니다.
분열에는 '우리' 대 '다른 이들'이 있지만, 일치에는 '우리'만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함께 전진하기 위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원고삼 베드로 신부 | 사회사목국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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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르 9,39)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촛불이 되어 성모님 앞에 봉헌됩니다.
저 또한 간절한 마음 담아 촛불을 밝혀봅니다.
부족한 제게도 성령을 보내시어 "저를 주님 앞으로 이끌어 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온갖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을 주님께서 따뜻하게 위로해주시기를
청해 봅니다.


-김연희 세라피나 | 가톨릭사진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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