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지신 질문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열두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 사도의 대답처럼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 믿음을 보존하며 대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전해 받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며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참으로 나의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던지신 그 질문은 신앙인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잊지 않고 여기에 답하려 노력한다면 분명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교리 또는 신앙 서적을 통해 익힌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차원에서 멈춘다면 무언가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진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교회를 통해 전달된 진리를 입으로만 반복하고 그 진리를 삶과는 유리된
죽은 활자로 남겨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신앙의 진리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교회 공동체가 체험한 살아있는 믿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 내용이 우리의 삶을 통해
다시 체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우리 각자의 관계 속에서 인격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그분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질문에 진정으로 대답을 하게 되는
길입니다.
제자들에게 예고하셨듯이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런 삶의 여정을 거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 여정도
늘 승리와 영광의 꽃길로만 이어지지 않습니다.
예상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다른 종교를 택할 자유가 있는데 내가 여전히 천주교 신앙인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고 그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깊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나의 주님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께서 던지신 이 질문이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밋밋하거나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깨워주시길 기대합니다.
-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 등촌1동성당 주임 겸 17지구장-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제주도 귀양길에 오른 그의 아내 정난주 마리아는
두 달배기 핏덩어리 아들 황경한을 살리기 위하여 추자도 갯바위에 내려둔 채
귀양살이를 하여 모자는 생전에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후세에 이를 안타까워하여 그 갯바위에 '황경한의 눈물'이라 명명한 십자가를
두었습니다.
주님, 부디 모자가 천상에서 기쁜 만남을 이루도록 도와주소서!
사진 설명:황경한 기념비, 추자도
-정영식 프란치스코하비에르 | 가톨릭사진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