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적 사랑-신앙선조들의 발자취

2020. 12. 31. 오전 6: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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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적 사랑-신앙선조들의 발자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영성의 바탕 3 김대건 신부는 짧은 사제 생활기간 속에서도 사목자로서 신자들에 대한 커다란 사랑을 보여 주었다. 그가 스승 신부들이나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서한들을 보면 조선 교회 신자들의 상황을 알려 주는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1844년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가 조선 신자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조선에 있는 신자들은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으나 목자들이 계시지 않아 암흑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1845년 여름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조선 교회의 신자들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교우들이 실제로 또는 확실한 박해를 받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그러나 매일같이 죽을 위험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가난하고 불쌍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박해 중에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보다는 교우들을 헌신적으로 보호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관가에 체포되어 문초를 받는 중에 신자들의 거처를 대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관헌들이 큰소리로 혹형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는 또한 신자들에게 박해를 단련의 시기로 받아들이며 서로의 일치 안에서 신앙 생활을 더욱 열렬히 다져나갈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교우들의 가정을 서로 일치하여 돌보아 주기를 부탁하면서 교회 안에서 특별히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조선 신자들에게 보낸 옥중 서한에는 신자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우선 그 서한은 "우리 벗아"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신자들을 진실로 동등한 벗의 유대 관계 안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신자들을 "우리 사랑하올 제형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러한 칭호들은 계층 간에 차등과 구별이 매우 심했던 당시 조선의 전통적인 풍토 속에서 그의 사목적 형제적 사랑을 보여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옥중 서한 말미에서 신자들을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제형들"이라 부르며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이어서 그는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고 간곡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고별인사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김대건 신부의 신자들에 대한 사목자로서의 깊은 애정과 사랑의 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참조): 조규식, 「성 김대건 신부의 영성」, 『교회사연구』 12, 한국교회사 연구소, 1997.여진천, 「 성 김대건 신부님과 순교여성」,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2006. 한국교회사연구소,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1집」, 1996.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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