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따라 갑니다
형제자매님들, 새해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이런 평범한 인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영광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 인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은혜인지 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아득히 빛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빛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제 어리석은 등에 빛이 업혀있었는데도 그것이 빛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빛에서 자꾸 멀어지고,
빛을 모른다고 했으며,
빛은 없다고 말했으며,
내가 빛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의 일입니다.
저는 스스로 단정 짓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립되어 있다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고.
끝없는 좌절에 빠져 있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남들뿐만 아니라 세상도 내 존재를 잊었다고 단정하고 있을 때,
저는 이상하게도 한 가닥 믿음이 강하게 일었습니다.
결코 완전한 절망은 없다고,
반드시 어디에선가 빛이 나타나리라 믿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지극히 외롭고 가난한 마음일 때 그런 마음속에 믿음이 솟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좀 난감하고 허황된 일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는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바로 그 믿음입니다.
세상에는 막무가내의 믿음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삶의 힘이 되고 축복이 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그때의 강인한 믿음이야말로
제 자존심이고 제 인생의 지향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따뜻한 두 손의 정체는
빛과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지향점으로 인생의 순리와 순응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무한한 은혜는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나보다 더 목 타는 사람을 알아보는 사랑이 바로 빛의 원리라는 것을요.
그러다가 내 눈이,
내 얼굴이,
내 몸이,
내 혼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축복은 목이 메이는 일인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빛을 따라 가기 시작했습니다.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가듯,
그리하여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듯,
그렇게 빛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예를 들었지만,
나같이 미미한 존재에 대한 빛의 발견도 그 빛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일이라면 동방박사와 무어 다르겠습니까?
믿음의 지속성 앞에는 늘 주님의 탄생이 있습니다.
그 탄생을 믿고 그 빛을 따라 가기만 하면 생의 길은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새해에 이런 믿음으로 오른발을 큰 몸짓으로 내어 밉니다.
어디선가 지금도 주님의 탄생이 지속되고 그 빛이 내게 이른다는 기쁨을
내 안에,
내 집에,
내 이웃에 가득히 채우겠습니다.
모른다고 하지 않고 안다고,
잘 안다고,
그래서 이웃에게도 빛을 나누며,
나누면 다 빛이 된다고 새해 더 큰 목소리로 인사하려 합니다.
형제자매님들 평화를 빕니다!
-신달자(엘리사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