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의 친교-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 신부의 서한들을 살펴보면 그가 모든 일을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처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심에 바탕을 둔 것으로,
그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의 원리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졌다.
그가 교우들에게 보낸 옥중 서한에서도 인
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천주 무시지시(無時之時)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慰藉)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곧 하느님께서 내신 대로 그분의 계획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교회의 일에 하느님께서 언제나 안배하여 주신다는 것을
믿었다.
그는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후에 중국에서 조선 입국 가능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긴 여행을 했었다.
그는 여행할 때마다 여러 가지 난관들을 겪게 되는데, 이것들을 극복하게
될 때마다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안배하심으로 믿고 감사한다.
그의 하느님의 안배에 대한 깊은 믿음은 그가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 속에서도 드러난다.
"세상은 온갖 일이 막비주명(莫非主命)이요 막비주상주별(莫非主賞主罰)이라.
고로 이런 군난도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위주(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사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을 하느님 안에서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항구한 신뢰심을 가졌다.
김대건 신부의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심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1842년 말 백가점에서 매스트르 신부와 함께 조선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미 조선의 지속적인 박해 소식을 들어서 입국이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주께서 허락하신다면" 무사히 조선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며 자신의 입국 계획을 추진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적으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느님을 깊이 신뢰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언제나 자신을 보호해
주신다고 믿었다.
그는 어려움을 겪을 때에 더욱 하느님의 보호를 청하며 기도했다.
1842년 2월 그의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길이 비록 험난할 줄 압니다마는 천주께서 저희들을 보호하시어
무사하게 해주실 줄 바라고 있습니다."
참조
조규식, 「성 김대건 신부의 영성」, 『교회사연구』 12, 한국교회사 연구소,
1997. 여진천, 「성 김대건 신부님과 순교여성」,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2006.한국교회사연구소,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1집」, 1996.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