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신심-신앙선조들의 발자취
달레 신부(Dallet, Charles)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성모 신심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 저 바다의 별이 김대건 안드레아가 위험한 여행을
하는 동안 등대 노릇을 하여 주시었고, 그가 조선에 돌아올 때
조그만 라파엘호의 나침반 노릇을 하신 것도 성모 마리아였다.
성모마리아 성화가 늘 돛대 밑에 펼쳐져 있어,
낮에는 그에게 보호를 구하고 밤에는 그에게 호소하였다."
1845년 3월 27일자 서한에서 김대건 신부의 열렬한 성모 신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페레올 주교의 명을 받고 비밀리에 조선으로 입국하던 때에
조선의 국경 도시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조선교우 안내자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여
어느 추운 산속에 몸을 숨기고 기다리게 되었는데, 이때의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친 이야기는 그의 열렬한 성모 신심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거기에 이르러 저는 …… 아주 은밀한 산골짜기를 찾아들어
울창한 숲속의 어두침침한 나뭇가지 밑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눈이 사방에 깊이 쌓여 산촌이 모두 하얗고 싸늘한데 밤이 되기를
기다리자니 너무나 지루하여 묵주 기도를 수없이 거듭하였습니다."
묵주기도가 그의 기도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모님의 보호에 자신을 맡겼음을 알 수 있다.
김대건 신부는 당시의 박해 상황에서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그의 전구를
비는 기도를 많이 드렸다.
그는 성모님께서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특별히 돌보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일을 겪게 될 때 성모님께 의지하며 자주 그분의
도움을 청했다.
성모님의 보호에 대한 그의 굳은 믿음은 그가 상해에 도착하여
마카오에서 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서한에서 항해 중에 설상가상으로 해적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자신의 배를 약탈하지 못한 것은
'동정 성모 마리아의 보호'였다고 확신했다.
그는 또 항해 중의 극한적 상황에서 오로지 하느님과 성모님의 도움만을
간구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도움을 잃고 오직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대를 걸고 잠을 자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김대건 신부의 성모님께 대한 희망은 역경과 장애 속에서도
더욱 굳어졌으며 그가 자신의 사명을 다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렇게 그의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그의 영성 생활을 보다 풍부히 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일치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참조-조규식, 「성 김대건 신부의 영성」, 『교회사연구』 12,
한국교회사 연구소, 1997.여진천, 「성 김대건 신부님과 순교여성」,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2006.한국교회사연구소,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1집」, 1996.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202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