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일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외쳤던 말씀은
다름 아니라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입니다.
예수님의 명을 받고 둘씩 파견된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마르 6,12).
회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 자세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 말씀을 들었고 이미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미 맛을 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회개'하라고 선포하는 것은 성직자와
수도자 또는 선교사의 몫만은 아닐 것입니다.
복음선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 소명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인 복음은 언제나 어디서나 선포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우리 신자들이 기뻐하기보다 때로는 신앙을
가진 것에 대해 보이지 않게 부담스럽거나 또는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간단한 식사 전·후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도 부끄러워하는 모습들을
보이곤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16세기 폴란드의 과학자 코페르니쿠스가 그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사고 즉,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천체가 움직이는 천동설을 태양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로 주장하면서 과학계의 일대 대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우리가 세상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세상이 우리를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짐으로 인해 일대 대변화가
필요합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고도 너무도 잘못된 마음가짐이나 행동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2티모 1,8 참조)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주님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8)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보고 세상은 우리와 함께
살지 못함을 세상 스스로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김영석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