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사마리아인

2012. 7. 17. 오전 6:46:59

글자

    도시의 사마리아인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하느님을 만나셨을까. 어느 바위틈에 몸을 누이셨을까. 배가 고프지는 않으셨을까 엔도 슈사쿠는 <사해 부근에서>라는 작품에서 유다 광야를 '죽음의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썼다. 나는 나의 광야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심판자 하느님을 보지는 않았다. 다만, 나를 향해 내미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꼈을 뿐. 가난한 여행자 냄새가 나는 우리들. 번쩍이는 불빛(원주) 아래에 서니 이방인 처지라는 사실이 더욱 강하게 실감 났다. 교복을 입은 학생도, 양복을 입은 아저씨도 어쩐지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도시에서 우리에게 밥을 줄 사마리아 사람이 있을까…. 길 위에 나선 지 사흘째, 밥을 청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배가 고프면 하는 수 없다. 역시나 사마리아인은 도시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용태의 뒷모습을 보며,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선 나, 그리고 …. '엄지 김밥'의 우동과 김밥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빈손으로 들어가 음식을 청했음에도, 따뜻한 김밥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친절하게 내어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먹으며,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먹은 밥다운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밥이라도 좋으니 먹을 것을 달라는 청에 이런 성찬이라니. 이분은 왜 우리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타인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인 동시에 기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남루한 몰골의 우리를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미소는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직업적인 친절 이상의 환대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신비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청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베푸는 법을 깨달아 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하지만 역설적인 진리가 우리의 몸에 새겨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누군가의 호의가 아니라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는 지금. 그래서 더없이 감사한 하루. 기쁜 하루. -문재상 신부「길에서 길을 찾다」 가톨릭출판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도.묵상 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