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바라시는 하느님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2코린 4,17)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우리를 고통 속에 버려두느냐고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고통스러움에 힘겨워 하는 이야기이겠지만 우리 인간은 충격에 의해 삶의
방향을 바꾸고 개선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고통과 고난은 성품과 환경을
개발시키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순탄하지 않고 문제의 연속이며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됩니다.
예로부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라는 속담도 있듯이 우리 삶이
단순하지 못하고 복잡하면 복잡한 만큼 근심과 걱정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솔직할 때는 고통 중에 머물 때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통증을 느끼고 세상이 자신을 버린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아
신음소리 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기도 할 때 꾸며진 기도나
추상적인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심한 고통을 체험했던 사람은 이 말 뜻을 이해할 것이고 그 순간 드렸던
기도와 미사봉헌이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했는지를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망각의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고 힘들 때의 절실함도 여유가 생기고 풍요로우면 그 순간의 고통을 마음에서
지워버리거나 감추려하고 오히려 자신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꾸며진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삶이 잘 풀리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쉽게 이야기하고 모방하며 인용하여 떠들어 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은
고통을 통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느님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도달했던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기적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선고를 받았을 때 삶의 희망까지 잃어버렸을 것이고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던 시간들도 구구절절 애절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되살아난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우리 삶의 방향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